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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Rulers Make Bad Lovers (1/7)

토르로키 / Thorki

"Rulers Make Bad Lovers(통치자는 좋은 연인이 못 된다)"

by fairychangeling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4347620/chapters/3311467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C1qQapE.png)
  • 연하토르x연상로키의 북유럽신화 베이스 AU입니다. 
  • 작품의 기본적인 설정은 북유럽신화의 설정을 따릅니다. 토르와 로키는 형제로 자라난 사이가 아니며, 로키는 오딘과 피의 서약으로 이어져 있는 관계이고, 토르는 오딘과 프리가가 아니라 오딘과 요르드 사이에서 난 자식입니다. 



*    *    *



1장. 

’길을 선택하라. 내가 기도해줄 것이니‘


“쓸모 없군.”

오딘이 내뱉었다.

바닥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있던 로키는 눈을 들지 않았다. 왕의 장광설에는 이미 익숙한 로키였다. 왕은 늘 뭔가를 더 원했으며 로키는 이미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다. 왕은 영토를 정복하고 사람들을 정복하고 싶어 했다. 로키는 그렇게 되도록 착실히 도왔다.

“이번에는 무엇이 걱정이신지요, 왕이시여?” 로키가 물었다.

“내 후예.” 대답이 들려왔다.

“아, 그것 말이군요.”

로키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그것까지 드릴 수 없다는 것은 아실텐데요.”

“그러면 네 능력과 같은 것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보거라. 내게 강한 아들들을 선사할 이가 누구인지 말하거라.”

로키는 눈을 들었다. 로키는 자신의 혐오감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저 늙은이의 몸뚱아리 아래 누군가 깔려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입가가 비틀어져 올라갔다. 오딘도 한 때는 수려했으나 이제는 흉터 지고 회색빛을 띠어가기 시작했다. 한 때는 전쟁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그였지만 이제 나이가 들면서 그 집착은 왕위 계승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로키는 벨트의 주머니에서 룬이 새겨진 돌 몇 개를 꺼내 앞의 바닥 위에 던졌다. 돌이 바닥에 멈춰선 후 로키는 그것을 내려다 보았다.

“여인 프리가가 폐하께 아들들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녀와 혼인하시지요.”

로키가 말했다.

오딘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 여자는 치유사이지 않느냐. 그 능력이 내게 무슨 힘을 주겠느냐?”

로키는 다시 돌들을 내려다 보았다.

“힘만을 원한다면 거인 그리드와 침실에 드십시오. 그녀가 낳는 자식들은 강할 것입니다.”

오딘이 한참 침묵한 후에 고개를 흔들었다.

“야만적인 힘만이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요르드와 동침하십시오.”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한 로키가 툭 내뱉듯 말했다.

“대지의 여인입니다. 그녀가 낳은 자식들은 폐하께서 갈망하시는 것 같은 힘을 지니고 태어날 겁니다.”

오딘이 갑자기 손을 뻗어 로키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었다. 그가 로키의 머리를 뒤로 잡아당겨 자신을 올려다보게 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떠하냐, 마녀? 네가 낳은 자식은 그 중 가장 강력할 터인데.”

오딘의 한 쪽 눈이 욕망으로 번득이며 로키의 몸을 훑어 내렸다.

“제가 낳은 자식은 괴물이 될 겁니다.”

로키가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로키는 오딘의 손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몸부림쳐 억지로 몸을 떼 냈다. 로키의 눈이 오딘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제가 낳은 자식을 원하신다면, 폐하의 심장을 잘라 내서 제가 그걸 먹게 하시지요. 그 외에 다른 방법으로 절 설득하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오딘은 그를 노려보았다. 로키는 굴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다. 한참 동안 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로키는 오딘이 혐오스러웠다.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로키는 이 남자를 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속박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오딘이 죽는 날까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이 로키가 원하는 만큼 빨리 찾아올 기미는 없어 보였다.

로키는 오딘이 가장 갈망하는 것을 줄 생각이 절대 없었다. 물론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말이다. 로키는 오딘이 그 선택권을 빼앗아버릴까봐 두려웠다. 오딘이 명령을 내린다면 로키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

마침내 오딘이 말했다. 오딘의 시선이 로키 쪽을 떠났고 로키는 안도감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프리가와 혼인해 왕비로 삼고, 요르드와 그리드와 잠자리에 들도록 하겠다. 그들이 낳은 자식들 중 아스가르드에 가장 가치 있는 자를 왕위에 앉힐 것이다.”

“그렇게 하시지요.”

로키가 대답했다.

오딘이 자신 앞에 놓인 선택지 중 하나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짐작했어야 했다. 오딘은 늘 욕심 많은 사내였던 것이다.


*


프리가 왕비는 발두르, 호드, 그리고 헤르모드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로키는 세 명 모두를 팔에 안아 들어 보았고, 그들 중 누구에게서도 특출한 면모를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입 밖에 내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오딘은 그 자식들과 왕비에 대해 만족스러워 했다. 로키는 그 두 사람이 서로만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확신했었지만, 오딘은 자신의 혈통이 프리가를 통해서만 이어지는 데 만족하지 못했다.

자신이 공언한 대로 오딘은 거인과 대지의 여인을 찾아갔고 두 사람 모두와 자식을 두었다.

그리드는 한 명의 자식을 낳았다. 역시 아들이었고, 그의 이름은 비다르였다.

로키는 그 아이와 어머니를 찾아갔다. 이미 맷돌만큼이나 무거운 아이를 팔에 안아든 로키는 그 아이가 거인으로 자라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서는 아무 특징도 엿볼 수 없었고,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 지 예견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을 벌써 알기에는 너무 일렀다.

마지막으로 로키는 요르드를 찾아갔다. 요르드 역시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은 토르였다.

요르드는 로키를 반강제로 집에 맞이했으며, 로키가 요람으로부터 토르를 들어 올리는 것을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내 아들이다, 마녀. 그는 토르 요르드슨이야. 오딘은 그 아이를 데려가지 못 할 거다.”

“나는 당신에게서 이 아이를 뺏어 가려는 것이 아니야, 요르드.”

로키가 대답했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당신이지. 나는 그저 아이를 보고, 이 아이가 미래에 우리의 왕이 될 사람인지 판단하고 싶을 뿐이야.”

아이는 발그레한 볼을 하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황금색이었으며 통통한 다리와 팔과 밝은 푸른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오딘의 모습은 눈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아이였다. 로키는 그 점이 꽤 마음에 들었다.

로키는 아이를 팔에 안아 들고 집중해서 그를 살폈다. 하지만 토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지에 대해서는, 깜빡이는 환영 그 이상으로 볼 수 없었다. 토르의 작은 몸 안에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필멸자의 통제를 넘어선 그런 힘이었다. 하지만 그 힘이 어떤 형태를 띨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예기치 못하게, 그 아기가 로키를 향해 웃었다.

오딘의 자식들 중 누구도 로키에게 웃어 보인 적이 없었다. 로키가 그 아이들을 안아 들었을 때 아이들은 울고 비명을 질렀다. 로키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면, 아이들은 로키가 자신들을 살피는 동안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빤히 올려다 보며 조용히 팔에 안겨 있었다.

토르가 통통한 손을 내밀었다. 토르는 로키의 기다랗고 어두운 색의 머리카락을 쥐어 잡아 당기며 행복하게 꺄르륵대는 소리를 냈다.

“이 아이가 미래의 왕 재목인지는 잘 모르겠군.”

로키가 멸시 어린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바보라는 사실 정도는 알 것 같아. 날 두려워할 만한 정신머리조차 없는 것을 보니.”

요르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널 왜 두려워 하겠어? 넌 그 아이를 절대 해하지 못할 거고, 그 아이도 그 사실을 알아.” 요르드가 말했다.

로키가 웃었다. 요르드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오딘의 자식들 중 오로지 토르만이 미래에 자신과 왕이 공유하게 될 속박 관계를 감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토르는 반 필멸자였고, 정말로 오딘의 다른 자식들이 모르는 모종의 지식을 지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내가 가장 총애하는 아이는 너로 삼도록 하지.”

로키가 토르를 향해 말했다. 아기의 미소가 더더욱 환해지는 것을 보며 로키는 즐거워졌다.


*


그 날로부터, 로키는 세 가족에게 투자할 시간과 왕에 대한 의무를 다할 시간을 적절히 분배했다. 로키는 비다르와 토르를 매년 방문했고 궁에 있을 때는 프리가의 세 자식을 만나러 갔다.

여전히 오딘의 자식들 중 토르가 로키의 가장 총애하는 아이였다. 아이들 중 토르만이 자신이 왕족 혈통이라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르드는 토르를 배에 품었을 때 그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았다. 요르드는 훗날 오딘이 토르를 불러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토르가 왕좌에 오를 가치가 있는 자식을 가려내기 위한 형제들과의 경쟁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토르는 그저 소박한 소년으로서, 어머니의 농장에서 소박한 삶을 살 것이다.

요르드는 아버지의 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상들과 도발로부터 토르가 안전할 수 있도록 지켜 주었다.

오직 로키만이 토르를 방문하도록 허락을 받았으며, 로키도 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토르에게 있어서는 매일매일이 여름철이었기 때문이다. 농장에는 꽃이 언제고 활짝 피어 있었고 새들이 언제고 노래를 했다. 과일 나무에서는 언제나 달콤한 사과와 배가 열렸고, 염소는 젖을 냈으며 들판에서는 밀이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대지였고 그녀는 토르에게도 대지의 풍요로움을 물려 주었다.


*


“제 아버지를 아세요?”

한 번은 토르가 물었다.

토르는 일곱 살이었다.

토르와 로키는 요르드의 농장 뒤 언덕의 풀밭 위에 누워 있었다. 로키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연 순례를 위해 그 날 오후에 농장에 도착했다. 그 날 로키를 위해 풍성한 식사가 차려졌다. 요르드는 사슴을 잡아 불꼬챙이 위에 구웠다. 로키 또한 훌륭한 선물을 가지고 왔다. 와인과 소금에 절인 생선과 요르드의 정원에 심을 수 있는 씨앗들을 가져다 준 것이다. 로키는 토르에게 자신이 겪었던 모험 이야기를 해 주었다. 토르가 자기도 모험을 겪어보고 싶다고 해, 로키는 두 사람이 지쳐 바닥에 쓰러질 때까지 그를 풀밭까지 따라가 쫓았다.

마침내 해가 졌지만 여전히 날은 따뜻했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밤하늘의 별들 또한 여름 열기에 의해 희미해지고 흐릿해져 있었다.

로키는 만족스러웠다. 한여름에 요르드의 농장에 도착해 토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이외에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 내기는 어려웠다.

“그래.”

로키가 대답했다.

“네 아버지를 알지.”

토르는 다음 질문을 꺼내기 전까지 한참 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로키가 제 아버지인가요?”

토르가 아까보다 훨씬 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로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토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로키는 매년 그들을 방문했고 매 번 방문때마다 로키는 토르와 시간을 보냈다. 로키가 자신에게 왜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토르가 궁금해할 만도 했다. 요르드는 토르가 오딘의 자식이라는 것을 토르가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요르드는 토르가 오딘과 오딘의 왕궁에 의해 더럽혀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로키는 지금 당장은 요르드의 그런 바람을 존중해 주었다. 토르의 진정한 혈통에 대해 성급히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때가 되어서만 건너야 하는 다리가 있는 법이다.

토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아버지일 것 같이 생기지는 않았거든요.”

그래. 로키가 생각했다. 이런 어린아이마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챌 정도로 아주 빤한가 보군.

로키는 토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흐릿한 별들을 올려다 보았다.

“그럼 로키는 저한테 무슨 존재죠?”

토르가 다시 한 번 침묵을 깨며 물었다.

“난 아무도 아니야.”

로키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 로키는 토르에게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토르가 왕이 된다면, 오딘의 후예를 잇게 된다면, 로키는 토르가 원하는 그 어떤 것이든, 그 모든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때가 아니다.

토르가 옆에서 꽉 쥔 주먹으로 땅바닥을 내리쳤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사실이 아니라는 거 알아요. 로키는 아무도 아닌 게 아니에요. 로키는 제게 특별한 사람이에요. 전 알고 있어요!”

로키는 몸을 돌려 눕혀 토르를 마주했다. 토르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아래 입술이 댓발만큼 튀어나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토르의 온 몸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로키는 자신의 말을 토르가 그렇게 심장 깊숙히 받아들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머리 위에서 번개 줄기 하나가 하늘을 갈랐다. 구름을 본 기억은 없었다. 두 사람의 위로 하늘은 깨끗했지만, 로키는 천둥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번개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토르의 능력일 것이다. 토르가 태어난지 몇 주가 되지 않았을 때부터 로키가 감지했던 그의 능력이 바로 그것이었다.

대지의 아들인 토르가 하늘을 지배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정말로 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네가 더 나이를 먹고 나면, 내가 네게 무슨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거다.”

로키가 조용히 말하며 손을 뻗어 토르의 곱슬머리를 쓸어 주었다.

그 손길과 로키의 다정한 말이 토르에게는 충분한 듯 보였다.

토르가 주먹 쥔 손을 펴더니 다시 평온을 찾았다. 토르의 몸 또한 더이상 알 수 없는 힘으로 똘똘 뭉쳐져 있지 않았다. 하늘이 다시 고요해졌고, 그 곳에는 다시 별들만이 남았다.

“그렇다면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그 때 알 수 있을까요?”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때가 되면 말이지.”

로키 옆에서 풀 위에 벌렁 드러누운 채 토르는 그 대답을 한참 동안 숙고했다. 토르는 그저 거기 누워서 별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로키는 토르의 숨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평온함을 느꼈다. 로키는 별 아래서 눈을 감고 토르를 곁에 둔 채 평화롭게 잠에 빠져들었다.


*


토르는 이제 열 두 살이었고 막 성장기에 이르렀다. 통통하던 다리가 길게 뻗어 나갔고 어깨가 넓게 자랐으며 젖살도 모두 빠졌다. 토르는 팔다리가 길고 마른 몸으로 자랐고 청소년기의 예민한 기운으로 잔뜩 차 있었다.

로키가 방문했을 때, 토르는 이제 자기 키가 로키의 어깨 부근에 이른다는 데 매우 으쓱해했다. 성장기가 몇 번 더 찾아오고 나면 토르가 둘 중 더 키가 큰 쪽이 될 것이다.

토르는 로키 뒤를 졸졸 따랐다. 해야 할 허드렛일을 모두 저버린 채 화로 옆에 앉아 로키의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몇 시간이고 지새우고는 했다. 아스가르드에 관한 이야기, 거인과 필멸자들과의 싸움, 마지막으로 만났던 때로부터 개발해 낸 마법들. 로키는 토르에게 간단한 장난을 선보여 주었다. 허공에서 꽃이 나타나게 했고 토르의 귀 뒤에서 동전을 만들어 냈다. 동전은 토르가 손을 내 붙잡으려 하면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만, 꽃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로키의 방문 기간 동안 내내 그 꽃은 활짝 피어 있었다.

농장에서 로키만큼이나 토르에게 관심을 주는 이도 없었다.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토르를 농장주의 아들로서 대했다. 휴식 시간에 그와 놀아 주고 과수원에서 가장 달콤한 사과와 배를 가져다가 토르에게 쥐여 주었지만, 로키처럼 단순히 토르를 보기 위한 이유로 농장을 찾지는 않았다. 그들은 로키처럼 몇 시간 동안이나 토르와 함께 농장 주위 숲 속을 탐험하지도 않았고, 모든 것과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지도 않았다. 식료품 저장고에서 음식을 훔치고 요르드가 그들의 장난을 발각할 때면 여물간에 함께 숨는 일도 없었다. 두 사람이 초래해 낸 혼란을 지켜보며 즐겁게 웃음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토르의 온 세상에서 로키만큼이나 그를 다정하게 대해준 사람도 없었다. 로키는 그의 진정한 친구였으며 공모자였다. 토르는 로키가 방문하는 날을 늘 기다렸고, 로키가 다시 떠나게 될 날을 늘 두려워했다.

토르는 로키의 관심을 끌려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끼기 시작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토르는 로키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천둥번개가 아름다운 방식처럼, 천연적으로,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아름다웠다. 로키가 가져오고는 하는 선물에 비하면 로키의 아름다움은 토르에게 큰 의미가 없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는 듯했다.

토르는 낙농장에서 일하는 여인 한 명을 통해 처음 그 사실을 눈치챘다. 어느 날 저녁식사 후 그녀가 의자를 가져와 난로가에 그들 옆에 앉았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렇게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로키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로키 쪽으로 의자를 가까이 끌어 당겨 앉았다. 그녀의 시선은 로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로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관심에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키의 시선이 그 여인에게로 한 번 이상 향하는 것을 토르 또한 보았고, 로키의 얼굴에 드리워진 미소가 더 환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토르는 그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밤이 깊어갈 무렵 요르드가 토르를 침대로 데려가기 위해 왔고, 로키도 함께 일어섰다.

“여기 있으세요.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시지 않겠어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는 것 같아요.”

여인이 요청했다. 그녀가 로키의 손목 쪽으로 손을 뻗어 그를 붙들려 했지만, 로키는 그 손을 물렸다.

“제 이야기에 즐거우셨다니 기쁘군요. 하지만 그 이야기들은 토르를 위해 들려주는 것들이랍니다.”

로키가 말했다.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토르는 뭔가 수치스러운 감정이 가슴을 잔뜩 채워 오는 것을 느꼈다. 토르는 로키가 그 요청을 묵살했다는 사실이 기쁘기 그지 없었다. 끔찍한 감정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토르와 로키는 침실로 향하는 계단을 함께 올라갔고, 토르의 방 문 앞에서 헤어졌다. 그 날 밤 토르는 로키의 관심이 자신만의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평온한 잠을 이루었다.

그 날 밤으로부터 토르는 로키가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조금씩 더 의식하기 시작했다. 로키에게로 시선이 이끌리는 것, 스킨십을 위해 기회를 엿보는 것 등. 언제나 로키의 어깨나 팔 위로 사람들의 손길이 얹혀지고는 했으며, 그러한 접촉은 별 것 아니라고 묵살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것이었다. 로키는 그 모든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토르는 그 사실을 증오하지 않도록 애써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미묘하게만은 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토르가 로키와 술래잡기를 하던 날이었다. 로키가 술래인 차례였지만 몇 분이 지나도 로키는 그를 찾으러 오지 않았다. 토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키가 이 게임의 규칙을 잘못 이해한 것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로키를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이 싫어질 지경이었다. 로키는 개구리나 돌맹이나 새로 변해서 숨고는 했고, 토르는 그게 게임 규칙을 어기는 일이라고 단단히 일렀더랬다. 로키가 자신을 찾는 걸 잊어버린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런 게임을 하기에는 토르가 이제 너무 나이를 먹은 것일지도 몰랐다.

토르는 숨어 있던 곳에서 빠져 나와 로키와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헛간으로 향했다. 토르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은 채 로키와 같이 할 수 있는 다른 놀이가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토르는 모퉁이를 돌았다가 몸을 멈춰 세웠다. 잠깐 동안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로키는 토르가 떠났던 그 장소에 그대로 있었고, 여전히 헛간 한 구석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농장 일꾼들 중 한 명이 그와 함께 있었다.

그 일꾼은 손 하나를 로키의 머리 옆 벽에 짚고 있었고, 로키의 몸 쪽으로 자신의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그 남자가 로키를 압도하는 것처럼 보였고 토르의 눈에 로키는 훨씬 작아 보였다.

하지만 로키는 무서워하고 있지 않았다. 로키는 웃고 있었고 그의 고개는 살짝 뒤로 젖혀져 있었다. 로키가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은 이유가 저 남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챈 토르는, 피 속으로 얼음같이 싸한 기운이 흘러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로키는 낙농장의 우유 짜는 여인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 대신 로키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들판에서 노동하는 건장한 사내들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에 토르가 놀란 것은 아니었다. 토르는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든,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든 신경쓰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로키 또한 무슨 성향을 지녔든 깎아내릴 생각은 없었다. 토르가 신경 쓰는 사실은 로키가 누군가와 놀아나기 위해 자기와의 놀이를 저버렸다는 것 뿐이었다.

토르가 지켜보는 동안, 그 일꾼은 빈 손을 뻗어 로키의 뺨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일꾼의 손은 노동으로 인해 거칠었다. 토르는 이를 악다물었다. 로키의 피부는 부드러웠고 그 손길은 로키를 다치게 할 것이다.

“당신은 정말 아름다워. 여기서 널 당장 가지고 싶어.”

그 남자가 중얼거렸다. 낮은 목소리였지만 토르는 들을 수 있었다. 토르는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다.

로키가 감미롭고 비단결 같은 목소리로 웃었다. 로키가 한 손을 남자의 가슴에 가져다 대더니, 손가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끔찍했다. 토르는 다른 누군가가 로키를 건드리는 모습을 보기 싫었고, 로키가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 또한 싫었다. 하지만 자신이 눈을 돌릴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싫었다. 토르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싶었다. 로키를 만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로키가 매혹적인 눈을 한 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고 상상하고 싶었다. 그 생각은 혼란스럽고도 두렵기 그지 없었다.

로키는 자신의 친구였지만 그럼에도 토르는 그를 원하고 있었다.

토르는 한 번도 누군가를 원해본 적이 없었다. 로키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로맨스 이야기가 튀어나올 때마다 토르는 눈알을 굴려 댔고, 빨리 전쟁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졸랐다. 토르도 우유 짜는 여인 중 한 명의 딸과 입을 맞춘 적이 있었고 그 경험을 즐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토르는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갈망 같은 것은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로키에게 가지는 관심을 알아채기 시작했던 것이, 자기 자신 또한 로키에게 품기 시작한 관심 때문이라는 것을 토르는 지금 이 순간까지 깨닫지 못했다. 토르는 어린아이에서부터 어른이 되기 이전의 과도기에 서 있었다. 유치한 게임과 추격 놀이에는 조금씩 질려 가고 있었다. 토르는 자라나고 있었고 로키에게 느끼는 그의 감정은 조금씩 변화하고, 성숙해 갔다.

토르는 두 사람이 웃고 떠드는 동안 로키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고, 난로 앞에서 그의 손을 붙잡고 싶었다. 토르는 아직 그가 완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하는 일들을 로키와 함께 하고 싶었다.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토르가 그것을 원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로키는 토르 같은 몸 가느다란 청소년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로키는 그림자와 마법으로 이루어진, 영적인 무엇인가의 존재였다. 로키는 자신이 마음을 두는 그 누구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 자들도 로키를 원할 것이다. 갈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로키의 천성과도 같았다.

일꾼이 머리를 움직여 로키의 예쁜 입술에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로키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로키의 음악 같은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애 태우기는.”

남자가 말했다.

“그 어린애와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군. 남자를 앞에 두고 뭘 해야 할지도 잊어버린 것 같으니.”

남자의 팔 안에서 로키가 몸을 움츠렸다. 로키의 웃음소리가 아까에 비해 조용해졌고, 토르는 심장에 칼이라도 찔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천방지축 어린애를 쫓아다니는 것도 이제 지겹지 않아?”

남자가 물었다.

토르는 침묵을 지키려 애쓰며 입술을 깨물었다. 토르는 로키가 뭐라 대답할 지 듣고 싶었다. 로키가 예전처럼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미소짓고 웃음을 터뜨릴지 알고 싶었다. 로키가 정말로 자신을 천방지축 어린애로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고, 로키가 정말로 자신을 지겨워할 지 알고 싶었다. 토르의 시선 한구석으로부터 어두운 구름이 몰려와 수평선 위에 내려앉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로키가 눈을 매섭게 떴다. 로키는 남자를 거칠게 밀어냈고, 그 덕분에 남자는 땅바닥 위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로키는 더 이상 연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위험해 보였다.

“내가 지겨운 건 날 자기 침대에 들이고만 싶어 하는 멍청한 남자들이야.”

로키가 말했다. 로키는 먼지라도 묻은 것마냥 남자의 손길이 닿았던 옷 앞섶을 털어냈다.

“너무 오래 시간을 지체해 버렸군. 나는 이만 토르가 어디 숨어 있는지 찾으러 가 봐야 해서.”

수평선 위로 불길하게 드리워지던 어두운 구름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다시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마녀 같은 것.”

남자가 내뱉었다.

로키가 다시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로키는 눈 깜짝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토르는 그 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로키는 이제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 채 자신을 찾고 있을 것이다. 토르는 자신이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로키가 알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로키가 그런 순간을 누가 엿듣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이란 사실을, 토르는 확신할 수 있었다.

토르는 다리가 아파올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고, 마침내 발을 멈춰 세웠다. 환희로 인해 심장이 쑤셔 왔다.

로키는 그 다른 누구보다도 토르를 가장 아꼈다. 토르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


“로키가 왔어요!”

토르의 즐거운 고함 소리 덕에 요르드는 그 마술가가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조만간 그의 방문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영원히 이어지는 농장의 여름에도 불구하고, 달이 하나하나 지나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잘 됐구나.”

요르드가 아들 쪽을 향해 대답했다.

“그 자가 떠날 때 까지 돌을 던져 주려무나.”

“엄마!”

토르가 놀래 하는 모습에 요르드는 웃음을 터뜨렸다. 토르는 이제 열 세 살이었다. 토르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었고, 남자로 자라나고 있었다. 토르는 수확을 거들었고 사냥도 나갔다. 토르는 로키와 자신의 어머니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챌 만큼 컸다. 로키와 요르드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단 한가지 뿐이었고, 그것은 바로 토르였다.

로키의 방문이 요르드에게는 늘 불쾌했다. 로키가 찾아올 때마다 토르의 운명이 다시금 상기되는 것만 같았다. 한 해 한 해가 지날때마다 토르를 잃게 될 날 또한 조금씩 다가온다는 사실을 요르드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토르가 여기 남을 이유조차 있을까?

요르드는 손님을 맞도록 토르를 대신 보냈고, 자신은 블랙베리 와인을 컵에 따랐다. 오랜 여정 후 로키는 목이 타는 상태일 것이다. 블랙베리는 로키가 준 씨앗에서 난 것이었다. 로키가 자신이 가져왔던 선물의 생산품을 직접 맛보는 것이 합당할 터였다.

요르드는 컵 하나를 집어들고 토르와 로키를 찾아 안뜰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은 마굿간 쪽에 서 있었다. 요르드는 조용히 발걸음을 디딘 것에 감사해야만 했다. 둘은 완전히 대화에 빠져든 채 요르드가 오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요르드는 자기 아들을 잘 알고 있었다. 로키의 도착에 아들이 보이는 흥분어린 반응이 무엇인가 순수한 것에서 무엇인가 열기어린 것으로 변해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로키를 향한, 더이상 플라토닉하지만은 않은 애정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토르가 왜 그런 열병에 빠져 버렸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로키의 창백한 피부와, 까마귀처럼 새까만 머리카락, 봉오리 같은 입술과, 에메랄드 빛의 눈은 보기에 꽤나 사랑스러웠다. 요르드는 그가 아주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매혹적인 존재임에는 틀림 없었다. 한 번 보면 잊어버리기가 힘든 사람이었다. 로키는 늘 검은색으로 차려 입은 채 완벽한 모습으로 등장했고, 부츠 위에는 긁힌 자국이 하나 없었고 옷에도 흠집 하나 없었다. 로키는 자신이 노예가 아닌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히 몸을 곧추세우고 다녔다.

로키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 잔혹한 심장을 숨기고 있었다. 로키는 자연의 힘이었으며, 초인간적인 불로의 존재였고, 왕에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속박되어 있는 존재였다. 요르드는 로키가 사랑을 하는 법을 알지 못하리라고, 그러는 법을 배우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요르드는 안뜰에 발을 멈춰 세운 채 그들을 지켜 보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로키가 자기 아들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을 로키 그 자신도 알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로키를 위해 따 왔어요.”

토르가 손을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주먹 쥔 토르의 손 안에는 야생화 다발이 들려 있었다. 푸른색, 자색, 흰색의 아름다운 꽃들이었다. 밀을 수확하러 들판에 나가 있을 때 산울타리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따 왔음이 틀림 없었다.

“고맙구나.”

로키가 조용히 말했다.

젊은이의 손에 쥔 꽃다발을 받아 든 로키는 그것을 자기 가슴 쪽으로 가져 갔다.

둘 사이에 기분 좋은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요르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오딘이 훗날 자기 아들을 훔쳐갈 것이라는 사실만 해도 충분히 끔찍했다. 저 마녀마저 자기 아들을 뺏어가게 둘 수는 없었다.

“토르 요르드슨! 로키에게 네 서투른 구애 따위는 필요 없다!”

요르드가 큰 소리로 외쳐 불렀다. 둘은 깜짝 놀라 서로와 떨어졌다.

토르는 야단이라도 맞은 것처럼 화들짝했고, 몸을 돌려 밀밭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요르드는 저녁 때까지 다시 토르의 모습을 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토르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일꾼들과 함께 수확물을 거둘 것이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다시 살그머니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로키는 토르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즐거운 감정이 또렷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토르를 그런 식으로 꾸짖을 필요가 있어, 요르드?”

로키가 물었다.

“누굴 해하는 일도 아닌걸.”

요르드가 로키를 향해 미심쩍은 시선을 던져 보였다. 로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지 않았다. 로키는 여전히 웃고 있었고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 속에 열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로키는 열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길 뿐이었고, 그것 뿐이었다.

그 모습이 요르드를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 로키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로키는 토르의 선물과 풋사랑을 받는 것에 족해 보였다. 그 이상으로는 원하지 않았다.

“와인 한 잔 해.”

요르드가 컵을 내밀며 말했다.

“꽃에다 와인까지. 버릇 잘못 들겠는걸.” 로키가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로키는 컵을 받아들어 한 모금을 들이켰다. 요르드는 로키가 음료를 든 후 뭔가 반응을 보이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로키는 잔을 깨끗히 비웠지만 목이 말라서였는지, 와인을 즐겼는지 아닌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요르드는 말했다.

둘은 조용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집 안으로 들어간 후 요르드는 로키에게 난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권했다. 로키가 늘 앉는 자리였다. 로키는 자리에 앉았고 요르드는 그 맞은 편에 가서 앉았다.

오랜 시간 동안 둘 다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오딘이 자기 자식들을 위한 시험을 계획하고 있어. 그들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시험이지.”

마침내 로키가 말했다.

요르드는 심장이 떨려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험이라고?”

요르드가 물었다. 목소리에 희망이 묻어나는 것을 막으려 애썼지만, 로키에게서 숨길 수는 없었다.

로키가 고개를 흔들었다.

“토르는 어리석은 아이지만 그 시험은 용기와, 용맹과, 힘을 시험하는 자리가 될 거야. 토르도 그런 재능은 가지고 있지. 토르가 그 시험에서 실패할 이유는 없어.”

그 말에 토르를 대신해 기분 나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요르드도 자신 아들의 능력에 대해서는 그 어떤 환상도 없었다. 토르는 뛰어난 학자나 전략가가 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런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요르드는 토르가 행복하고, 친절한 성품을 지닌, 어디를 가든지 모든 사물의 장점만을 눈에 담는 소년으로 자란 것에 기뻤다.

오딘의 왕궁은 토르의 정직하고 착한 심장을 통째로 삼켜 버릴 것이다.

로키가 요르드를 날카롭게 바라보았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너도 토르가 그 가치 있는 자가 될 것이라 믿고 있어.”

요르드는 등을 빳빳하게 세운 채 똑바로 앉았다. 무릎 위에서 손이 꼭 쥐어졌다.

“아니.” 

요르드는 거짓말을 했다.

“토르는 무모하고 바보 같은 아이야. 너무 감정적이지. 그의 심장이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으니.”

“오, 그렇지. 토르는 바로 네가 말한 그대로야.” 로키가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또 그 애는 아주 형편 없는 거짓말쟁이지. 요르드 당신처럼 말이야.”

요르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요르드 또한 오래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요르드 또한 알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는 동안 대지가 토르를 위해 노래 부르는 것을. 이 땅은 토르가 자신의 왕이 되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이 땅은 토르를 통치자로서 원하고 있었다.

미래의 그 전망이 요르드에게도 피할 수 없는 무언가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오랫 동안 어딘가로 떠나 있어야 해. 얼마나 긴 시간 동안일지는 모르겠어.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오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고, 그걸 구해다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야.”

로키가 요르드로부터 눈을 돌려 불꽃을 바라보았다.

“너는 왕의 노예일 뿐이야.” 요르드가 말했다.

“왕에게 속박되어 있다는 이유로 날 약하다고 생각하는군.”

로키가 다시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난 네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걸. 그 자의 아이를 밴 것이 말이야. 내가 매인 속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내게 손 끝조차 대지 못하게 했어. 넌 그런 속박에 매여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했지.”

요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선택은 이해하기 쉬운 성격의 그것은 아니었다.

요르드는 오딘을 사랑하지 않았다. 오딘의 군대는 땅 위를 가로질러 행진해 와, 자신들이 힘으로 가져갈 수 없는 대지를 불태우고 소금을 뿌렸고, 다시는 꽃이 피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요르드는 그들을 증오했다. 하지만 요르드는 나이 많은 존재였고 그녀의 기억 또한 길었다. 오딘은 필멸의 존재였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이 대지도 언젠가는 회복할 것이다. 요르드가 오딘으로부터 빼앗아 온 것은 훨씬 더 강력한 것이었다. 요르드는 오딘이 뿌린 씨앗으로 토르를 낳았으며, 토르는 앞으로 위대한 일들을 할 것이다.

“나는 토르를 얻었어.”

요르드가 말했다.

“너는 혼자야, 로키. 네겐 아무 것도 없고 네게 속한 그 누구도 없지. 너는 왕가의 혈통을 섬기고, 쓸모 있는 존재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해. 하지만 내게는 날 사랑해주는 존재가 있어.”

로키가 으르렁대는 소리를 내며 요르드에게 컵을 던졌다. 요르드는 우아하게 그것을 손으로 받아 들었다.

“떠나려고?”

마치 방금 전 일이 일어나지 않기라도 한 듯, 요르드가 말을 꺼냈다.

“몇 년이고 못 돌아올 수도 있어.”

로키가 다시 의자 깊숙히 내려앉으며 말했다.

갑자기 로키는 피곤해 보였다. 얼굴에 주름이 드리우고 훨씬 나이 든 것처럼 보였다. 오딘을 위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중압감 때문일 것이라고, 요르드는 생각했다.

토르가 왕이 되기를 로키가 바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로키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토르라면 사랑해 마지않는 로키를 행성 반대편까지 보내 불가능한 임무를 다하라고 시키는 것은 꿈조차 꾸지 않을 것이다. 토르가 왕위를 물려 받으면 로키는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고, 토르는 그들처럼 기나긴 삶을 살 것이다. 어쩌면 토르는 영원히 살게 되어, 로키가 그렇게 열망하던 평온을 영영 안겨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네가 떠난 동안 토르가 네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 걱정돼?”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르드는 로키가 그 사실을 왜 주저 없이 인정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로키는 기묘한 존재였다.

“네가 모험을 떠났다고 일러 두지. 토르도 이해할 거야. 토르도 네가 다니는 모험들을 얼마나 함께 떠나고 싶어하는지 몰라.”

불길이 딱딱거리는 소리를 내며 넘실거렸다.

말을 하게 될 수 있기 시작한 순간부터 토르는 로키에 대해 이야기했고, 로키가 자신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로키가 여행했던 장소들, 로키가 알고 지냈던 사람들에 대해서. 토르는 로키의 여정에 자신 역시 함께할 수 있기를 꿈꾸고 있었다.

토르가 사냥에 나갈 때면 요르드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토르는 추격자로서의 능력을 단련하려는 계획을 품고 사냥길에 나섰으며, 소리를 내지 않고 숲 속을 누비고는 했다. 밀대를 자르기 위해 손에 낫을 들 때면 토르는 자기 적들의 몸을 베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토르는 자신이 결코 겪을 수 없을 모험에 대비해 스스로를 훈련했다.

“내가 왕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토르에게 이야기한 적 있어?”

로키가 물었다.

“절대로.”

요르드가 대답했다.

요르드의 손에는 잔이, 로키의 손에는 야생화 다발이 들린 채, 두 사람은 해가 지고 거실이 추워질 때까지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요르드가 다시 난로에 불을 붙였고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토르가 다시 등장했다. 요르드가 예상했던 것 만큼이나 시무룩한 상태였다. 하지만 로키는 불가에 계속 앉아 있었다. 로키는 음식을 거의 입에 들지 않았고 그의 시선은 내내 토르에게만 머물렀다.

로키는 한밤중에 떠났다. 요르드는 생애 첫 실연으로부터 토르를 위로해 주어야만 했다.


*


“그가 언제 돌아올까요?”

토르가 물었다.

토르는 과수원 나무들 중 하나에 기어올라가 과일을 따 먹고 있었다. 그의 손이 과즙으로 끈적끈적했다.

요르드는 허리께에 바구니를 안아든 채 나무 옆에 서 토르가 나무를 흔들어 배를 떨어뜨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르드는 토르의 질문에 얼굴을 찌푸렸다. 토르가 이야기하는 사람이 로키라는 것을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었다. 자기 아들의 마음을 앗아간 사람이 누구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구나, 토르.”

요르드가 손을 뻗어 나무 기둥을 만지며 말했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몰라. 로키 자신도 잘 모르던걸.”

머리 위로 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요르드는 불안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들은 비를 필요로 했다. 비는 새로운 생명을 가져 왔고 대지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태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다. 땅은 비를 갈망했다. 하지만 저 구름들은 요르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요르드는 비를 불러들이지 않았다.

“어떻게 로키가 제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렇게 떠날 수가 있죠?”

첫 빗방울이 요르드의 이마 위로 떨어졌다.

“네게 어떻게 말해 줘야할지 몰라 하더구나.”

요르드가 대답했다. 그녀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요르드는 공기 중을 흐르는 날것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순수하게 토르에게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토르의 감정이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토르는 여전히 너무나 어렸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비가 자신의 힘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조차 알고 있을까?

“토르.”

요르드가 토르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하지만 토르는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았다. 토르의 시선은 저 멀리 수평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토르는 들고 있던 배를 과수원 너머까지 날아갈 정도로 힘껏 던졌다.

머리 위에서 구름이 산산조각 났다. 비가 무겁고 맹렬한 기세로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땅이 흠뻑 젖고 토르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삼 일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


로키는 칠 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토르는 또다른 사랑에 빠졌으며, 아름다운 소녀들과 아름다운 소년들과 애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토르는 그만큼이나 빨리 사랑으로부터 빠져 나왔다. 토르의 애정은 늘 빠르게 지나가는 변덕스러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토르의 바람기 어린 성격을 원망하지 않았다. 토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존재였으며, 만나는 그 누구와도 친구를 삼을 수 있었다. 토르는 여전히 다정하고 마음이 정직한 아이였다. 요르드는 토르에 대해 한 번도 걱정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아들은 자신에게 절대 비밀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

토르는 키가 컸고 커다란 몸으로 자라났다. 머리카락도 더 길게 늘어뜨려졌고 수염도 났다. 토르의 피부는 햇빛의 입맞춤을 받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토르의 내면은 여전히 다정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가장 먼저 말을 거는 것도 그였으며, 일꾼들과 이웃들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제공하는 것도 그였다. 토르는 농장에서의 자기 삶을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의 모험에 대한 상상은 이미 잊혀져 버렸다. 토르는 밭과 과수원에서 열심히 일했고 염소들을 이끌고 다녔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그 어떤 일에든 열심히 임했다. 이제 갓 스무 살에 이르른 토르는, 아주 훌륭한 사내였다.

토르는 더이상 로키의 도착을 알리는 말발굽 소리를 기다리지 않았다. 열 다섯 살이 되던 해 이후 언젠가부터 토르는 그를 찾는 것을 그만 두었다.

요르드는 로키가 칠 년 동안이나 농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물론 로키가 그럴 수만 있다면 돌아왔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로키가 농장을 떠날 때 토르가 주었던 꽃을 가지고 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빈 방에서 그 꽃다발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


평화로운 어느 날 해질 무렵에 로키가 왔다.

로키는 커다란 검은색 말에 올라탄 채 농장의 안뜰로 달려 들어왔다. 로키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말라 보였고 더 창백했다. 그게 가능하기라도 하다면 말이다.

요르드가 집에서 뛰어 나왔다.

“로키?”

“시간이 됐어.”

로키가 말했다.

“토르에게 이제 이야기해 주어야 해. 오딘이 병에 들었어.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 할 거야.”

요르드는 몸에 떨림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살고 있는 대지 위에는 겨울이라는 것이 없었지만, 그 바깥에는 여전히 계절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다.

“너무 이르잖아.” 요르드가 말했다.

“요르드, 당신은 이미 토르와 이십 년을 함께 보냈어. 이제 그가 남자가 되도록 해 줘. 그가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도록 해 줘.”

토르를 데리러 가는 요르드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요르드는 이 길을 걸을 일이 없기만을 바랐다. 토르가 처음 태어난 순간부터 그녀가 두려워하던 날이었다. 처음 토르를 자신의 팔 안에 안았던 순간부터, 요르드는 자신이 이 아이를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키의 말이 맞았다. 이십 년은 자신이 바랐던 것 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요르드는 이 영원한 여름이 절대 끝나지 않기만을 그려 왔다.

요르드는 염소 우리에 있는 토르를 찾았다. 토르는 가장 어린 염소에게 자기 손에 들린 먹이를 먹이는 중이었다. 요르드는 찰나의 순간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마음 속 한 켠에 담아 두고 싶었다.

“토르.”

요르드가 입을 열었다. 목구멍이 단단히 죄어 오는 느낌이 들었다.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어 대신 요르드는 바깥 쪽으로 손짓을 했다. 토르는 순순히 어머니를 따라 우리 바깥으로 나왔다.

요르드는 토르를 안뜰로 데리고 갔다.

로키는 이미 말에서 내려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르를 향한 로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로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토르를 봤을 때의 기억으로부터 달라진 토르의 모습을 훑었다. 로키가 이 곳에 남겨두고 간 것은 소년이었는데, 다시 돌아와 만난 것은 남자로 자란 토르였다.

로키가 떠나 있는 시간 동안 토르는 수려하게 자라났다.

“로키!”

토르가 고함을 질렀다.

토르가 어머니를 지나쳐 달려가 로키를 팔에 안았고, 로키가 아무 무게도 나가지 않는 것처럼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토르가 행복하게 웃으며 로키를 안아 올린 채 빙빙 돌기 시작하자, 로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팔에 매달려 있는 것 뿐이었다.

“너무 오랫 동안 떠나 있었잖아요. 다시는 못 보게 되는 줄 알았어요.”

토르가 마침내 로키를 내려놓은 후 말했다.

“나도 이렇게 오래 떠나 있을 계획은 아니었어.”

뺨이 분홍색으로 달아오른 얼굴로 로키가 대답했다.

“많이 자랐구나.”

“보고 싶었어요.”

마치 그 사실이 빤히 눈에 띄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토르가 선언했다.

“나도 보고 싶었어.”

로키가 조용히 말했다. 로키가 손을 뻗더니 토르의 뺨과, 그 위 거칠게 자라나 있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이런 건 없었는데.”

“로키는 전혀 안 변했네요.”

토르가 말했다. 로키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부드러웠다.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요르드는, 왜 자신이 지난 칠 년의 시간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는지 문득 깨달았다. 로키가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토르의 애정을 앗아가는 그 존재가 없었다. 로키가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존재가 배경 속으로 희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요르드는 언제고 토르의 어머니일 것이고, 언제나 토르에게 소중한 존재일 것이지만, 로키가 그런 것처럼 그의 온전한 세상의 중심이 되어 줄 수는 없었다.

요르드는 토르의 다른 사랑 상대들을 떠올렸다. 건초더미 위에서 나뒹굴던, 여름 동안의 애정사. 하지만 토르의 그런 애정들은 오래 가지 않았다.

요르드는 로키와 혼자 남으면 토르의 그 연인들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다. 로키라면 그런 정복의 대상 중 하나가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로키는 너무도 오만한 존재였기에, 요르드는 그 오만함을 건드려 줄 요량이었고, 토르 역시 반 필멸자이며 필멸자의 모든 취약한 면모를 다 가지고 있음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토르. 네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고, 네 어머니도 네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들이 많을 거다. 때가 되었어. 네 아버지가….”

로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토르가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말을 막았다.

“제 아버지가 누구든지 상관 없어요. 제겐 이제 제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어요. 제게는 어머니가 있고, 로키 당신도 무사히 제게 돌아왔어요. 제게는 이 땅도 있죠.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에요, 로키.”

로키가 요르드 쪽으로 다급한 시선을 던져 보냈다.

요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야기는 로키가 혼자 이야기해 줄 수 있을 만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토르, 이제 더 이상 비밀로 감추고 있을 수는 없다.” 요르드가 말했다.

“왜 안 되죠?”

토르가 물었다.

“저는 지금까지 제 평생 동안 아버지 없이 살아 왔어요. 제가 이제 와서 왜 아버지가 필요하겠어요?”

“토르, 이건 중요한 문제야. 우리의 왕실과 왕국의 운명이 걸린 일이란다.” 로키가 말했다.

토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창틀을 울리는 요란한 웃음 소리였다. 천둥이 우르렁대는 소리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 아버지가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시네요.”

안뜰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토르가 설명을 요구하듯 재빠르게 로키와 요르드 사이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 드리워진 표정이 토르의 말 속 진실을 외면해 버렸다.

“제 아버지가 왕이에요?”

토르가 불신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요르드를 대신해 로키가 대답했다.

“너는 토르 오딘슨이야. 왕의 아들이지.”

“아니에요.” 토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저는 토르 요르드슨이에요. 지금까지 제가 원한 것은 그 뿐이고, 앞으로도 원할 것은 그것 뿐이에요.”

“제발, 토르.”

로키가 손을 뻗어 토르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네 아버지가 죽어가고 있어. 곧 시험이 있을 거야. 네 아버지의 자식들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지. 그 시험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자가 오딘이 죽은 후 왕위를 물려받게 될 거야. 너도 가야만 해.”

토르가 로키의 손길로부터 자신의 손을 빼냈다. 토르의 두 눈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저는 왕이 되고 싶지 않아요.” 토르가 말했다.

요르드가 입술을 핥았다. 마침내야 입을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요르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토르의 주의를 끌기에는 충분했다.

“가야만 한다, 토르. 이것은 로키와 내가 동의했던 유일한 일이란다. 너는 가야만 해.”

토르는 떠날 것이다. 요르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요르드는 그를 설득할 것이다. 로키 또한 그 달콤한 혀와 칭찬으로 그를 꼬여낼 것이다. 토르는 자신을 위해 마련된 그 모험을 감지할 것이다. 토르가 겪게 될 진짜 모험이자, 유일한 모험이 될 것이다. 토르는 영원한 여름으로부터 떠나가, 새로운 것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토르는 오딘의 시험을 이겨 내고 왕위를 물려 받을 것이다.

그것이 토르의 운명이었으며, 요르드는 더 이상 그 운명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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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Rulers Make Bad Lovers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