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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10/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10장. ‘복수’



묠니르와 그 뒤에 담긴 토르의 힘이 헬블린디의 배를 가격했고, 헬블린디의 몸은 거의 절반으로 접혀진 채 바닥에 무릎 꿇려졌다.

그 자의 내부는 아마 치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박살 났을 것이다. 헬블린디가 몸을 일으키려 시도하려다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며 토르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주의를 기울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자신이 이미 충분한 손상을 가했음을 토르는 확신했다.

토르는 헬블린디의 목 뒤에 손가락을 박아 넣은 후 그의 머리를 강제로 젖혔다. 무릎을 꿇은 거인의 키는 토르보다 약간 작은 높이였다. 하지만 그 작은 차이만으로도 충분했고 토르는 그 자의 얼굴에 대고 조소했다. 짧았으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두 사람이 왕 대 왕으로 여기에 있었다. 그 전쟁은 너무나 짧고 너무나 피투성이였는지라 전쟁보다는 한 번의 전투 정도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보다는 더 길고 질질 끌어 왔던 전투를 토르는 지금 바로 이 곳에서 끝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토르는 알아야만 했다.

“왜 그였지?

대답은 없었다. 토르는 헬블린디의 턱 밑에 묠니르의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노예 말이다. 왜 그였지?”

토르가 되풀이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네 국민들의 목숨을 살려 주는 것 정도는 고려해 보마.”

물론 토르는 헬블린디의 목숨을 살려 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미 그러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헬블린디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토르가 등지고 서 있는 전투와, 흘려진 피와, 저항으로 인해 이미 들쑤셔져 있던 분노가, 다시 한번 토르에게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마침내 헬블린디가 입을 열었을 때, 입가에 함께 떠오른 비웃음이 그의 얼굴을 비틀어 놓았다. 광기에 가까운 무엇인가가 그의 눈 안에서 번뜩였다.

“네게 좋은 창부 역할을 해 주었나? 나도 내 스스로는 사용할 일은 없었지만 여러 번 지켜보기는 했지. 진짜 거인의 좆 앞에서는 조그맣기 그지 없더군. 내 어머니의 작고 약해빠진 사생아 새끼—“

토르는 그가 말을 끝낼 기회를 주지 않았다. 토르 속에서 달여지고 있던 태풍이 끓어 넘쳤다. 힘이 헬블린디의 몸을 관통해 지나갔고, 그의 두개골 안에서 힘의 비명이 메아리 쳤다.

헬블린디는 폭발하는 하얀 불꽃 안에서 최후를 맞았다. 그 자의 머리는 그 자리에서 박살 나 버렸다.

토르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가 조용하다는 것이 갑자기 의식되기 시작했다. 물론 거친 돌풍이 그의 다리를 감고 있는 망토를 때리는 소리나,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산비탈을 따라 미끄러져 내리며 나는 삐걱대는 소리는 완벽히 침묵하지 않았다. 헬블린디와의 싸움이 토르를 나머지 군대와는 꽤 떨어진 곳까지 데려다 놓았다.

헬블린디의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잔인한 분노를 넘어서, 토르는 그 마지막 말을 숙고했다.

로키는 왕비의 혼외 관계의 결과물이었으며, 일반적인 상황보다 천 년은 더 늦게 이 세상에 도달했다. 물론 헬블린디가 이야기한 것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말이다. 자신이 곧 죽음을 맞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더 높을까, 아니면 거짓? 같은 왕을 싸움 끝에 쓰러뜨리는 와중 보잘것없어 보이는 누군가의 운명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헬블린디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 보인 짓이라는 점을 토르도 이미 알고 있었다. 헬블린디가 말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복수의 목적이었을 것이다. 헬블린디가 자신의 손에 죽는 동안 그 자의 눈에서 그 정도는 읽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토르는 그 사실을 너무 깊게 곱씹지는 않기로 했다. 나중에 충분히 그럴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는 별을 올려다 보며 방향을 가늠한 후 손 안에서 묠니르를 회전시켰다. 토르는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다시 자신의 부대에게로 돌아갔다.

토르가 헬블린디를 끝장내기 훨씬 전부터 이미 전투는 아스가르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 왕의 죽음과 함께 요툰인들은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저항은 무로 돌아가고 있었다.

토르의 심장이 뛰는 박자에 따라 요툰헤임의 남색 하늘이 요동쳤다. 처음에는 전투의 분노로 빠르게 뛰던 그것이, 만족감이 스며들어 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조금 더 안정된 속도로 박동하기 시작했다.

토르는 지금 당장 로키를 보고 싶었다.


*    *    *


바이프로스트가 내려진 자리 가까이에 천막이 줄지어 서 있었다. 주위에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져 있었다. 막사에 남겨진 부대 또한 전투길을 나선 부대 만큼이나 빼어난 이들이었다. 로키가 발을 딛는 곳 어디에서든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남녀들도 전쟁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터나 그들은 대신 이 곳에 남겨지고 말았다. 그 생각이 로키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전쟁에서는 언제나 이러한 진영을 세우는 것 또한 필요하며, 군대를 이루는 일부의 사람들은 이러한 긍지의 희생 역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토르가 설명해 주었음에도 그랬다. 단순히 로키를 위한 일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후방에서의 기습이나 역습을 늘 주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티르가 이 곳에 있었고, 로키의 곁에서 떨어지지를 않으려 있었다. 그리고 로키는 이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외손잡이 장군은 후방에 남아서 왕의 친우를 지키라는 토르의 명을 받들던 당시에는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서는 막사의 나머지를 채우고 있는 것과 똑같은 조바심이 거의 열 배 정도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토르 폐하는 확신에 차 있었어요.”

티르의 발걸음이 화난 어린아이의 쿵쿵거리는 그것과 비슷하게 들리기 시작할 무렵 로키는 말을 건네 보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왕실 막사에 함께 있었다. 실크와 모피로 둘러싸여진 견고한 막사의 구조는 바깥의 사나운 추위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지도와 로키에게는 익숙지 않은 전략용 기구들이 잔뜩 널려져 있었다. 화로가 불타오르고 있었고 안락의자도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다. 침상 또한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전쟁 전날 밤 토르가 막사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로키는 그 침상을 토르와 함께 쓰지는 못했다.

“폐하께서는 열 다섯 살이셨던 때 부터 확신에 차 계셨지요.”

티르가 대답하며 발길을 멈췄다. 그가 로키를 향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눈길을 던졌다. 로키는 그 시선을 버텨내려 애썼다. 자신을 향한 그의 노골적인 의심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티르의 존재 자체가 신경 쓰일 뿐이었다. 그는 몸집이 큰 사내였다.

그리고 그는 토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확신감에 근거가 없었던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조차 없군요.”

티르가 불쑥 말했다.

로키는 그 후 한참 동안 어린 토르의 모습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자신이 그 나이였을 때의 기억 또한 떠올려 보았다. 그 시절의 기억 대부분은 로키가 여자 거인에게 대답할 수 없는, 혹은 대답할 마음이 들지 않게 만드는 백만 개의 질문을 던져 대는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의 상상력은 꽤나 많은 심상을 제공해 주었다. 어느 정도는 토르가 그동안 들려 주곤 했던 이야기들에 의해 또렷해진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보다는 로키의 마음 속에서 어른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가닥가닥의 무엇인가가 그를 인도하고 있었다. 그를 진실로 향해 이끌어 주는 다정한 손이 있는 것만 같았다.

로키가 이미 그 느낌에 익숙해져 있지만 않았다면 불안함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요툰헤임에 있는 느낌은 묘했다. 공기가 그에게는 익숙했고 바깥 온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로키는 눈 깜짝할 새에 그것을 아스가르드의 무더운 열기와 맞바꿔 버릴 것이다.

로키는 앞으로 영원히 이 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날이 저물고 진영 막사가 잠에 들기를 준비하기 시작할 때까지 그 생각은 로키의 머리속에 맴돌았다. 로키는 티르에 대해서 계속 생각했다. 그는 정직하고 충실한 사내처럼 보였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점점 궁금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저 추위 속 어딘가에서 로키의 동포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토르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는, 티르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티르가 잠시 몸을 쉬기 위해 의자에 앉았을 때, 로키는 모피를 몸에 더 단단히 감싸며 입을 열어 물었다.

“폐하에게 저 같은 사람이 많았나요? 폐하의 삶 속에서요.”

“연인 말입니까?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요. 젊은 시절 몇 명 뿐이었습니다.”

“저는 연인이 아니—“

그 대수롭지 않은 전제가 로키의 옛 공포를 들쑤셔 왔다.

“당신 종족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요. 폐하께서 요툰헤임을 여행하며 거의 한 세기를 보내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런 얘기는…제게는 해 주지 않으셨어요.”

티르가 로키 쪽을 쳐다보며 말을 멈췄다. 로키는 그 뜯어보는 듯한 시선에 움찔하지 않도록 겨우 버텼다.

“그래요? 두 분께서 요툰헤임에 대한 지식만큼은 공유하시는 줄로 알았지요.”

로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며 시선을 돌렸다. 토르는 한 번도 자신이 왜 로키를 그렇게 곁에 두고 싶어하는지 제대로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 그리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 많은 나날 중 왜 한 번도 자신이 요툰헤임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 적이 없을까?

하지만 그에 무슨 계략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로키는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게 없었다. 로키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토르가 정말로 몸소 이 왕국을 여행했더라면, 자신의 사냥 이야기는 토르에게 그 어떤 가치도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기묘한 경위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토르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예전에는 그럴 거라 믿었을 지는 몰랐다. 그럴 거라 너무 강경하게 믿어버리는 바람에 공포감이 자신을 거의 마비시키고는 했었다. 하지만 로키는 그 때보다 훨씬 더 잘 대응하고 있었다.

간이 침대에 누워 불안하게 잠을 청하며 로키는 그 사실을 마음 속에 기억하도록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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