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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마로키+토르로키/번역] dying young and I'm playing hard (2/2)

그마로키 / 토르로키

"dying young and I'm playing hard" 

by Lise


원문: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4424717/chapters/33316239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mNLnERp.png)
  • 로키가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로키를 가지고 노는 그랜드마스터와 로키를 보호하고 싶은 토르...




*   *   *


그랜드마스터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그의 챔피언이 천둥의 군주를 죽이지 못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둘은 서로를 아는 사이였다. 그리고 챔피언이 그랜드마스터에게 그를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으면 안 되냐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랜드마스터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도전자에게 거절의 대답을 하는 걸 정말로 싫어했다….

로키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몸을 덜덜 떨며 공황에 빠진 상태로 일어났다. 당장 달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심장이 요란하게 뛰고 있었다. 그랜드마스터는 그를 달래 주고, 그의 목구멍을 긁어 놓은 히스테리를 잠재워 주기 위해, 30분의 시간과 가득 채운 토닉 한 잔을 기꺼이 투자했다. 로키는 자신이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할 수 없었다.

“불쌍한 것 같으니라고.”

밀려오는 아드레날린에 몸을 덜덜 떠는 로키의 몸을 자기 다리 위에 눕힌 채, 그랜드마스터가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 짐승 같은 놈이 네 섬세한 신경에 무슨 짓을 한 건지. 하지만 이제 자기는 안전해. 내가 약속할게.”

로키가 불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로키가 비참하게 말했다.

“죄송해요.”

그랜드마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 하지 마, 달링.”

그가 잔을 로키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여기. 조금 더 마셔.”

로키가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절 취하게 만드시려는 거에요?”

“내가 왜 그러겠어?”

그랜드마스터가 로키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쓸어내 주며 가볍게 말했다.

“넌 이미 내 침대 안에 들어와 있는데 말이야. 안 그래?”

로키가 고개를 돌려 그랜드마스터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볐다. 그랜드마스터가 기분 좋은 목소리를 내며, 로키의 머리카락을 비틀어 붙잡아 뒤로 살짝 당겼다.

“날 유혹하지 마렴.”

그렇게 말하는 그랜드마스터의 목소리에는 다분히 유혹해 주기를 바란다는 어조가 담겨 있었다. 로키의 웃음은 조금 더 진실된 그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미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는, 단순하고 편안한 기분의 그것으로.

그랜드마스터가 그 사실을 알면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그랜드마스터를 기쁘게 만드는 것은 곧 로키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토르를 볼 때마다 마음 속을 적셔 오는 그 이상하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고.


*   *   *


로키는 다음 아침 늦게까지 잤고, 시트가 몸에 이리저리 뒤엉킨 채 잠에서 깼다. 로키는 몸을 스트레칭해 준 후, 긴 샤워를 즐겼고, 로브를 걸쳤다. 정말이지, 뭐 때문에 그렇게 기분이 속상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전부…바보 같은 일이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나중에 그랜드마스터에게 보답해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관용과, 인내심에 감사함을 표해야 했다.

로키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눈을 따라 그려진 아이라이너 선을 정돈했다. 그러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로키는 펄쩍 뛰었다. 하지만 로키는 곧바로 웃어 넘겼다.

“그래, 어련하겠어.”

로키가 얼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대고 중얼거렸다.

“납치범 희망자가 친절하게 노크부터 하고 들어올 리가 없잖아.”

로키는 걸어 나가 문을 열어 주기 전 마지막으로 로브가 자신의 몸을 대충 잘 가려주고 있는지 확인했다.

“오.”

로키가 약간 놀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스크래퍼-142. 아주…뜻밖의 기쁜 방문인걸.”

스크래퍼-142는 그 웃음을 돌려 주지 않았다. 그녀는 로키를 밀쳐 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로키가 그 뒤에 대고 표정을 찡그렸다.

“억지로 그런 말 짜낼 필요 없어.” 그녀가 말했다.

“엔 드위 있어?”

“아니.” 로키가 대답했다. “나가셨어.”

로키는 눈썹을 위로 치켜 올렸다.

“뭔가 전할 메시지 같은 게 있으면 내가….”

“아니.” 스크래퍼-142가 말을 잘랐다.

“그럴 필요 없어. 고마워.”

그녀는 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술병들 중 하나를 꺼내, 입을 대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로키가 표정을 더 깊게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입 닥쳐.”

스크래퍼-142가 말하더니, 뭔가를 조용히 투덜거렸다. 가 이런 짓을 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이라는 소리처럼 들리기는 했다.

“내 말 좀 들어.”

로키가 기분이 상해서 말했다.

“그건 네 물건이 아니잖아.”

스크래퍼-142는 술병 하나를 끝낸 후에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그녀가 로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군.” 그녀가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말이야….”

“뭐가 미안하다는—”

로키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스크래퍼-142가 그의 목 앞쪽을 강타했다. 로키가 숨막힌 소리를 뱉어 내며 쌕쌕대기 시작했고, 그 틈을 타 그녀는 뭔가 무거운 물건을 그의 머리 한 쪽에 냅다 내리쳤다.


*   *   *


소리가 가장 먼저 들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한 대 더 얻어맞은 것처럼 귓속이 진동했다.

“—체 얼마나 세게 친 거야?”

로키는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채는 데는 몇 분이 걸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목소리를 알아챈 순간, 심장이 긴장해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로키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스크래퍼-142가 내려친 관자놀이 쪽이 쿡쿡 쑤셔 왔다. 그의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손과 발목도 묶여 있었고, 몸 전체를 둘러서도 뭔가가 칭칭 감긴 채 그의 팔을 양 옆으로 고정시켜 놓고 있었다.

대체 스크래퍼-142는 무슨 생각인 거지? 미쳐 버렸나?

“괜찮을 거야.”

그녀가 방어적으로 말했다.

“판단을 잘못 해서 쟤가 소리지르기 시작할 기회를 줄 수는 없었다고.”

“두개골을 거의 부숴 놓을 뻔 했잖아!”

“하지만 안 부서졌지. 천만에 말씀을.”

스크래퍼-142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술이 필요할 곳 같군. 그리고 너는 쟤가 정신을 차리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좀 생각하기 시작해 보는게 좋을걸. 절대 기뻐하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네 말로는 저 사슬이….”

“그래. 얼마간은 붙잡아 둘 수는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재갈도 풀어 주고 먹을 것도 주기 시작해야 할 테니까.”

이미 들을 내용은 충분히 들은 것 같았다. 로키는 눈을 뜨고 시선을 끌기 위해 몸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몸을 돌려 로키를 쳐다보았다. 스크래퍼-142는 짜증나 있는 것처럼 보였고, 토르는….

로키의 뱃속이 불안하게 뒤틀렸다.

“로키.”

토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며 말했다. 로키는 자신에게 단검이 들려 있다고 상상하며, 자신의 모든 의지를 끌어 모아 넌 이걸 후회하게 될 거야. 날 당장 다시 방으로 돌려보내 줘. 라고 하는 듯한 시선을 쏘아 보냈다. 스크래퍼-142가 코웃음을 쳤다.

“눈빛으로 죽일 기세로군.”

그녀가 말했다. 토르가 그녀를 노려 보았다.

대체 저 둘이 언제부터 친구 사이였던 거지? 친구는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로키.”

토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내 말 듣거라. 널…보내 줄 수 없어. 지금 당장은 안 된다. 내 말을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넌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당연히 나는 제정신이지. 로키가 사납게 생각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누굴 납치해 대는 미친 놈은 내가 아닌걸—

“그 동안…약물을 먹은 것 같구나.”

토르가 로키의 쏘아보는 눈길에도 단념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세뇌 당했다는 걸 다른 말로 뭐라고 하더라…내가 아는 로키는—”

너는 날 몰라. 로키가 생각했다. 가슴 속에서 다시 공포감이 치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난 널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왜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거야? 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네 말을 못 믿는 것 같아 보이는데.”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토르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노려 보았다.

“너라고 더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

“물론이지.”

스크래퍼-142가 몸을 살짝 앞으로 숙였다.

“이봐, 로키. 너 출신지가 어디야?”

로키가 입이 틀어막힌 소리를 냈다. 자신이 대답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그래. 좋아. 생각은 그쯤 해 둬. 나한테 말해줄 필요도 없어. 나는 이미 알고 있거든. 너는 어때?”

스크래퍼-142가 내려친 자리가 더 둔탁하게 쑤셔 왔다. 로키는 머리를 흔들어 그 감각이 빠져나가기를 바랐다. 상관 없잖아, 안 그래? 사카아르 이전의 일은 그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사카아르에 있는데, 자신이 어디 출신인지가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자신은 그랜드마스터의 총애를 받으며, 사치스러운 호강을 누리고 있는데.

(그의 마음 속 어디에선가, 무엇인가, 총애받는 노리개지 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곧바로 그 생각은 사라져 버렸다.)

“몰라?”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정말로 몰라? 이상하지, 안 그래? 누군가 네가 그걸 잊어버리도록 만든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라니. 로키는 그녀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런 식의 암시라니. 그랜드마스터가 그런 짓을 할 거라는…그런 짓이 뭐지? 그리고 왜? 로키는 스크래퍼-142를 노려보았다. 그 눈길이 자신의 불쾌감과 모욕감을 전달해 주기만을 바라며.

“헛수고네.”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로군.” 토르가 말했다.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거지?”

“할 수 없어.”

스크래퍼-142가 대답했다.

“그냥…약기운이 다 말라 버릴 때까지 기다려 봐야지.”

“그건 얼마나 걸리는데?”

토르가 말한 후, 얼굴을 찌푸리며 로키를 응시했다.

“내가 그 재갈을 빼 주면,” 토르가 말했다. “소리지르지 않을 거라 맹세해 주겠느냐?”

스크래퍼-142가 토르를 향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게 네 계획이야?”

“네 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고 해도 신경 쓸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토르가 말한 후 다시 로키에게 몸을 돌렸다.

“어떻게 할래?”

로키는 자신의 선택지를 고려해 보았다. 자신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토르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비명을 지르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그냥 입을 다문 채 시간을 버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로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한다는 거지.”

토르가 한 번 더 확인했다. 로키가 고개를 다시 끄덕였다. 토르가 천천히 다가와, 재갈을 풀어 준 후 로키의 입에서 빼냈다.

로키는 턱을 몇 번 움직여 본 후 스크래퍼-142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날 보내 준다면, 네 처분에 조금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얘기라도 해 주지.”

“그러기에는 조금 늦은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난 이제 너무 멀리 왔다고. 그리고 멜팅 스틱에 녹아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말이지.”

로키는 입술을 앙다문채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토르를 돌아보았다. 토르는 자신을 이상하리만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토르가 말했다.

“많은 걸 기억하고 있거든.” 로키가 날카롭게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날 기억하지 못하지 않느냐.”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로키가 힘주어 말했다. 두통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체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겐 형제가 없어—”

“사카아르에 오기 전의 일이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형제가 없는 줄은 어떻게 안다는 거야?”

토르가 끼어들었다.

“그…개새끼가…네게 약을 먹이고 있었어. 마법도 사용하고—”

로키의 몸이 굳어 왔다.

“그랜드마스터 얘기를 하는 거라면, 내게 그동안 너무나 잘해 주신 분이야. 자비롭고, 친절하시지.”

스크래퍼-142가 콧방귀를 꼈다.

“가스트는 여러 가지 속성을 지닌 사람이지만, 자비로움친절함은 그 자와 거리가 멀어.”  

로키의 몸이 파득 곤두섰다. 스크래퍼-142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왜? 내 말 맞잖아.”

네게는 그런 사람이 아니겠지.” 로키가 비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토르가 목구멍으로부터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를 냈고, 로키는 입을 다물었다. 구역질할 것 같은 기분과 머리 속이 울리는 감각 사이로 경고음이 궤뚫고 들어왔다.

“그 새끼의 팔다리를 뜯어내 버릴 거야.”

토르가 스크래퍼-142에게 말했다. 로키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몸을 화들짝 뒤로 물렸다.

“너 말고.”

토르가 황급히 더했다.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실룩거렸다.

“그런 시도는 안 하는 게 좋을 텐데.”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이것 봐. 최선책은 그냥 좀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거야. 약효를 떨쳐내는 데 한 1주일 이상은 안 걸릴 거야.”

일주일이라고? 내겐 일주일의 시간이 없어.” 토르가 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쟤를 저런 상태로 여기서 끌고 나갈 셈이야?”

“너희 둘 중 누구도 날 어디로든 못 끌고 가.” 로키가 경고하듯 말했다.

“내가 풀려나기만 하면, 둘 다 아주 후회하게 될 거—”

토르가 그의 앞에 앉았다. 그러리라고 생각했음에도 재갈을 다시 물리지는 않았다.

“미안하다.”

그는 이상하게도 그렇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가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이런 식이라는 게 뭐야.” 로키가 쏘아붙였다. “날 납치한 것? 그것도 두 번이나?”

“공평하게 말하자면, 두 번째는 나였어.”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그녀는 어디선가 또 술병을 구해온 모양이었고, 그걸 입 안에다 털어 넣기 바빠 보였다.

토르가 머리를 흔들었다.

“곧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로키의 척추를 따라 불안함이 타고 흘렀다. 위장이 꼬여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내가 정말로?”

“그러기를 바라고 있어.”

토르가 너무 낮은 목소리로 말해, 로키는 그 대답이 들으라고 말한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다.


*   *   *


시간이 흘렀다. 로키는 귀를 바짝 기울여, 자신이 실종됐다는 발표 같은 것, 수색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등 그 어떤 것이라도 들을 수 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다. 토르는 계속 자신을 뭔가 굶주린 듯한 그런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토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제공해 주려 노력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 꾸며내진 과거를 ‘기억’해내는 척 할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못했다.

이 미친 자의 게임에 놀아나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해도 말이다. 물론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지만.

“화장실 가고 싶어.”

로키가 마침내 큰 소리로 선언했다. 토르가 서성이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렇군.” 토르가 천천히 말했다.

“그러려면 여기 이것들을 몇 개라도 좀 풀어 줬으면 좋겠는데.”

로키가 무거운 사슬에 결박된 팔을 꿈틀거리며 요란한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이 사슬은 로키의 마법 또한 억누르는 부작용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안 그러는 게 좋을걸.”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로키가 그녀를 향해 넌더리난다는 표정을 쏘아 보냈다.

“어떻게 하자는 거야.” 로키가 말했다.

“내 바지를 대신 벗겨 준 후 지켜 보기라도 할 거야? 내가 난봉꾼이기는 하지만, 나도 선은 지킨다고.”

토르가 움찔했다.

“그냥 잠깐만이니까.” 그가 스크래퍼-142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가까이 붙어 있도록 하지.”

“내 말 들어야 할 걸. 바보 같은 생각이야.”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결국 내 말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시겠지.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군.”

스크래퍼-142의 말대로 토르는 그녀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토르는 로키를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토르가 몸통을 죄고 있던 사슬을 풀어 주는 동안 로키는 온순하게 기다렸다. 마음 속에서는 이 모든 일에 대한 모욕감이 불타 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반항 없이 화장실까지 얌전하게 걸어갔다. 여전히 결박된 손으로 문을 닫으려 할 때, 토르가 문을 붙잡았다.

“다 닫지는 말고.”

토르가 말했다. 그는 약간의 불빛만 비춰 들어갈 정도로 문을 열어 둔 채 뒤로 물러섰다.

로키는 몸을 던져 문을 마저 닫았다. 문을 잠궈 버린 후, 로키는 뭔가 무기가 될 만한 걸 찾아 미친 듯이 화장실을 둘러 보았다. 토르가 바깥에서 고함을 지르며 문을 두드렸다.

“로키!”

토르가 소리쳤다. 무기로 삼을 만한 것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로키는 그 대신 이 족쇄를 없애 버릴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지.”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토르가 문의 반대쪽에서 몸을 돌진해 꽂았다. 로키는 문간이 흔들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로키는 욕설을 뱉어내기 시작하며, 문의 잠금쇠가 어떤 구조인지 눈여겨 보려 애썼다.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 했잖아.”

좋아. 변기 옆에 빈 유리병이 있었다. 무기라기에는 허술하고, 이 사슬에서 풀려나는 데 도움이 되지도 않겠지만, 저걸 깬 후에 목을 노린다면….

로키가 문 쪽을 흘긋 본 후 유리병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에 붙어있는 줄도 몰랐던 복종 디스크가 작동했다.

토르가 로키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잖아.” 토르가 말했다. “그리고 이제 그만 꺼도 돼.”

다행스럽게도, 스크래퍼-142는 그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로키는 자신이 끌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혐오감을 담아 토르를 노려 보았다.

“넌 지금 네 자신이 아니다.”

토르가 말했다.

“너는 로키야. 오딘의 아들이자, 아스가르드의 왕자, 로키.”

로키는 몸서리쳤다. 심장 박동이 다시 미친듯이 속도를 더하기 시작했다.

“날 그런 식으로 속이지는 못해.”

로키가 말했다. 왜 자신의 목소리에 이상한 절박함이 묻어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야. 절대 그랜드마스터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거라고. 그랜드마스터는 나를 사랑해.”

토르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의 얼굴 위로 분노가 떠올랐다.

“그 자는 널 가지고 놀고 있다고! 그 자는 널…널…애완동물이라도 되는 것 마냥 대하고….”

로키가 발끈했다.

“나는 애완동물이 아니야!”

“아니, 정확히 애완동물과 똑같아!” 토르가 말했다.

“원하는 대로 차려 입혀 놓고, 갖고 놀 수 있는 예쁜 애완동물이지. 질리는 순간 바로 옆으로 던져 내버리겠지만.”

공포감이 로키의 목구멍을 할퀴어 왔다.

“그랜드마스터는 절대…그는 절대….”

날 버리지 않을거야. 날 던져 내버리지 않을 거야. 나는 착한 아이야 나는 착한아이야—

“네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좀 봐.”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공황 발작이라도 온 것 같잖아.”

“도와주지 않을 거라면….” 토르가 으르렁거렸다. 그러고는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춰, 달래는 듯이 말했다.

“로키, 숨 쉬어. 괜찮아.”

괜찮지 않아. 로키가 거칠게 생각했다. 그랜드마스터 곁에 돌아갈 때까지 절대 괜찮지 못할 거야.

“네겐 그 자가 필요 없어.”

로키의 목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토르가 말했다.

“그는 절대…그 자는 미친 놈이야. 너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그럴 리 없어.”

로키가 절박하게 말했다.

“그랜드마스터가 날 받아주기 전에, 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었고….”

“그건 사실이 아니다! 기억해 내도록 노력해 보란 말이야—”

로키의 머리가 쿡쿡 쑤셨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그냥 기절시켜 버리는 게 좋을지도.”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그냥 체내에서 그 약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다른 약을 먹여 버리자고. 말로 설득하는 건 전혀 효과 없을 것 같은데.”

로키는 몸을 웅크렸다.

“저리 가.” 로키가 말했다. “그만 입 다물어. 너는 거짓말쟁이고 난 네 말은 듣지 않을 거야.”

토르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로키는 그가 뒤로 물러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알겠다.”

토르가 조용히 말했다.

“알았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마. 하지만…내가 한 얘기를 조금만 생각해 줘.”

로키는 눈을 감고 숨을 쉬는 데만 집중했다.


*   *   *


그 두 사람 모두 자기 말을 들어 줄 기색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로키는 그 대신 우울한 침묵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별로 효과가 없어 보였다. 로키는 더더욱 불편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창문 좀 열어 주면 안 돼?”

로키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 안이 너무 더워.”

두 사람은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로키가 알아듣기에는 너무 조용한 목소리로. 하지만 로키의 말에 토르가 홱 몸을 돌렸다.

“너무 덥다고?”

토르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로키가 대답했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고. 바람이라도 좀 불면 훨씬 쾌적할 것 같은데.”

토르와 스크래퍼-142가 서로를 곁눈질했다.

“로키는 늘 쉽게 더위를 타기는 했어.” 토르가 말했다.

“아니면 그게 시작되는 걸 수도 있지.” 스크래퍼-142가 대답했다.

로키의 몸이 굳었다.

“뭐가 시작된다는 거야?”

“네 혈류를 떠돌아 다니고 있는 그 정체 모를 것이 슬슬 네 몸에서 빠져 나가고 있다는 거지.” 그녀가 말했다.

“보통이라면 아주 빨리 진행되겠지만, 하지만 네게 무슨 마법도 걸려있는 것 같으니 그것도 일조할 테고.”

로키가 이를 악물었다.

“내 정신은 멀쩡해.” 로키가 말했다.

“으음, 그렇군.”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어디 한 번 보자고. 뭐라도 걸어 볼래?”

로키는 마른 입에 물기가 돌게 만들도록 애썼다. 목이 말랐고, 머리가 아팠다. 침대로 눕거나 욕조에서 몸을 적시고 싶었다. 내가 언제나 널 구해 주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 라고 그 사람이 말했었는데.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아무 것도 기억 나는 것 없어?”

토르가 희망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로키가 그를 쏘아 보았다.

“많이 기억하지. 네가 날 침대에서 끌어낸 것과, 내 목에 복종 디스크를 붙인 것…. 그것도 두 번이나. 날 여기로 끌고 오고, 사슬로 결박하고, 나와 그랜드마스터를 모욕한 것….”

토르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서, 기억 안 난다는 거군.”

“네가 날더러 기억하기를 원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어지러움이 몰아 닥쳐 왔다. 그리고 두 눈 사이로 짤막짤막한 욱신거림도. 로키는 땀을 흘리고 있었다. 스크래퍼-142가 자신을 납치해 왔을 때 입고 있었던 얇은 로브가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토르가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살펴보았다.

“안 좋아 보이는구나.”

“왜 그런지 궁금하네.”

로키가 쏘아붙였다.

토르가 스크래퍼-142를 흘긋 쳐다보았다. “위험한 상태는 아니지?”

“전혀 모르겠어. 이런 종류의 약에서 해독되는 과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토르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래서 이 일이 안전한지는 전혀 모른다는 건가?”

“사카아르에서는 그 어떤 것도 안전하지 않아.” 그녀가 대답했다.

“쟤를 원래 있던 곳에 내버려 두는 쪽이 더 나았을 거라는 거야?”

“나 바로 여기 있거든.”

로키가 내뱉었다. 자신의 몸 상태가 최고가 아니라면, 그 이유는 아마도 어떤 미친 놈과 건달이 자신을 납치해서 거의 움직일 수조차 없을 정도로 결박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 누구도 좋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로키는 몸을 움직였다. 조금 편한 자세를 취해 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토르가 다시 한번 그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로키가 그를 노려보았다.

“너 혹시….”

토르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말을 끊었다. 로키가 다시 한번 몸을 들썩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뭐?”

토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는 시선을 돌렸다.

“아무 것도 아니다.”

“약간 초조해 보이는걸.”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로키는 그녀를 향해서도 눈길을 쏘아 보였다.

“나를 몇 시간 동안이나 사슬에 묶어 두고 있잖아. 당연히 초조하지.”

스크래퍼가 입술을 오므리고 토르 쪽을 잠시 곁눈질했다가, 다시 로키를 쳐다보았다.

“그게 네가 흥분해 있는 이유야?”

로키의 눈이 불거졌다. 로키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입을 열어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그녀가 그렇게 외설적인 소리를 할 이유가 없었다. 마치 자기가 지금 이 상황을 즐기고 있기라도 한 듯이….

하지만 스크래퍼-142의 말을 듣고 나니, 아까부터 느끼고 있던 간질간질한 느낌이 초조함이나 불안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편한 자세를 취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아랫배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희미하고, 고동치는, 욕망이….

로키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스크래퍼-142를 모욕감과 분노가 담긴 눈으로 노려 보았다. 그녀가 눈을 돌렸다.

“미안. 네가 아는 줄 알았지.”

“나는…나는….”

로키가 다시 몸을 들썩이려 했다가, 몸을 바싹 굳혔다. 그 간질간질한 기분이 뭔지를 알고 나니, 그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는 이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의 침대 안으로….

척추를 따라 떨림이 타고 내려왔다.

“아주 편리한 방법이군.”

스크래퍼-142가 조용히 말했다.

“뭐라고?”

“기억을 뺏어버린 후에, 애정과 사랑을 제공하는 존재인 자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드는 거지. 그러고는…욕망을 돋구어 주는 약물을 먹이는 거야. 누군가를 조종하기 위한 아주 쉬운 방법이겠군. 쾌락으로 절여 버려서 그 외에는 그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거야.”

스크래퍼-142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로키는 그녀의 말이 틀렸다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그랜드마스터는 정말로 자신을 사랑해 주고 있었다. 그랜드마스터는 로키를 원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 곳 이전에 어디 있었든지 간에…그 곳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았다. 그게 자신이 이 곳에 있는 이유였다. 사카아르는 길 잃은 존재들이 발견되는 곳이야. 우리가 널 발견했지. 그리고 넌 이제 내 거야. 로키는 다시 절박하게 마법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대신 머리가 아파 왔다. 척추의 가장 꼭대기와, 눈 사이가 쿡쿡 쑤셨다. 잠시 동안 사물이 두 개로 보였다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자의 팔을 뜯어내서 그걸로 그 자를 패 죽여 버리겠어.”

토르가 으르렁거렸다.

“그러지 마.”

로키가 숨가쁘게 말했다.

“그가 먼저 널 죽일 거—”

하지만 그게 왜 문제지? 그게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 거지? 그랜드마스터가 자신을 되찾으면 어차피 토르는 죽을 목숨일 텐데.

왜 그 생각이 자신의 가슴 속에서 뭔가 공포스러운 감정을 풀어놓는 거지?

로키는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욕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로키는 둘 중 한명에게 자신을 만져 달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다. 주 장난꾸러기인걸. 그랜드마스터가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토르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 위로 묘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로키?”

토르가 불확신의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서 떨어져.” 로키가 으르렁거렸다. “날 혼자 놔 둬.”

토르가 입을 살짝 벌렸다가, 뒤로 물러났다. 로키는 그에게 소리를 지른 것을 후회할 뻔했다. 이제 어디엔가 밀어 눕혀진 채 마구 범해지고 싶은 욕망으로부터 그를 방해할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로키는 점점…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키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두통이 더 퍼져 나갔고, 더 악화되었다. 맞서 싸우려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결국 로키는 고통으로, 무력함으로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흥분해 있다는 사실도, 그것에 대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도, 너무 끔찍했다. 지금까지 겪어본 것 중 가장 끔찍한 숙취 같은 기분이었다. 50명의 루포모이드 족과 보냈던 그날 밤보다 더 끔찍했다.

운명의 여신이시여. 그 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박동하는 흥분감이 다시 불타올랐다. 이제쯤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게 무색할 정도였다.

그 어떤 것도 생각한 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로키는 계속 그랜드마스터가 자신을 구하러 올 거라고 생각했다. 로키를 자유롭게 해 주고, 구원해 주고, 이 깡패 두 명을 녹여버려 끈적끈적한 액체로 만들어 버리고—

그 생각이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거지? 자신이 벌써부터 토르의 멍청한 헛소리를 믿기 시작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자신을 쿡쿡 찔러 대며 속삭이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게 사실이면 어떡할래?

왜 그랜드마스터가 내게 약을 먹이겠어?

“마법을 쓰게 해 줘.”

로키가 불쑥 말했다.

“안 된다.” 토르가 바로 대답했다. “우리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

“그럴 지도.” 로키가 언짢은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얘기가 아니야.”

“그러면 무슨 얘긴데?”

네가 내 마음 속에 있다고 주장하는 그 방해 공작이 없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고. 네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어. 나에 대해서도 틀렸고, 그 사람에 대해서도 틀렸다는 사실을.

로키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토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사슬을 조금만 풀어 주면 안 돼? 많이 사용하지 않아도 돼.” 로키가 말했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것 기억해.” 스크래퍼-142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쟤를 풀어주는 게 바보 같은 생각이라는 거 말야. 내 말이 그 때도 맞았던 거 기억나지?”

토르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기억하고 말고.”

토르가 말한 후 로키를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안 된다.”

“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어.” 로키가 턱을 치켜들었다.

“네가 말한…그 방해 마법이정말로 내 마음 속에 있는지만 볼 거야. 그리고 만일 찾지 못하면….”

토르가 스크래퍼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해 보였다.

“음, 이건 좀 좋은 징조인 것 같은데.” 그녀가 말했다.

“의문을 가지고 있잖아. 이전보다는 나은걸.”

토르가 얼굴을 찡그렸다.

“약속해 주렴.” 그가 말했다. “그게 네가 하려고 하는 일 전부라고 말해 줘.”

로키가 잠깐 망설였다. 말은…아무 의미도 없었다. 말이라는 것은 사카아르에서는 동전만큼이나 싸구려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는 해도….

“약속할게.” 로키가 말했다. “그게 내가 하려는 것 전부야.”

“네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두고 맹세해 줘.”

“내 목숨을 걸고 맹세할게.”

로키가 말했다. 이상하게도, 토르가 그 말에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 하나만 할 거야.”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맞다면…로키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고 다시 탈출하기 위한 궁리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 망할 놈의 두통도 좀 없어질 지도 몰랐다.

토르가 로키의 손목을 결박하고 있는 수갑의 세팅을 천천히 조절했다. 로키는 손가락을 몇 번 풀었다. 그는 마법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 후, 그것을 안쪽으로 겨냥했다. 엄청난 집중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할 수는 있었다. 고통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이다. 집중해.

로키는 멈춰섰다. 왜냐하면 그걸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마법이, 자신의 정신 주위로 가닥가닥 엮여 있었다. 자신의 감각을 공격해 오는 낯선 따끔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가슴 속이 꽉 죄어 들어 왔다.

아무 것도 아닐 거야. 로키가 생각했다. 널 보호하기 위한 마법이겠지. 하지만 그 가닥 중 하나를 건드렸을 때, 그의 머리가 미친 듯이 사납게 쑤셔 왔다. 로키는 비명을 터뜨렸다. 다시 그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토르가 걱정으로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물었다. 로키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다가, 다시 밑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그랜드마스터는 절대 그를 해칠 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나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안 그런가?

그렇기 때문에…이 마법을 풀더라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러고 나면…그러고 나면 그 때는 정말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아팠다. 아팠다. 머리 속에서 뭔가 깊숙하고 잘못된 것이 박동했다. 로키는 낮게 신음하면서도, 계속 매달렸다. 그 덩굴손 중 하나를 가시를 빼내듯이 조심스럽게 당겨서 빼 내려고 해 보았다. 그것은 다시 원 위치로 달라붙어 버렸고, 로키는 더 세게 당겼다.

두 눈 사이를 하얗게 불사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 가닥이 스르르 빠져 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토르가 저 멀리 어딘가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르겠어.” 스크래퍼-142가 말했다.

“마법의 일종인가?”

로키는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랜드마스터가 해 놓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뭔가가 잘못되어 버렸다. 그랜드마스터가 뭘 하려고 했던 것이든 간에,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없애 버려야만 했다. 그래야 이 모든 것이 고쳐질 것이다. (하지만 그랜드마스터는 그 어떤 잘못된 일도 하지 않는걸. 마음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속삭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저항하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그랜드마스터는 네게 이런 짓을 의도적으로 한 거야.)

이런 짓이라는 게 뭐지?

로키는 다른 가닥을 붙잡고 작업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가닥들을 하나하나 풀어 냈다. 두개골 기저에서 타고 올라오는 욱신거림이 그의 감각을 두들기는 새빨간 고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거의. 이것만 끝낼 수 있다면 모든 일이 다시 다 괜찮아질 것이다. 모든 일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코에서 피가 나고 있잖아.”

토르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가 고통스러웠다. 토르에 관해서 자신이 알아야 하지만 기억할 수가 없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좋은 징조인 것 같아.”

조금만, 조금만 더. 로키는 주문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흩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너무나 강력했다. 자신이 이걸 파악해 냈다는 사실을 알면, 그랜드마스터는 아주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아주 자랑스러워….

왜 그 생각이 옛날처럼 기쁘지가 않은 거지?

마지막 가닥이 딱 하는 소리를 내고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활시위가 맨 손목에 딱 하고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로키의 머리속이 폭발했다.

 

*   *   *

 

로키는 기억했다. 모든 것을…모든 것을.

바이프로스트에서 떨어진 것. 공허로 추락한 것. 그랜드마스터가 어르듯 오, 너 마음에 드는걸, 하는 목소리…로키가 겨우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들이 터져 나온 피처럼 흘러 나왔다. 토르가 자신을 뭐라고 불렀는지…애완동물, 옷을 차려 입혀주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인형.

토르. 그의 형. 얼굴을 들여다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했던, 로키가 느긋하게 앉아서 술을 들이키는 동안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던, 그의 형. 그리고 그랜드마스터가 그 동안 얼마나 비웃고 있었을지 생각해 보면….

로키를 유순하고 고분고분하게 만들어 놓고 있던 마법이 사라지자마자 (그 힘은 그랜드마스터가 손을 봐 주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약해져 가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로키의 방어 체계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의 혈류에서 약물도 빠르게 빠져 나갔다.

적어도 로키는 그 부분은 기억하지 못했다. 약물의 효과가 다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침대에서 구역질날 정도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맨 정신인 상태로 깨어났기 때문이었다.

머리속이 요동쳤다. 안개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어도 토르의 걱정어린 얼굴은 또렷하게 보였다. 그리고 옆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로키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거기 너!”

“뭐야?” 토르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날 팔아 넘겼지!”

로키가 새된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로키는 자신에게 그렇게 고함지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날 팔아 넘겼어…. 고작 전자 거랫돈 따위로…날 그 변태 새끼한테….”

토르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아주 큰 돈이었거든.” 그녀가 말했다.

“그 얘기는 안 했잖아.”

토르의 목소리가 위험할 정도로 낮게 울려 퍼졌다. 스크래퍼-142는 고개를 돌렸다.

“좀 봐 줘.” 그녀가 말했다. “나도 가스트가 무슨 짓을 할지는 몰랐다고. 그냥 내 생각으로는….”

“네 생각으로는 뭐.”

토르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도전자가 되어 죽기 전까지 싸울 거라고만 생각했나?”

“쟤가 잘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그 단검이랑 마법을 가지고는 나랑 붙었을 때도 꽤 선전했거든.”

침묵이 흘렀다. 로키는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있는 사슬 안에서 몸을 꿈틀거렸다.

“이 사슬을 풀어주면 단검과 마법이 진짜 어떤 것들인지 제대로 보여 주도록 하지.”

로키가 으르렁거렸다. 스크래퍼-142가 토르와 로키 사이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이제는 나도 도와 주고 있잖아.” 그녀가 쏘아붙였다.

“기분이 안 좋더라고. 알았어? 그 작자가 너를 무슨 거세한 애완동물처럼 만들어 놓은 꼬라지를 보니….”

로키의 목구멍에서부터 분개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나 지금 바로 여기 앉아있는 거 알고 있지?”

로키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가, 다시 몸을 꿈틀거렸다.

“내가 대체 뭘 입고 있는 거야? 그리고—”

로키가 묶인 손을 들어올려 목을 더듬었다.

“나한테 목줄을 채운 거야?”

토르는 여전히 스크래퍼-142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널 팔아 넘겼잖아. 기억나?” 그녀가 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사실에 대해 별로 화난 것 같아 보이진 않던데.”

“네가 나를 풀어 줬으니 날 팔아 넘긴 건 그냥 넘어 가려고 했지만….

토르가 말했다.

“로키는 여기에 그렇게나 오래 있었는데, 로키가 그런 짓을 당하는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토르가 말을 끊었다. 그의 눈이 불안하게 로키 쪽으로 향했다.

마치 로키가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로키가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또렷하게 자신이 지난 몇 달 동안 무슨 짓을 하며 지냈던 건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로키는 갑자기 끔찍하게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가 미친듯이 더럽게 느껴졌다.

“날 풀어 줘.” 로키가 말했다.

토르가 스크래퍼를 흘긋 쳐다봤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렸다.

“날 찌르면 나도 똑같이 찔러 줄 거야.”

스크래퍼-142가 쭈그려 앉은 후 사슬을 풀어 주기 시작했다. 로키는 단검으로 찌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눈을 마주치려 들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덜 만족스러웠다.

손발이 자유로워지자 마자, 로키는 화장실로 뛰쳐갔다. 로키는 변기에 얼굴을 묻고 구토했다. 그랜드마스터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동정어린 소리를 하는 기억이 스물스물 타고 올라왔다. 로키는 다시 한번 구역질을 했다.

거세당한 애완동물. 장난감. 그 동안 그 자는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얼마나 즐거워했을지….

스크래퍼-142가 아직 목줄은 빼 주지 않았다. 위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로키는 침을 뱉은 후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거울 쪽으로 다가갔다.

금색의 목줄은 푸른색과 붉은색의 보석들로 장식돼 있었다. 개에게 달아놓는 목줄과 그렇게 똑같이 생기지만 않았어도, 언뜻 보면 목걸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거의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마법이 그의 안에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개목걸이는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으로는 그 조잡한 로브 (황금색, 푸른색, 붉은색의, 그랜드마스터의 색깔로 칭칭 둘러진), 자신이 입고 있는 유일한 옷가지였던 그것을 로키는 세면대 위에 올려놓은 후 태워 버렸다. 그리고 로키는 샤워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물을 뜨겁게 틀었다.

흐르는 물 아래서 로키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 오는 그랜드마스터, 한 팔은 로키의 허리를 감싸 안고, 한 팔은 그의 성기를 주무르는…. 로키는 화장실 벽을 내리쳤다. 자신이 숨을 너무 빠르게 몰아쉬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 멈추려 애썼다. 로키는 손을 주먹 쥔 채, 화장실 벽 타일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와, 부서진 세라믹이 손마디를 찔러 오는 느낌에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내 샤워실을 부숴버릴 셈이야?”

다른 방에서 스크래퍼-142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입 닥쳐!”

로키도 똑같이 사납게 소리쳤다. 로키는 물을 더 뜨겁게 틀었다.

샤워실 안에서 예상치 못한 몸의 변형은 없는지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핀 후, 피부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을 때가 돼서야 로키는 휘청거리며 샤워실을 빠져 나왔다. 몸을 닦고 자신의 옷을 소환해 낸 후에야, 로키는 두꺼운 가죽 옷이 어느 정도 자신의 몸을 방어적으로 감싸 주는 데 대해 안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토르와 스크래퍼-142가 둘 다 그를 빤히 쳐다 보았다. 로키는 이를 꽉 물었다.

“기분이 좀 나아졌어?”

토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깨끗해진 느낌이야.”

로키가 짧게 대답했다. 아마도. 자신이 다시는 깨끗해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방 구석에 누워서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후 두 사람에게 그만 좀 쳐다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토르가 조심스럽게 로키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기억하는 게…있어?”

“충분히 기억나.”

로키가 잠긴 소리로 대답했다. 피부가 움츠러드는 것 같은 느낌이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빠르게 해체되어 버리고 말았는지, 약물 혼합제와 마법 따위에 손쉽게 굴복하고 말았는지, 가장 밑바닥의 자신은 고작 이 정도의 존재일 뿐이었는지….

운명의 여신이시여. 로키는 그랜드마스터의 목을 두 손으로 조르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일부는, 그 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다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할 것 같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봐. 괜찮아 보이잖아.”

스크래퍼-142가 여전히 방어적인 어조로 말했다.

로키는 미친듯이 웃고 싶어졌다. 괜찮다라. 그래. 난 괜찮지. 보아하니 로키가 자신의 표정을 충분히 잘 통제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토르의 눈썹이 찡그려졌고 스크래퍼가 시선을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토르가 목을 가다듬었다. “뭐 필요한 건 없어?”

“물.”

로키가 입을 열었다가, 다시 정정했다.

“아니지. 술이 필요할 것 같아. 좀 센 걸로.”

토르가 반박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 하지만 스크래퍼-142가 일어서서 그에게 거의 가득 찬 술병을 던져 주었다. 로키가 그것을 붙잡았다. 코르크를 이로 잡아 뺀 후, 로키는 반 병을 한숨에 들이켰다.

독약 같은 맛이 났다. 그게 자신의 속을 좀 문질러 닦아 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랜드마스터의 지문을 태워 없애 버리는 것이다.

다시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로키는 나머지 술을 다 비워버린 후 감각이 둔해진 손가락으로 유리병을 느슨하게 붙잡았다. 스크래퍼-142가 휘파람을 불었다.

“아주…인상적인걸.” 그녀가 말했다.

“내게 말 걸지 마.”

로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내가 널…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거 알아?”

“바보 같은 믿음이었군.”

스크래퍼-142가 음울하게 대답했다. 로키가 발작적인 웃음을 내뱉었다.

“그랜드마스터가 그렇게 생각했지.” 로키가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간단한 거였어.”

스크래퍼-142가 다시 눈을 돌렸다.

“얼마나….”

로키가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동안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 날 보고 얼마나 비웃은 거지—”

“안 그랬어.”

스크래퍼가 사납게 말했다.

“재밌다고 생각한 적 없어. 하지만 이 곳에 도착하는 모든 운이 지지리도 없는 자식들을 하나하나 다 구해줬다면, 난 아마 오래 전에 죽었을 걸.”

“그만 됐어.” 토르가 말했다. “이제 로키가…돌아왔으니, 여기를 떠나야 해.”

“우리?” 로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저 노예 거래상도 우리랑 같이 간다고?”

“좆까세요, 폐하.” 

스크래퍼-142가 몸을 일으키며 뱉어냈다.

“네가 내 인생에 대해서 뭘 알아? 그저 살아남기 위해 내게 중요한 모든 것들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기분을?”

로키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이 곳에서의 선택지가 뭐가 있는지 너도 알잖아. 내겐 가지고 있는 것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했을 뿐이야. 내 위치에 있었으면 너도 똑같은 일을 안 했을 거라 말할 수 있어?”

로키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잠겨들었다. 자신도 그렇게 했지 않는가? 그것보다 더 끔찍한 일을 했지. 생존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복수심을 위해서. 그 생각이 뱃속에서 들끓고 있는 분노를 완전히 잠재워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수치심이라는 한 꺼풀을 위에 더해주었다.

로키는 두 사람이 여기 선 채 자신을 그만 쳐다보았으면 했다. 로키는 이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빠르고 멀리.

“그래서 여기서는 어떻게 빠져 나갈 계획인데.”

로키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우주선을 훔칠 거야.” 스크래퍼-142가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 전에….” 토르가 스크래퍼를 매섭게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풀어 줘야 할 한 사람이 더 있어.”

“누군데.”

지금 막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문신이 하나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로키는, 그 사실로부터 주의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계획 세우는 데 관심 있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아주 조그만 문신이었다. 푸른색 잉크로 새겨진…조그만 하트 모양의 문신.

그랜드마스터가 손수 그려 준 문신이었다. 로키가 가만히 있도록 타이르면서. 그리고 로키는 몸을 떨면서도 그렇게 했다. 그랜드마스터의 달래는 듯한 칭찬 덕분에 충분히 버틸 만 했다….

로키는 구역질을 평생 멈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친구는 절대 우리를 안 따라 올거야.” 스크래퍼가 말했다. “여기서 행복해하잖아.”

토르의 표정이 고집스러워졌다.

“내가 설득하지.”

“누구를 설득한다는 건데.” 로키가 다시 물었다.

토르가 그를 흘긋 보았다.

“헐크가 여기 있어. 그랜드마스터의 챔피언이거든.”

헐크라. 그래. 로키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갈수록 가관이었다.

“아.”

로키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토르가 그 일을 잊어버렸는지 궁금해졌다. 그냥 여기 놔 두고 가면 안 될까, 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토르의 표정은 단호해 보였다.

로키는 스크래퍼-142 (그제서야 이 여자도 이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물어보지는 않을 것이다) 가 자신에게 술 한 병을 더 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로키가 희미하게 물었다. 토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당연히 아스가르드지. 우리는 헬라를 상대해야 한다고.”

누구를 상대한다고?”

스크래퍼-142가 물었다. 그 두 눈이 거의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로키는 신음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아 눌렀다.

자신의 일부는 여전히 희미하게나마, 그랜드마스터가 자신을 다시 받아 줄 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나머지 일부는, 이 곳에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날 수만 있다면, 헬라를 아무 것도 없는 맨손으로 상대하더라도 상관 없을 거라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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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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