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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7/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7장. ‘열’



토르가 로키에게 전갈을 보낸 것은 꽤 늦은 시간이었다.

문을 짧게 두드리는 소리가 세 번 들리자, 로키는 하품을 한 후 보던 책을 놔 두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로키는 카르와 관례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카르는 이 구역에 자주 배치되는 경비병들 중 하나였고, 그래서 토르와 로키 사이에서 말을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맡곤 했다.

로키는 바로 길을 나섰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로키는 잠깐 몸을 움찔했다. 오늘 낮에 했던 운동이 꽤 격렬했던 모양이었다. 거기에다 몇 시간 동안 몸을 웅크리고 앉은 채 책을 읽으며 기다렸던 것도 근육이 이렇게 뻣뻣하게 뭉친 데 한몫 한 것 같았다.

로키는 토르 역시 지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련장에서 보낸 시간 때문이 아니라, 자문회 회의 때문에.

“로키!”

지친 표정 대신, 토르가 환하게 웃으며 맑은 얼굴로 로키를 맞았다.

“어서 오거라.”

두 사람은 발코니에 앉았다. 무겁고 따뜻한 공기가 로키의 폐 속을 채워 왔다. 이미 날은 어두웠다. 이제 로키의 눈에 너무나 익숙한 도시의 풍경은 어둠에 색이 조금 바래져 있었다. 무거운 구리색으로 변한 황금이 횃불과 등의 불빛 밑에서 어른거리며 빛을 발했다.

그리고 별들. 색색깔로 아름답게 회전하는 아스가르드의 별들.

토르가 술잔과 유리병을 가지고 왔다.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것은 없었다. 토르의 눈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있는 것과, 로키의 팔다리가 무겁게 늘어져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음.”

잔을 건배한 후 한 모금 들이킨 로키가 놀란 소리를 냈다. 평소에 마시던 와인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산뜻한 맛이 로키의 혀를 간지럽혔다. 로키는 고개를 들었다.

“축하할 일이 있나봐요?

“그럴지도.”

토르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토르는…뭔가 쑥스러워 보였다.

“회의가 잘 풀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군요.”

로키가 와인을 더 들이키며 말했다. 와인은 아주 좋은 맛이 났다. 무엇보다 그 시원한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잘 풀렸고 말고.”

토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의견 충돌도 있었지. 내가 널 마침내 만날 수 있게 된 시간이 이렇게나 늦어진 걸로 봐서 알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원하던 목적은 다 이루어 냈지.”

로키는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토르는 저런 말들을 너무나 쉽게 말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매번 로키의 머리 속에서는 끈질긴 질문이 떠올랐다. 대체 왜?

그 사실에 초조해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로키는 안전한 쪽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떤 목적이었는데요?”

로키가 와인을 좀 더 들이키며 정중하게 관심을 표했다.

“알프헤임으로부터 무기와 다른 물건들을 더 많은 양으로 수입해 오기를 제안했지.”

토르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으로 널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구나. 오늘—”

“들려 주셔도 상관 없어요.”  

로키가 자기도 모르게 날카롭게 말을 잘랐다.

“료스알프 족이 무기 제작에 뛰어난 줄은 몰랐는데요.”

토르가 말을 멈췄다. 로키는 토르의 응시하는 시선을 겨우 버텨 보다가 결국 눈을 돌렸다. 로키는 숨을 규칙적으로 몰아쉬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 대체 왜 이러는 거지?

“그들은…세이드(*주: 북유럽 신화 속 주술적 에너지)를 스며 넣은 무기들을 만들지.”

토르가 마침내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스가르드 전사들에게 익숙한 것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무기들이야. 하지만 매우 유용하지. 그 무기들을 충분히 마련해 놓고 우리 병사들이 다양한 기술을 익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로키가 한숨을 쉬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저는…”

“괜찮다. 언제든 네 마음 속 생각을 말해도 된다는 것 알잖니.”

내가 정말로?

“그저 폐하께서 왜 저를 옆에 두고 싶어하시는 지 잘 모르겠어요.”

몇 달 동안 품고 지냈던 의문이 갑자기 로키의 입술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토르가 자신의 그런 말을 알아 들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할 정도였다.

“왜, 네가 재미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라도 든 것이냐?”

토르가 입술 한 쪽을 끌어올리며 물었다.

“이 왕국에 폐하를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로키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토르가 자신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 치려 한 것과, 자신의 말에 화조차 내지 않는다는 사실 둘 다에 로키는 약이 올랐다.

“오, 그래? 언제 한번 널 자문회 회의에 한 번 데려가 보아야겠구나. 아니면 산 속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보게 해 주던가. 그 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투덜쟁이들이거든.”

토르가 웃음을 터뜨리며 유리병을 집어 들어 두 사람의 잔에 와인을 더 따랐다. 로키는 벌떡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바람에 의자가 뒤로 미끄러져 넘어졌다.

“절 놀리는 건 그만 두세요!”

토르의 웃음소리가 즉시 잦아들었다. 하지만 로키는 겁 먹지 않았다.

가슴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는 물의 표면처럼 치밀어 올랐다.

네 마음 속 생각을 얼마든지 말해도 된다, 로키. 날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로키.

로키는 토르의 말과 어조를 따라하며 내뱉었다. 시야가 양쪽 가장자리에서부터 희미해지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요, 알았어요!”

그 말과 함께 로키는 토르가 있는 방향으로 와인이 가득 찬 술잔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손이 자신의 허락도 없이 움직인 것만 같았다. 무례함을 표출하고 싶은, 자유롭게 악쓰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욕망이 그를 압도하고 말았다. 토르의 몸 위로 와인이 흩뿌려졌고 술잔은 크게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데요?”

로키가 소리를 지르며, 여전히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토르 쪽을 응시했다. 로키는 그 허울을 벗겨 버리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얼굴 밑에 정말로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까발려 내고 싶었다.

“이제는 정말로—”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던 열기가 목구멍을 때렸다. 숨이 잠겨 왔고 시야가 빙빙 돌았다. 그리고 나서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어깨와 관자놀이 속에서 폭발했다. 로키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의 몸은 어느새 바닥 위에 있었다. 어둠이 머리 속을 채워 오기 전 로키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토르의 발이 자신 쪽으로 황급히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가망 없음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자신이 죽지 않기만을 바랐다.


*    *    *


회의 후 토르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의혹과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원하던 바를 얻어 냈기 때문이다. 로키를 보는 것도 언제나 그렇듯 즐거운 일이었다. 로키와 조용히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데에는 소박한 기쁨이 있었다. 로키에게 해코지를 한 자들의 파멸이 한 걸음 앞당겨져 왔다는 생각 또한 그 기쁨에 한몫 했다.

그래서인지 토르는 로키의 말 뒤에 무겁게 드러워진 암시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 말을 얼마나 힘들게 꺼냈을지, 그리고 겨우 입 밖에 낸 말이 웃음거리로 여겨지는 것은 무슨 기분이었을지…

그리고 로키가 분노로 폭발했을 때, 토르는 자신 스스로의 기억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둘 사이 애정이라고는 한끝만치만 남은 채 싸워 대던 때의 기억들이 밀려들어오자 토르는 몸을 떨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토르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로키가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을 보았을 때 그 기억들은 다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토르는 이제 진찰대 위에 누여진 로키의 기다랗고 마른 몸을 지켜보고 있었다. 키는 작지 않았지만 어딘가 취약하고 작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로키의 몸 위에서 떠돌며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빛을 내는 소울 포지(*주: <토르:다크월드>에 등장한 아스가르드의 의료 기구)가 로키의 푸른색 피부를 자줏빛으로 물들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

토르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에이르에게 말을 걸었다.

“로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에이르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소울 포지를 잠깐 조정했다가 그것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녀가 손바닥을 로키의 이마 위에 올려 놓았다. 손이 닿은 곳에서 청록색의 빛이 섬광을 발했다.

“몸이 과열된 상태입니다. 격렬한 흥분을 겪으신 것 같군요.”

에이르의 진단 때문인지, 에이르가 그 말을 하는 담담한 태도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토르의 뺨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그러고 있었던 것은 아닌…”

“그러리라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에이르가 건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로키 님이 아무런 보호도 없이 한여름에 아스가르드를 쏘다니는 요툰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요. 아주 취약한 감정 상태에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토르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열 개 정도의 부적절한 대답을 밀어 삼키려 노력했다. 로키의 약한 얼굴을 응시하며 토르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세이드로 자신의 몸을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인가?”

“로키 님이 세이드를 사용하는 훈련을 받기는 하신 건가요?”

에이르가 답했다. 꾸중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사실은 꾸중을 듣는대도 할 말이 없었다.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의 자연 방어체계도 더이상 동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에이르가 방 안을 누비고 다니며 약병들을 잔뜩 모아 왔다.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는가? 요툰인들이 로키를 데리고 왔을 때?”

토르가 거의 속삭이듯 물었다. 에이르가 잠시 움직이던 것을 멈췄다. 그녀가 몸을 돌려 대답하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렸다.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라가 이야기를 들려 주었죠. 이 곳에 더 빨리 오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더군요.”

토르는 에이르가 자신이 할 일을 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의 마음 속이 죄책감으로 가득 찼다. 지금까지 그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경솔했던가. 로키가 당한 일에서 치유될 수 있도록 도우는 대신, 그 일에 대한 복수에만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이다. 보통 자신의 몸을 거뜬히 건사할 수 있는 로키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탓에, 로키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완전히 방치해 버렸던 것이다.

세이드.

왜 그 생각이 진작에 떠오르지 않았을까? 토르는 로키가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우려해 그를 대련장으로 데리고 갔었다.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로키의 마음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해 줄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 목적은 이루었을지 몰랐지만 그 대가는 무엇이었는가? 로키가 혹사로 실신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은 토르의 이전 삶과는 너무나 달랐다. 너무나도 달랐다. 로키의 몸에 더이상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면, 더이상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혀가 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토르는 겨우 다시 에이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로키의 몸에…오래된 상처 같은 것이 있지는 않나?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거나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로키 님이 충분히 쉬신 후 깨어나면, 그 때 꼼꼼히 진찰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르가 자신이 그만 떠나 주었으면 한다는 뜻을 넌지시 비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토르는 잠깐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었다가, 로키와 자신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든 로키의 감정 분출에 대해 기억해 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었다. 로키가 일어났을 때, 토르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를 진정시켜 주고 다시 안심시켜 줄 것이다.

“로키는 내 침실에서 쉬도록 할 것이네.”


*    *    *


물론 에이르는 반대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스가르드의 그 누구도 왕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토르는 자신의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 앉은 채, 침대 커버 위에 눕혀져 있는 로키의 고요한 형상을 지켜 보았다. 어둠 속에서 로키의 모습은 거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방의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차갑고 습한 공기가 안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토르가 도시 위로 두터운 구름을 소환해, 천둥의 속삭임 하나 없는 부드럽고 규칙적인 비를 내리우도록 했던 것이다. 에이르가 로키에게 약물을 주었고, 그의 체온을 내려 주는 마법도 걸어 주었다. 그럼에도 토르는 차가운 공기와 비가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토르는 손을 뻗어 힘 없고 건조한 로키의 손을 붙잡으며, 이상하게도 부모님 생각을 떠올렸다. 오딘은 여러 세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프리가도 곧 그 뒤를 따랐다. 오딘은 토르를 몹시 자랑스러워 했었다. 토르의 왕으로서의 면모와, 토르가 홀로 살아가야 했던 시기 동안 그의 안에서 자라기 시작한 무자비함까지. 프리가는 그 이면의 무엇인가를 보았다. 자신의 아들이 — 외동 아들이 — 어두운 감정에 굴복하기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의 눈에는 그림자가 어렸다.

토르는 이 자리에 프리가가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토르는 로키를 위해 이 자리에 프리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늘 그래 왔듯이, 프리가는 로키에게 경이로운 마법의 세계를 소개시켜 주었을 것이다.

토르는 잠에 들 계획은 없었다. 로키의 곁을 지키며 로키가 깨어날 때 바로 그 곳에 있으려 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조용한 소리와, 단순히 동생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로부터 느껴지는 편안함이 토르를 나른하게 만든 것이 틀림 없었다. 토르가 어두움 속에서부터 눈을 다시 깜빡이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신이 모로 누워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겨진 베개가 머리를 받치고 있었다. 얼굴 앞에서 거칠은 숨소리가 들려 왔다.

토르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완전히 깨어나는 데는 몇 초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토르는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토르 전하?”

마침내 토르의 눈이 초점을 되찾았다. 베개 너머로 로키의 얼굴이 보였고, 그의 표정은 불안감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기분은 좀 어때?”

토르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로키의 숨소리가 조금씩 빨라지고, 더 빨라지는 소리를 토르는 들을 수 있었다.

“이제 마침내 할 거죠. 그렇죠? 이제 하실 거죠.”

공포 어린 숨소리 사이사이로 쥐어짜져 나온 그 말은 언뜻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며 토르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이 찾아온 순간, 토르는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자신이 그 몇 달 동안 모른 척해 온 그 사실. 그가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던 로키에 대한 다른 사실들과 함께 못 본 척 해왔던 그 사실.

토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토르는 헬블린디의 졸마니들이 로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앞에서 헬블린디가 그 오만하고 뒤틀린 입으로 내뱉은 ‘왕의 쾌락을 위한 노예’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아니, 그러지 않을 거다.”

토르가 숨을 내뱉었다.

“세상에, 로키.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로키의 손이 뻗어져 나와 토르의 윗팔을 움켜 쥐었다. 놀랄 정도의 악력이었다.

“맹세해 줘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맹세해 줘요.”

“맹세하마.”

토르의 입에서 그 말은 너무도 쉽게 미끄러져 나왔다.

“널 절대 다치게 하지 않고, 강제로 가지지 않겠다고 맹세하마.”

“아니에요.”

로키가 머리를 흔들며 토르의 팔을 잡아당겼다.

“강제로 절 가지지 않겠다고만 맹세하면 안 돼요. 제게서 그런 일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을거라고 맹세해 줘요…위미르 신의 이름을 걸고…저는…저는 절대…”

토르의 팔을 붙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로키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토르는 겨우 입을 열었다.

“쉬잇, 괜찮단다…”

그리고 다음 순간, 로키는 몸을 끌어와 마른 무릎을 토르의 허벅지 쪽으로 밀착시켰고, 토르의 팔에 안겨 왔다.

로키가 자기 자신의 의지로, 혼란스러운 욕구로 부스러지고 있는 몸으로, 토르의 팔에 안겨 있었다.

몇 천년의 시간 끝에, 마침내.

토르는 로키를 더 꽉 끌어 안았다. 그의 입술이 로키의 어두운 머리카락 위를 스쳤다. 눈물이 조용히 얼굴 위로 흘러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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