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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11/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11장. ‘도피’



자신의 삶 내내 로키는 자신의 신체와 마음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불운한 상황을 많이 겪어 왔다. 배고픔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일, 고통으로 의식이 혼미해졌던 일, 공포로 숨이 막혀 들어 거의 실신할 뻔 했던 일. 하지만 지금 로키를 잠에서 깨워낸 것은 그 중 어떤 것과도 다른 느낌이었다.

먼저 의식이 드문드문 돌아왔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대한 자각은 그것보다 늦게 돌아왔다.

그러고 나자 로키는 자신이 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간이 침대로부터 일어났던 것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는 것은 발작적으로 이불을 차고 몸을 비틀며 잠에 들려 노력했던 것과, 마침내 지친 기운이 무겁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잠이 빠져들던 것 뿐이었다.

여전히 잠에 들었을 때 입고 있던 옷을 걸친 채 그는 막사 중앙에 서 있었다. 겨우 용기를 내 주위를 둘러보던 로키는 티르가 안락의자에 앉아 코를 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어깨에 모피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 느릿느릿한 숨소리에 맞춰 턱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로키는 침대로 돌아가야만 했다. 침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토르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은 없었다.

토르의 생각이 떠오르자 마자 로키는 비틀거렸다. 상체가 앞으로 뛰쳐나가려 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하체가 저항했다. 로키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 로키는 막사를 지탱하는 장대를 붙잡아 겨우 몸을 지탱했다. 그는 장대를 생명줄처럼 붙잡은 채 버텼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바깥에서 거친 바람의 울부짖음이 들려 왔다. 밖으로 발을 내딛기만 해도 그 울부짖음이 자신을 얼음같은 이빨로 베어 물어 올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이 곳이 로키가 있어야 할 곳이다. 안전한 상태로, 자신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 이 곰 같은 장군 옆에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토르가 자신을 괴롭게 한 자들을 학살하는 동안 말이다. 자신의 왕이 복수를 꾀하며 전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로키의 마음 속에는 그러한 복수의 생각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무척 기묘한 일이었다. 로키는 그저 토르가 전쟁에 굶주린 사내라고 믿는 쪽을 선택했다. 진짜 이유를 탐색하려 드는 것은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토르의 헌신이란 여전히 로키가 지금까지 감당해야 했던 것 중 가장 무겁고 두려운 짐이었다. 그래서 로키는 그저 눈을 감은 채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을 해야만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몸이 그 어떤 고문조차 가능치 못한 방식으로 부숴져 버릴 것만 같았다.

어릴 적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로키는 비슷한 행동을 하고는 했다. 털가죽 밑에 숨은 채 시야 위로 별들이 폭발할 때까지 눈을 꽉 감고 버티며 괴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척을 하려 했다.

잔뜩 지쳐 있는 마음을 탓하며 로키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몇 걸음만 걸어가 침대 위에 몸을 눕히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의 몸부림이 티르를 깨웠다. 티르가 놀란 콧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깜빡거리던 티르의 시선이 편안한 튜닉과 바지를 걸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로키를 발견했다.

“왜 일어나 계시는 겁니까?”

티르는 상냥하게 들리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티르가 천천히 발을 딛고 일어나는 모습에 로키는 몸을 살짝 떨었다. 티르의 움직임에는 신중함이 어려 있었다.

“잠이 안 와서요.”

로키가 겨우 말을 뱉어냈다. 입술이 마비된 것 같았다.

“글쎄, 저는 잠을 자면 안 되는데도 자고 있었군요.”

티르가 대답했다. 이제 그의 쾌활한 목소리는 명백히 억지로 짜내진 것처럼 들렸다. 티르는 로키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도망치는 것?

로키는 정말로 도망치려 하고 있는 것일까?

“앉으시지요.”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그것 말고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로키는 마음을 굳게 먹었고, 놀랍게도 쉽사리 의자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로키는 자리에 앉으려 했다. 하지만 다시 무언가가 그를 끌어당겨 그의 몸을 앞으로 몰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하지만 이제 로키는 왜 그게 문제인지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로키는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로키는 더 이상 제멋대로인 자신의 팔다리에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았다. 잠깐 잊어버렸지만 이제 기억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는 가야할 곳이 있었다. 토르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해해 줄 것이다. 토르는 로키가 이 일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그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전쟁을 준비하느라 너무 바빴던 것이다.

로키는 차갑게 웃으며 막사 입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서둘러야만 했다. 더 빨리 갈수록 더 빨리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팔을 붙잡는 것을 느끼며 로키는 놀라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티르였다. 로키는 짜증스럽게 그의 손을 떨쳐내려 했다.

지금 가야만 했다.

“이거 놔요. 저는 가야만…”

“넌 아무 데도 못 간다, 요툰인.”

티르가 말했다. 로키의 귀에 그 목소리는 파리가 윙윙대는 목소리처럼 들릴 뿐이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함정인가? 대체 무슨 짓을—”

이럴 수 없었다. 로키는 서둘러야만 했다. 이럴 시간 따위는 없었다. 로키는 다시 한 번 티르의 손아귀를 떨쳐내려 했다. 티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지났다. 너무 오랫동안 서 있기만 했다. 그는 가야만—

로키의 주먹 쥔 손 위로 울퉁불퉁한 얼음 덩어리가 튀어 나왔고 로키는 팔을 휘둘렀다. 티르가 바닥에 쓰러졌다.

마침내. 그는 자유였다. 이제 떠날 수 있었다.


*    *    *


날아 돌아오는 토르의 시야에 막사가 점점 가까워졌다. 바이프로스트가 자리잡고 있는 넓은 들판 옆에 아직 무리 지어 잠들어 있는 막사가 보였다. 토르는 먼저 부대 쪽을 점검했다. 그들은 승리에 도취된 채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토르가 이 곳에 돌아오는 것을 저지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르는 왕실 막사에 이르렀을 때 눈썹을 찌푸렸다. 눈더미 위에 뭔가 이상한 형체가 있는 것이 어둠 사이를 가르고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착지하기 직전에 토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티르가 눈더미 위에 쓰러진 채 추위로 파랗게 질려 있었다. 관자놀이의 상처에서는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토르의 고함 소리가 막사 전체를 깨웠다.


*    *    *


막사 안은 비어 있었다. 티르의 상처를 발견한 순간부터 토르가 두려워했던 일이었다. 근위병들이 내내 자리를 지키며 불침번을 서 있었지만 그 중 누구도 누가 오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혹은 누가 떠나는 것도.

“자네들의 대장이 자네들 막사 한가운데에서 공격당했다.”

토르가 앞에 모인 병사들을 향해 천천히 말했다.

“이 적군의 영토 위에서 말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헬블린디를 보며 느꼈던 것을 분노라고 생각했다면, 토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에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로키가 없어졌다.

그리고 토르가 그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두 사람은 아스가르드에 평생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따뜻한 산들바람 아래서 포도를 먹으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토르의 머리속에는 복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헤아리기를 포기한 몇 천년의 삶 후에도, 토르는 여전히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토르는 짤막한 명령을 내려 수색대를 보낸 후, 맹렬하게 묠니르를 휘두르며 허공 위로 뛰쳐 올랐다. 토르는 번개를 불렀다. 번개가 머리 위에서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너무 날카롭고 짧은 불꽃의 번개이기는 했지만 발 아래 땅을 훑어 살피는 데는 충분했다.

로키는 어디 있지?

병사들에게 명을 내릴 때 토르는 침입자가 티르를 공격하고 자신의 친우를 납치해 간 것이 확실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허공 중에 홀로 남은 지금에야 토르는 자신이 마음 속에 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티르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티르 이외에는 그 누구도 해를 입지 않았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이 헬블린디의 계략이었을지도 몰랐다. 전쟁이 일어나도록 도발한 후…그 후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로키를 다시 데려가는 것?

토르는 타인들에게 자신과 로키의 관계가 어떻게 비추어졌을지 미친 듯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친구들마저 무슨 생각을 했던가? 그들은 처음부터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펜드랄은 자신을 비난했었고…시프도 자신의 방식대로 그렇게 했었다.

하지만 토르는 그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토르에게 있어서 로키를 자신 곁에 둔다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이고, 너무나 옳은 일이었기에, 토르는 단 한번도 은밀한 속삭임이나 추측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로키를 목표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저기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눈이 헤집어진 흔적이 있었다. 토르는 그것을 발견하고 돌진해 날아갔다. 흔적을 따라가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흔적이 이어지는 곳이 옛 성의 폐허라는 사실을 알아챈 토르는 흠칫했다.

몇 번의 삶에서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기에, 토르에게는 익숙한 구조의 장소였다. 어떤 삶에서는 그 곳에 초대받아 간 적도 있었다.

헬블린디의 권력의 중심지는 저 멀리 북쪽 다른 곳에 위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성의 구조는 바위투성이의 요툰헤임 한중간에서도 또렷하게 눈에 띄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 곳이 로키의 집일까? 집처럼 느껴졌을까?

로키가 단순히 도망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 토르의 뱃속에 차가운 무게로 내려앉았다. 그 증거는 너무나 설득력 있었다.

로키가 티르의 존재에 겁을 먹고 폭발해 버린 것일 수도 있다. 토르는 그 가능성을 잠깐 떠올리며 미미하게 마음을 놓았다가, 앞서 나갔던 생각을 따라잡자마자 죄책감으로 몸을 떨었다. 그것은 결코 마음을 놓아도 될 만한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생각이 짧기 그지 없었다.

성에 접근한 후 토르는 부드럽게 내려 앉았다. 오래된 성벽이 바람을 조금은 막아 주고 있었고, 발자국이 조금 더 또렷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토르는 몸을 숙여 자국을 살폈다.

그 발자국이 단 한 사람에게만 속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토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성인 크기의 서리 거인이 만든 발자국의 크기는 절대 아니었다.

충격적인 찰나 동안 토르는 그냥 몸을 돌려 떠나고 싶었다. 이것이 로키가 원하는 일이라면, 토르에게서 도피한 상태로, 혼자 남겨지고 싶은 것이라면…. 자신은 로키에게 그 어떤 것도 강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두 사람이 친밀한 관계가 되지는 않았을 지는 몰라도 토르는 늘 로키를 자신 가까이 두었다. 언제나.

로키에게 자신의 존재란 증오스러울 뿐일까? 이제 정말로 이번 삶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것일까?

그냥 여기서 이번 삶을 끝내 버려야 하는 것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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