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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9/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8장. ‘꿈



“이러시면 안 돼요.”

로키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은 아스가르드의 커다란 광장에서 몇 백여명의 전사들이 군사 훈련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요툰헤임은 알프헤임을 몇 번씩이나 급습했지. 알프헤임은 우리의 동맹국이고 우리에게는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

“요툰인들이 알프헤임을 공격하는 이유는 료스알프 족들이 요툰에 주겠다고 약속했던 무기들을 폐하께서 다 사들이셨기 때문이잖아요.”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멈추기 위한 일말의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는 거야.”

토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왕이시여, 제발 이런 일로 농담은 하지 말아 주세요.”

로키가 한숨을 쉬었다. 토르는 훈련 현장에서 시선을 떼고 로키 쪽으로 몸을 돌리며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얹었다.

“네 말이 맞다. 우스갯소리를 할 사안이 아니지.”

토르의 계획이 마침내 한 데 자리를 잡아 가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세이드를 결합한 무기들이 아스가르드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료스알프 왕족뿐 아니라 장사치들까지 주머니에 황금을 두둑이 챙겨 떠났다. 토르가 그들에게 제안한 가격이 너무 후했는지라, 그 엘프 족들은 대하기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요툰인들의 협상 제안에는 거의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협상하기 수월하고 신망 있는 고객을 얻은 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예상했던 대로 요툰헤임은 그 일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협상길이 자신네들 대신 어느 나라로 향했는지 공공연히 알려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 헬블린디마저도 아스가르드에 바로 군대를 보낼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그는 거리낌 없이 알프헤임에 몇 차례 공격을 가했다.

계획의 수레바퀴가 하나하나 돌아가고 있는 동안, 토르와 로키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계속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로키는 훨씬 더 편안해 보였고, 자기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토르에게 더 적극적으로 꺼내고는 했다. 그에 따라 토르도 조금 더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토르는 로키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해 주었고, 목적을 이뤄 내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 왔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로키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공포로 눈을 커다랗게 치켜 뜬 채, 토르가 이렇게 교활하고 부정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데 경악한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토르는 이 상황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를 마음 속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짓을 하는 방법은 다 네게 배운 거야. 토르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건 사실 내 모습이 아니야. 절대 아니지. 나는 이런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았어. 이건 바로 네가 내게 보여준 모습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위해 그런 계략들을 짜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네가 나를 네 무기로서 지도해 줄 수 없다면, 내 스스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저 사람들은 죽을 수도 있어요.”

로키가 잠시 후에 말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들은 전사들이다. 에시르 전사들이지. 전쟁에서 죽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고, 전쟁에서의 죽음은 그들을 발할라로 인도할 거야.”

“하지만 저들이 두고 떠나게 될 사람들은 어떡하죠?”

로키가 발 아래의 광장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물었다.

“저 사람들의 아내들, 자식들이요.”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겠지. 하지만 발키리들이 그들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토르의 손 밑에서 로키의 어깨에 힘이 빠졌다. 토르를 설득해 보려는 시도를 그만두려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가면 안 될까요?”

로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토르가 로키와 시선을 마주치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는 그를 향해 안심시켜 주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바깥으로 잠깐 나가도 될까요?”

토르는 로키의 숨겨진 부탁을 알아 들었다. 로키는 도시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것이다.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숲과 그 숲을 감싸는 산의 모습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늘 혼자 가려 하지는 않았다. 로키는 옛날보다 훨씬 쉽게 토르에게 그 곳에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고는 했고, 토르는 기꺼이 그렇게 했다.

“물론이지. 꼭 잡으렴.”

토르는 로키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 사소한 접촉조차 너무나 만족스러워서, 그렇게 하는 데 대한 마음 속 미미한 죄책감이 거의 묻혀져 버릴 정도였다. 그에 답하듯 로키는 두 팔을 토르의 목에 둘러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토르의 몸에 밀착했다. 토르의 손바닥 안에서 묠니르가 진동했다. 그리고 그들은 날았다. 도시 위를 높이 날았고 산 쪽으로 향했다.

그렇다. 이것이 토르의 발할라였다. 토르가 맞았던 몇 번의 죽음 중 어떤 것도 그를 발할라의 대전당으로 인도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는 발할라보다 열 배는 더 황홀한 행복을 선사받았다. 팔 안에는 로키를 안고, 별의 심장으로부터 만들어진 망치가 손 안에서 노래하는 것을 느끼며, 황금 왕국의 상공을 나는 것.

두 사람은 산의 정상에 착륙했다. 산 위에는 눈이 흩뿌려져 있었다. 토르는 로키를 놓아 주었다. 로키를 계속 붙잡아 안고 있고 싶은 마음, 로키의 목에 고개를 파묻고 그의 머리카락 냄새를 들이마시고 싶은 마음을 떨쳐 버리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었다. 토르가 놓아 주자 마자 로키는 눈이 덮인 바닥 위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 앉았다. 로키는 손가락으로 눈 위에 이리저리 모양을 그리기 시작했다.

로키에게 숨 돌릴 공간을 좀 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토르는 앉을 만한 바위 하나를 찾아 거기 걸터 앉은 후 기다렸다.

“어제 왕비님의 방에 갔었어요.”

한참 후에 로키가 입을 열었다.

“태피스트리를 보러 갔죠.”

토르는 작게 응답하는 소리만 내 보이며, 로키가 계속 말을 이어 나가기를 기다렸다. 로키는 그 날 이후로 프리가의 방에 꽤 자주 들렀다. 토르는 그것이 만족스러웠다.

“그 태피스트리들은 슬프게 느껴졌어요. 이전보다도 더요. 어떨 때는 기쁨과 유쾌함이 담겨 있었지만, 어제는 아니었어요. 어제는 비통이 느껴졌고…낙담도 읽을 수 있었어요.”

로키는 말을 이어 나가며 계속 눈 위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로키가 고개를 들어 토르를 놀란 표정으로 쳐다 보았다.

“전쟁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말한 건…”

“괜찮다. 계속 말해 보렴.”

“그리고 꿈을 꿨어요. 이전에 꿨던 꿈들과는 너무 다른 꿈이었어요. 보통은…”

로키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보통은 끔찍한 꿈이었고, 모호한 내용일 때는 한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 꿈은 좀 달랐어요. 저는 제가 모르는 장소에 있었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 같은 장소였죠. 아주 시끄러웠고, 지독한 냄새가 났는데…뭔가 쇠 냄새 같기도 하고, 씁쓸한 냄새였어요. 주위에는 온통 유리와 금속으로 된 벽들이 있었고요. 그리고 폐하가 거기 있었어요.”

토르는 혼란스러움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로키는 다시 토르 대신 땅을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말을 한 번 꺼내고 나자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폐하는 좀 달라 보이셨어요. 머리 모양이 달랐고, 제 생각으로는…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더 젊어 보이셨어요.”

토르는 웃음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 확실히 내 젊은 모습은 꿈결 같았지. 계속 이야기해 주거라.”

로키의 입이 몇 번 열렸다 닫혔다 했다. 로키는 토르 쪽을 향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폐하께서 지금 얼굴을 붉히신 건가? 로키는 머리를 흔들었다.

“슬픈 꿈이었어요. 기분이 끔찍했거든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제가 폐하를 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무슨 짓을 했나 봐요. 손이 뭔가를 누르고 있는 게 느껴져서 손을 내려다 봤는데, 제 손 색깔이 창백했어요. 폐하의 손처럼 말이에요.”

로키는 눈을 손으로 단단히 뭉쳐 그것을 손바닥 안에서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로키는 그것을 언덕 너머로 내던졌다.

“저는 폐하를 다치게 만들었고,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엄청난 실망감이 저를 덮쳐 오기 시작했어요.”

산 정상에 침묵이 내리앉았다. 토르는 열심히 생각했다. 그는 흥미를 느끼는 동시에 흥분하고 있었다. 로키의 말이 맞았다. 그냥 평범한 꿈 같지는 않았다. 이전 삶의 환영일까? 하지만 로키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없었다. 오직 토르만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물론…지금까지 로키가 그런 꿈들을 혼자서만 간직해 왔다면 이야기가 달랐지만. 만일 이번이 로키가 처음으로 – 지금까지의 여러 삶 중 처음으로 – 토르에게 이런 기묘한 이야기를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느낀 순간이라면? 그 생각이 토르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 왔다. 하지만 슬프게도 일리 있는 생각임에는 틀림 없었다.

“내 어머니께서는 재주가 많으신 분이셨지. 어머니는 환영들을 보셨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아시곤 했어…그 태피스트리들이 아주 특별한 물건들이라는 것은 너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거기서 보이는 것들은 기억일수도, 미래의 환영일 수도 있어.”

토르는 조심스럽게 로키를 향해 말했다. 로키의 머리가 홱 들렸다.

“저는 폐하를 해하고 싶지 않아요.”

로키가 항의했다.

“그게 제 미래일 리가 없어요. 얼마나 끔찍했는지 몰라요.”

토르는 로키 쪽을 응시했다. 어린아이처럼 눈 위에 주저 앉은 채, 파란색 입술이 불만스럽게 말려 있는 로키의 모습은 아주 볼 만한 광경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북받쳐 견딜 수가 없었다. 토르는 벌떡 일어나 로키를 등진 채, 주위의 숲을 멍하니 쳐다보며 숨을 고르려 애썼다. 그의 마음 속에 어떤 행태로든 늘 존재해 왔던 사랑, 그가 지금 느끼고 있는 사랑이, 갑자기 그를 날카롭게 찔러 왔다. 자신이 살아온 삶들의 모든 우여곡절이 언제나 자신을 한 장소로만 인도한다는 사실이, 갑자기 더 이상 수수께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은 언제나 로키의 곁에 도달했다. 모든 것이 로키와 관련된 일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토르를 해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있는 지금 이 로키. 그리고 토르가 그를 가까이 당겨와 입술을 맞추기 전까지 피투성이가 된 이를 악다물고 토르의 몸에 칼을 깊숙이 박아 넣던, 미쳐 날뛰는 로키. 그 모든, 수많은 로키 – 토르는 그 모두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

조그만 속삭임 같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 자리잡은 신뢰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토르에게서 분노의 징후가 보일때면 늘 어쩔 줄 몰라 하고는 했다. 하지만 토르는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몸을 돌렸다.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러신 건가요?”

로키가 두려움 반, 부루퉁함 반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토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속으로 삼키려 노력하고 있던 탓에 그 웃음은 쉰 목소리가 되어 튀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니다. 이리 오렴…네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리고 로키는 토르가 원하는 대로 했다. 로키는 걸음을 떼 다가와 토르의 품에 안겼다. 로키의 입에서 놀란 듯한 ‘윽’ 하는 소리가 작게 튀어 나왔고, 토르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팔 힘을 조금 느슨히 풀었다.

그리고 토르는 로키를 껴안은 채 천천히 무릎을 구부려 앉았다. 그의 팔이 이제 로키의 허리께를 껴안았고 얼굴은 로키의 가슴 아래부분에 밀착했다. 로키가 놀라 웃음을 터뜨렸다. 로키의 손이 잠시 위에서 방황하며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로키의 손이 토르의 어깨 위에 얹혀져 왔다. 로키는 토르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만지작대기 시작했다.

“뭐 하시는 거에요? 제가 한 말 때문에 그러시는 거에요?”

로키가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목소리에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토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토르의 코가 갈비뼈 위로 파고 드는 느낌이 간지러웠는지 로키가 몸을 꿈틀거렸다. 로키가 경고하듯 손에 쥔 토르의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토르는 자신이 원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빨리 로키를 놓아 주었다. 이것보다 더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산을 떠나려면 다시 한번 비행을 해야 했고, 로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어 그 여정을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친밀한 신체 접촉을) 로키가 불쾌히 여기도록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토르는 참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로키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고맙다.”

“뭐가요? 제가 폐하를 다치게 했던 꿈이 싫다고 한 것이요? 제가 그런 일을 즐길 리가 없잖아요. 저를 부당하게 대하신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이에요.”

토르의 유쾌한 기분이 조금은 걷어져 나갔다.

“그런 말을 해 주다니 고맙지만, 그 말이 사실인 것 같지는 않구나.”

로키가 팔짱을 꼈다.

“폐하가 절 부당하게 대하시면 바로 알려 드리도록 하죠.”

토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반대의 상황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이 지금 처한 위치에서조차 말이다.

“그 말 꼭 내게 약속하거라, 로키.”

황금 왕국이 그들 앞에 펼쳐져 있었다. 곧 전쟁에 내던져질 왕국이었지만, 지금 당장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꼭 약속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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