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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5/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5장. ‘도둑’



그 날 해야 할 일이 모두 끝난 후, 토르는 발코니에 앉아 땅거미가 지는 것을 지켜 보았다. 토르는 이제 멀쩡하게 나은 손바닥을 멍하니 문지르고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심하게 동상을 입었던 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로키가 자신을 향해 가졌던 불만감의 자국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에 토르는 아쉬움마저 느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동안 했던 모든 일들은, 로키와 함께 하고 싶다는 욕망에 영향 받아 왔다. 그 욕망에 의해 철저하게 결정지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의 끝나지 않는 삶의 순환 고리에서 늘 상수로 존재하는 사람들 중에, 왜 로키만이 자신의 관심을 온전히 사로잡게 되는지, 왜 로키만이 자신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키는지 질문하는 것을, 토르는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이번의 삶에서 자신이 살아온 몇 천년을 돌아볼 때, 그 진실은 더더욱 또렷하게 빛나는 것만 같았다. 토르는 이번 삶에서 말릴 수가 없는 존재였다. 아스가르드의 절반은 그를 두려워했다. 아홉 세계의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헬블린디는 아니었지만. 그 생각에 토르는 밤하늘을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 그 자는 마땅히 토르를 두려워해야만 한다. 그 모든 사람 중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그 자 뿐이었다.

토르가 로키와의 교제를 (두 사람의 형제애, 우정, 심지어는 부부의 애정까지도) 사랑해 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부는 두 사람 사이의 싸움 또한 즐겼다. 토르는 일이 언제나 쉽게 흘러가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런 적은 드물었다. 하지만 흠집 하나 없는 손바닥 피부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토르는 두 사람 사이의 싸움을 즐기는 데에 있어서 이제는 조금 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번만큼은 로키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 할 것이다. 이번 삶에서는 아니다.

토르는 이번 사건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작은 사고였을 뿐이다. 로키가 그다운 까칠한 태도로 토르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을 보았을 때 느꼈던 들뜬 감정이 사그라들고 나자, 로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가 조금씩 상기되기 시작했다. 시프의 말이 맞았다. 로키가 무엇을 입는지 같은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 사적이고 이상한 행동이었다. 그런 일은 잊어 버리고, 서로를 알아 나가는 데 집중해야 했다.

그것은 매 번 겪을 때마다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일이었다. 토르는 로키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같이 자라난 삶이 아닌 이상 로키는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로키는 토르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 토르를 놀라게 만들고는 했다.

그것이 토르가 로키에게 절대 질리지 않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로키는 늘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 로키의 사고 회로는 토르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짜여져 있었고, 몇 백년, 몇 천년의 경험조차도 로키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로키는 혼돈의 형상화였으며, 세상에서 가장 변덕스러운 왕국에서 태어난 가장 변덕스러운 존재였다. 로키는 토르가 삶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동안 미쳐버리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존재였다.

토르는 자신의 삶의 본질에 대해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왜 나일까? 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는 걸까? 그의 두번째 삶, 그러니까 토르가 처음으로 재탄생한 후 이전 삶의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기 시작했던 때는, 그에게 있어 무척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토르는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그를 도와 주기는 했지만, 토르는 어머니가 자신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상처로 와 닿았다. 그 때 이후로 토르는 그 사실을 혼자서만 간직해 왔고, 매 삶에서마다 몇 년의 시간 정도를 투자해 혼자서 탐색하고 연구했다. 하지만 알아낸 사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제 토르는 더 열심히 노력해야 했다. 로키의 늦은 출생은 걱정스러운 사건임이 틀림 없었다. 이 순환 고리를 로키 없이 지속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하지만 그 일은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다.

다음날 토르는 로키를 식사에 초대했다. 아름다운 테라스가 있는 작은 정원에 테이블이 마련되었다. 로키는 시간에 맞춰 도착했고, 토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으며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도록 노력했다. 로키는 검회색의 딱 붙는 바지와 은색 자수가 놓인 보라색 튜닉을 입고 있었다. 파란색 피부와 대조되어 무척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토르도 그 점을 마음에 담아 골랐던 옷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눈 앞에 드러난 모습을 보자 숨이 턱 멎는 것 같았다.

“왕이시여.”

로키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로키.”

토르가 웃었다. 이 정도로 순수하게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이미 잊혀진 감정일 줄로만 알았다.

“앉으렴.”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았다. 토르는 서빙 스푼을 가져다가 두 사람의 접시에 음식을 놓아 주었다. 로키의 시선이 스푼을 쥐고 있는 토르의 손가락에 와 닿았다.

“손은 괜찮으신가요, 왕이시여?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로키의 말이 잦아들었다. 토르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음식을 다 덜어낸 후 토르가 손바닥을 들어 로키에게 보여 주었다.

“괜찮고 말고.”

로키가 그를 빤히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토르는 알아챘다. 너무 늦게 알아챈 것인지도 몰랐다. 로키는 몸을 잔뜩 긴장한 채 똑바로 앉아 있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토르는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고 음식을 입에 집어넣기 시작하며, 그 평범한 행동이 로키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 주기만을 바랐다.

“정말로 괜찮다, 로키. 나는 화가 난 게 아니야.”

“화가 났다면 어떻게 하셨을 건가요?”

로키가 큰 목소리로 대꾸했다가, 자신의 날카로운 어조에 스스로 놀란 듯 몸을 꿈틀대며 뒤로 물러났다. 토르는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었던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조용히 포크를 내려 놓고, 로키가 몸을 웅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로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에 손가락을 꽉 누르고 있었다.

“내가 네게 화가 난다면?”

토르가 되풀이했다. 그의 목소리는 긁히는 듯한 속삭임이 되어 튀어 나왔다. 그렇다고 해도 널 해치지는 않을 거다. 아마 로키가 듣고 싶은 것은 이런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토르의 기억은 전쟁과, 전투와, 경고 없이 날아온 주먹질들로 가득 차 있었다…두 사람의 역사라는 것은 폭력으로 점철된 그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마음 속에 떠올렸듯이, 어쩌면 해결책은 그 모든 일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싸움을 해 본 적이 있느냐? 무기를 들 줄은 알고?”

토르가 물었다.

로키는 그 질문에 어리둥절한 것처럼 보였다. 로키가 마침내 대답을 꺼내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그 동안 로키는 또아리튼 스스로의 경계를 풀려고 몹시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냥은 할 줄 알아요.”

로키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 대답은 너무 당연하게 들렸고 토르는 조금 더 밀어 붙여 보기로 했다.

“활과 화살을 사용했느냐? 아니면 창?”

“막대기요.”

로키가 불퉁하게 대답했고, 토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토르가 우둔한 소리를 했다는 데 대한 증거로 로키의 눈이 가늘게 떠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식사를 마저 하도록 하지.”

토르가 앞에 놓인 접시를 손짓하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는 네 사냥 경험에 대해 전부 이야기해 주렴. 그리고 내일은 훈련장에 한번 가 보도록 하자꾸나.”

로키가 포크를 집어 들고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기조각 하나를 찍어 입에 밀어 넣었다.

“제게 싸움을 가르쳐 주신다고요?”

그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 차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죠?”

내 동생은 늘 뛰어난 전사였기 때문이지.

네가 내게 대항하여 스스로의 몸을 방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아니, 모두에 대항하여 말이다.

네가 땀을 흘리고 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너도 근육을 조금 키워야 할 것 같아서.

헬블린디의 위장을 찢어 버리러 가는 날에 너도 함께 데려 가고 싶기 때문이다.

이 모든 대답들이 토르의 마음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 중 어떤 것도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네가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토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주 좋은 스포츠이고, 좋은 운동이지. 네가 괜찮기만 하다면, 한 번 경험하게 해 주고 싶구나.”

놀랍게도, 로키가 계속 음식을 먹으며 어깨를 한번 섬세하게 으쓱하는 움직임에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물론 괜찮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    *    *


방으로 향하는 문이 등 뒤에서 안전하게 닫히고 난 후, 로키는 문에 기대 머리를 뒤로 젖혔다. 그래, 내일 아침 동튼 후, 왕이 찾아와서 자신을 훈련장으로 데려갈 것이다. 로키의 ‘사냥 기술’을 보기 위해서라고 했다. 왕은 로키가 눈여우와 스키르야를 사냥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당혹해 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큰 흥미를 보였다.

그 기억을 다시 들추어 내는 것은 씁쓸하면서도 즐거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왕은 진정으로 흥미로워 하는 것 같아 보였고, 그래서 로키는 그냥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그러다 정신이 팔려 꺼낸 이야기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여자 거인이 고기를 구해 오라고 그를 밖으로 내보냈었다. 하지만 그 날은 요툰헤임치고도 추위가 무시무시했고 사냥감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결국 로키는 지나가던 거인 두 명이 세워 놓은 야영지를 염탐하기 시작했다. 거인들이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린 후 로키는 그들이 잡은 사냥감을 훔쳐 왔다. 여자 거인은 로키가 가져온 사냥감에 매우 감명 받은 눈치였고, 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끝내 알지 못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에야 로키의 머리속에 그 어떤 왕이라도 도둑질을 한 이야기를 그다지 즐겁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 떠올랐다. 로키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토르의 눈이 유쾌하게 반짝이는 것을 본 로키는 이야기를 계속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로키는 꾸지람을 듣지는 않았다. 대신 그 이야기에 대한 왕의 반응은 칭찬과 웃음으로 마무리 지어졌고, 그 반응 역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매한가지였다.

토르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의 얼굴은 (로키는 그의 얼굴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 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너무나 어두워지고는 하는 얼굴이었다) 몇 세기나 어려 보였고, 그의 눈 속에 떠오른 표정은…

그 표정은 로키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키는 자신이 왕에게서 그런 강렬한 감정과 반응을 자아낼 때마다, 자신이 그것을 결국 후회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왕은 로키에게 전투를 가르쳐 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로키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일단 뒤로 미루기로 했다. 한 가지만이 확실했다. 왕은 자신을 옆에 두고 싶어 했다. 왕은 자신을 계속 만나려 계획하고 있었다.

내일의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로키는 가슴 속에 싹트기 시작한 자그마한 희망의 조각을 으깨 버리려 애를 썼다. 전투 훈련이라는 것은 그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몰랐다. 왕의 손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한 처벌일 지도 몰랐다. 매질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로키는 에시르 족의 관습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군가를 때려 주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그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토르의 말이 정말이라면, 정말로 단순히 로키가 필요에 의해서 배웠던 움직임들을 보고 싶은 것 뿐이라면, 로키에게 더 나은 움직임을 가르쳐 주고 싶은 거라면…로키는 그 시큰거리는 희망이 싹틔워지도록 놔 둘 것이다.

어찌 됐든, 로키가 자신 방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도 그 아무도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 로키는 마침내 몸을 펴 방 안쪽으로 들어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키는 테이블 위와 와인이 채워져 있는 금빛 띤 유리병의 가장자리를 멍하니 손으로 쓸었다. 토르와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것 때문에 초조하고 지친 상태만 아니었다면, 잠깐 밖을 산책하러 나가고 싶었다. 정원은 로키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너무나 다채롭고 아름다웠으며, 로키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색과 향기로 가득 찬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방 안에서만 제공받을 수 있는 안전함의 환상이 간절했다. 그래서 로키는 그냥 안에 머물렀다. 로키는 와인 한 잔을 따랐고 (와인을 따르는 동안 그런 사치에 탐닉하는 데 대한 죄책감으로 손이 떨렸다), 그것을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

와인의 달콤한 맛이 날선 생각을 조금 무디게 만들어 주었고, 덕분에 로키는 눈 앞의 풍경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로키의 눈이 끝이 보이지 않는 도시의 눈부신 혼란을 훑었다.

내일. 내일이면 알게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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