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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Rulers Make Bad Lovers (3/7)

토르로키 / Thorki

"Rulers Make Bad Lovers(통치자는 좋은 연인이 못 된다)"

by fairychangeling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4347620/chapters/3311467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C1qQapE.png)
  • 연하토르x연상로키의 북유럽신화 베이스 AU입니다. 작품의 기본적인 설정은 북유럽신화의 설정을 따릅니다. 토르와 로키는 형제로 자라난 사이가 아니며, 로키는 오딘과 피의 서약으로 이어져 있는 관계이고, 토르는 오딘과 프리가가 아니라 오딘과 요르드 사이에서 난 자식입니다. 
  • 엠프렉 요소가 있습니다.



*    *    *



3장.

‘무정한 시험대’


그들은 성까지 가는 길을 조용히 여행했다.

토르와 로키가 내려왔을 때 요르드는 이미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딱딱한 빵과 굳은 치즈로 빠르게 식사를 했고, 꿀과 향신료를 넣은 우유로 목을 축였다. 토르는 로키가 우유만 마시고 앞에 있는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전날 밤 머무른 곳에서 말들 또한 몸을 충분히 쉬었고, 그 덕에 말들은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아직 해가 하늘 위에 높게 떠 있을 때 그들은 아스가르드의 수도와 성에 도착했다. 성은 으리으리한 건물이었다. 성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탑과 정찰대가 천국까지 솟아나갈 기세였다. 이런 건물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큰 노고가 들었을 지 토르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로키가 그의 마음 속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선왕인 보르가 거인들을 노예로 삼아 이 성을 짓도록 했지.”

“그리고 지구에서부터 황금을 훔쳐 왔고.”

요르드가 덧붙였다. 그들이 성문을 지나는 동안 그녀의 눈길이 여기저기를 오갔다.

로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난쟁이들은 그 황금이 자기들 것이었다고 할 걸. 실제로 자기네들 것이라 주장도 했고 말이야. 그 도적질에 대해 꽤 목소리를 높여 항의를 했지.”

“그 놈들도 훔쳐간 거야.” 요르드가 투덜거렸다.

그들과 마주친 마굿간지기가 로키를 알아보고 꾸벅 인사를 했다. 마굿간지기가 그들의 말을 끌고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실 제복을 차려 입은 병사 한 명이 나타나 셋을 안으로 인도했다.

토르는 어머니와 로키 뒤로 두 걸음 정도 뒤쳐져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로키 두 사람 다 자신보다는 조금 더 편안해 보였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로키는 이 곳을 애정했다. 발걸음은 발에 용수철이라도 단 것처럼 가벼웠다. 로키는 토르처럼 자신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았고, 이 곳에 온 것이 기뻐 보였다.

요르드 또한 침착하고 우아했다. 요르드의 여행 의복은 그녀가 발걸음을 옮김에 따라 아른아른 빛나며, 아름다운 구릿빛 가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마법을 마지막으로 의식해 본 것이 언제인지 토르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농장의 모든 것들이 어머니의 마법에 의해 다스려졌고, 토르는 그러한 세상 속에서 태어났다. 토르에게 있어 그런 일들은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르드가 지금 쓴 마법은 무엇인가 다른 종류였다.

요르드는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했다. 토르는 어머니가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병사가 셋을 대회당으로 인도해 간 후, 문 밖에서 잠시 기다리라 일렀다.

토르는 불편하게 몸을 꿈틀댔다. 가장 좋은 옷을 차려 입기는 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말을 달려 온 터였다. 아무 동요조차 없어 보이는 어머니나 로키와는 달리, 토르는 자기 차림새와 옷이 아침 시간 동안 얼마나 더럽혀졌을지가 의식되기 시작했다.

로키가 토르의 긴장한 마음을 알아챈 듯했다. 그가 손을 뻗어 토르의 손을 붙잡았다.

“안달내지 마. 충분히 잘생겨 보이니까.”

로키가 손을 가볍게 꼭 쥐어 보였다.

대회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고, 로키는 손을 놓아 주었다. 로키의 손에서 느껴졌던 기분 좋은 열기와, 로키가 자신의 몸에 접촉해 왔을 때 느껴졌던 안정감이 가슴이 에일 정도로 아쉬웠다. 손과 손이 닿는 그 접촉에서 토르는 안도감을 느꼈고, 자신이 필요로 하던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

“황제이시여, 왕비시여.”

대회당 안에 있던 전령이 일렀다.

“여인 요르드와 토르 왕자입니다.”

“저는 소개도 못 받나요?”

로키가 투덜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발걸음을 당당히 향했다.

“그리고 저도 왔습니다!” 

로키가 자기 스스로를 소개하며 왕과 왕비 앞에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했다. 

“제가 귀환했습니다.”

토르는 왕을 바라보았다.

전날 밤 로키가 설명해 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토르는 자신 눈 앞에 나타난 이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딘은 나이 많은 남자였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오른쪽 눈은 안대에 가려져 있었지만, 얼굴 쪽까지 타고 내려가는 흉터까지 완전히 감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딘의 피부는 세월으로 인해 축 늘어지고 주름져 있었다. 대회당 내부가 춥지 않았고, 화로에 불이 맹렬하게 지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은 따스한 모피로 감싸져 있었다. 머리에 올라앉아 있는 왕관은 그의 몸에 비해서 너무 작아 보였으며, 홀을 아플 정도로 꽉 쥐고 있는 손은 가냘프고 뼈가 앙상했다.

토르는 자신이 마주하게 될 것이 괴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자기 앞에 서 있는 것은 허약해 보이는 노인일 뿐이었다. 로키가 해 준 이야기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갑자기 의심스러워졌다.

로키는 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오딘이 바닥에 홀을 쾅 내리치는 바람에, 허리를 숙이고 있던 로키가 화들짝 하며 몸을 세웠다.

“내 전령에게는 네 귀환을 알릴 의무가 없다. 개가 사냥에서 돌아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오딘이 로키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내 아들을 데리고 왔느냐? 네가 총애하는 내 아들을?”

로키가 재빠르게 제정신을 차렸다.

“그렇습니다. 여기 있는 것이 토르입니다.”

로키가 입을 열며 토르에게 자신 옆에 서라고 손짓을 했다.

토르는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오딘의 멀쩡한 눈이 자신을 살피며, 자신의 영혼 속을 들여다 보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딘의 몸은 시들고 쪼그라들었을 지는 모르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 날카로웠다. 토르를 바라보는 밝은 눈에는 그 어떤 침침함도 엿보이지 않았다.

“네가 왕좌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농장 촌뜨기란 말이냐?”

오딘이 터무니 없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애를 보거라. 저 애는 머리에 든 것이 없다. 저 애에게는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는 밭을 쟁기질하는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구나.”

토르는 뺨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따스한 환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아버지는 토르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고, 그가 여기 있는 것을 원하지조차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요르드가 뒤에서 토르가 제대로 듣지 못한 말 무엇인가를 내뱉었다.

“요르드의 아들이 강력할 것이라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노역 외에는 그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짐말 같은 사내 뿐이다.”

“토르는 폐하 스무 명을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로키가 차갑게 대답했다.

“폐하의 몸 전체보다 토르의 손가락 하나에 더 큰 가치가 깃들었으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꼭 그렇게 싸워 대야만 하나요?”

왕비의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비가 앉아 있던 왕좌에서 일어나 그들 쪽으로 다가와 섰다. 그녀는 키가 컸고, 갈색 머리가 회색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눈가에 그려진 선이 그녀가 웃을 때마다 부드럽게 주름졌다. 왕비는 남편에 비해 몇 년은 젊어 보였고, 토르가 그 누구에게서 본 적 없었던 방식으로 아름다웠다. 토르의 어머니는 나이를 먹지 않았고, 로키 또한 나이를 먹지 않았다. 반면 왕비는 시간의 흐름을 몸으로 받아 들였고 그 모습은 그녀에게 있어 사랑스러워 보였다. 토르는 왕비가 곧바로 마음에 들었다.

“널 이렇게 맞게 되어 기쁘구나, 토르.”

왕비가 토르의 손을 따스하게 쥐며 말했다.

“날 그냥 프리가라고 불러도 된다. 그 동안 정말 널 만나 보고 싶었지만, 네 어머니의 뜻을 존중해 지금까지 한 번도 연락을 취하지 못했구나. 지금에라도 널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이번 시험의 결과가 어떻든, 이 궁은 언제나 널 환영할 것이란 사실을 기억해 두려무나.”

왕비의 뒤에서 오딘이 콧방귀를 꼈지만, 왕비는 그를 무시했다. 왕비가 토르의 손을 놓아 주고 이번에는 토르의 어머니 쪽으로 향했다.

“여인 요르드여.”

왕비가 품위 있게 한 쪽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숙여 절을 했고, 요르드 또한 그 인사에 화답했다.

“저도 그런 식으로 인사를 드려야 하나요?”

로키가 물었다. 왕비의 시선이 로키 쪽으로 향했다.

왕비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당신이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네요, 로키. 정말 보고 싶었어요.”

“저도 보고 싶었어요.” 로키가 답했다.

프리가가 두 팔을 내밀자 로키가 다가갔다. 두 사람은 오래된 친구처럼 꼭 껴안았다.

“어떻게 지냈어요?”

프리가가 손을 뻗어 올리며 로키의 입가를 매만졌다.

“치유는 다 되었나요?”

토르가 그 쪽을 빤히 쳐다보았다. 로키가 아픈 적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로키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네, 잘 회복되었어요. 왕비님의 치유의 손길이 할 일을 다 했죠.”

로키가 말했다. 그가 프리가의 손가락 끝에 입을 맞췄고, 프리가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토르는 자기가 미쳐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로키가 정말로 왕 앞에서 왕비와 추파를 주고받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토르는 슬쩍 오딘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오딘은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희가 토르를 민망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군요.”

로키가 말했다.

토르는 로키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토르도 지금쯤이면 로키 당신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것 같은데요. 당신이 구제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사실도요.”

프리가가 말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무해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아요.”

“가끔씩만이죠.”

로키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오딘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대고 홀을 내리쳤다. 토르는 자신이 머지 않아 그 소리를 싫어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왕좌로 돌아오시오, 왕비. 그리고 저 마녀를 상대하는 것은 그만 두시오. 최근 들어 저 자가 당신의 돌봄은 이미 후하게 받은 것 같은데.”

“그 돌봄이 필요한 터였지요.”

프리가가 대답했다. 프리가는 로키를 팔에서 놓아준 후 다시 남편의 옆에 돌아와 앉았다.

토르는 프리가의 말에 대해 다시 한 번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왜 로키에게 치유가 필요했던 것일까? 로키는 농장에 돌아왔을 때 자신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왕궁으로의 여정 동안에도 로키는 멀쩡해 보였다. 로키가 필멸자들처럼 병에 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프리가 왕비의 치유를 필요로 할 정도면 그냥 단순한 일은 아니었음이 틀림 없었다. 로키라면 가능한 한 자신의 몸은 자신 스스로 치유했을 것이다.

토르는 왕의 끈질긴 시선에서 벗어나, 로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알현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토르는 왕궁의 규범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로키는 그 규범들을 완벽히 꿰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트리길 즐기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시험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이 곳까지의 여정의 목적을 토르에게 상기시켜 주기라도 하듯, 로키가 물었다.

“비다르는 하루 안으로 도착할 것이다. 비다르와 그의 어미는 꽤 오랜 거리를 여행해 와야 하는 것 같더구나.”

오딘이 대답했다.

“호드와 헤르모드는 둘 다 시험에서 실패했다.”

토르는 왕비가 남편의 말에 움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상했던 바로군요.”

로키가 말했다.

“두 사람 다 왕께서 원하시던 자질은 갖추고 있지 않다고 아주 진작에 말씀드려야 했는데 말이지요.”

로키의 시선이 프리가를 향했고, 그의 표정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물론, 두 사람 다 아주 훌륭한 청년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프리가가 그의 말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토르는 로키에게 자신 이외에 적어도 한 명의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토르는 가끔씩 로키가 농장을 떠날 때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그 시간 동안 그를 돌보아 줄 만한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다.

“그래, 네가 칭찬을 쏟아 붓는 이 촌뜨기에 비하면 훌륭한 아이들이지.”

오딘이 비웃었다.

“나라면 말을 좀 더 조심해서 고를 것이다.”

요르드가 고고하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로키는 당신에게 속박되어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당신이 내 아들을 모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당신 땅의 곡식들이 죄다 썩어 버려도 좋을 것 같은가?”

오딘이 그녀를 응시했다. 그 전까지는 요르드의 존재를 알아 채지도 못했던 것 같았다.

“당신도 많이 변했구려.” 오딘이 말했다. “예전에는 아름다웠는데 말이지.”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요르드의 어깨가 떨렸다.

“나는 여전히 아름다워.”

토르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아름다웠다. 요르드는 대지였으며, 그 대지 위에는 화전이 일구어졌고 고랑이 새겨졌으나 그로 인해 더더욱 아름다웠다. 토르는 어머니에 대해 그 어떤 비난의 말도 순순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토르는 왕이 말을 계속 이어 나간다면 그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살짝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요르드.”

프리가가 불쑥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가 없었군요. 시험에 관한 담화는 저들에게 남겨 두고, 우리는 같이 이야기라도 나누도록 해요. 여기까지의 여정 이야기와 고향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프리가가 자리에서 일어나 요르드에게 동행을 청했다. 토르는 어머니가 정말 순순히 자리에서 비껴나 줄 지 궁금했지만, 요르드는 그저 오딘에게 애처롭다는 시선을 한 번 쏘아 보낸 후 왕비를 따랐다.

로키가 자신 또한 이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는 듯 그들 뒷모습을 응시했다.

토르는 왕비의 외교술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남편이 모욕을 퍼붓는 것을 두 번이나 중간에서 가로막았고, 그가 초래한 상황을 훌륭한 솜씨로 무마해 냈다.

왕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로키가 이 남자와 그의 성미에 관해 해 주었던 말에 대한 의심이 덜어져 갔다.

“토르는 내일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왕비와 요르드가 회당을 떠난 후 문이 닫히자 오딘이 입을 열었다.

“발두르는 오늘 오후에 시험을 받을 것이다.”

“아직도 발두르를 가장 총애하시는 건가요?” 로키가 물었다. “실수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시험 때까지 두고 보도록 하지.”

오딘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얼굴 표정이 더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그렇지요. 두고 보도록 하지요.”

로키가 동의를 표했다.

“토르에게 시험장을 둘러볼 기회를 허락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왕자들은 이미 보았을 터인데, 토르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달라는 점만을 요청 드리지요.”

오딘이 그를 찬찬히 뜯어 보았다. 토르는 왕이 로키의 부탁을 거절할 것이라 확신했지만, 그 대신 왕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그들을 물렸다.

“그래.”

오딘이 말했다.

“마음껏 데려 가도록 하거라. 네 얼굴을 보는 건 이제 지겹구나.”

“그리고 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폐하의 얼굴을 보는 게 지겨웠더랬지요.” 로키가 대답했다.


*


성의 모든 비밀 통로를 알고 있다던 로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로키는 태피스트리 뒤에 숨겨져 있는 문으로 토르를 데려가 나선 계단을 내려 갔고, 그 후 또다른 문을 지나 단단한 벽에 이르렀다. 로키가 그 벽을 밀자, 밝은 태양이 비추어 들어왔다.

둘은 함께 걸었다. 너무 가깝게 붙어 있어 로키의 어깨가 계속 토르의 어깨에 부딪혔고, 토르의 손이 로키의 허리에 스쳤다.

토르는 두 사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성 안의 푸른 잔디밭 위에, 반짝이는 커다란 천막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천막의 직물은 밤하늘로부터 잘라내 온 것만 같았다. 그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발두르가 누구죠?”

두 사람이 걸어가는 동안 토르가 물었다.

“네 이복 형이자, 네 아버지가 가장 총애하는 자식이지. 발두르는 아버지의 능력을 얻었고, 어머니로부터는 선한 마음과 외모를 선사 받았어. 하지만 나는 항상 그 애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느꼈어.”

로키의 입술이 혐오감으로 뒤틀어졌다.

“네 아버지는 그 아이가 후대의 왕이 될 거라 믿고 있고,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그를 준비시켜 왔지. 발두르는 거인과 난쟁이의 언어를 말할 줄 알아. 그는 뛰어난 검술가이자 외교관이고, 말을 타고,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지. 왕국 사람들은 발두르를 사랑해 마지 않고, 난 이제 그 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지겨워 죽겠어.”

토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질투하시는 것 같네요.”

“나는 그 왕자가 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일을 해낼 수 있는걸.”

로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왕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는 않을 테고요.” 토르가 말했다. “로키는 익숙해질 수록 좋아지게 되는 사람 같아요.”

로키가 시선 한 구석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흠모의 대상이 된다는 게 얼마나 따분한 일일지 몰라. 차라리 소수의 선택 받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쪽을 고르겠어.”

“왕비님 같은 사람 말인가요?”

대회당에서 로키가 왕비에게 애정 어린 포옹을 허락하던 장면을 다시금 떠올리며, 토르가 말했다.

로키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 토르. 이제는 네가 질투하는 것처럼 들리는 걸!”

“왕비를 잘 아시는 것 같더군요.”

토르가 집요하게 말했다.

“왕비가 나를 잘 아는 거지.”

로키가 반박하듯 대답했다.

“나도 친구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왕비와 나는 그 뿐이야. 친구.”

“옛날에는 제가 로키의 유일한 친구일 줄 알았어요.” 토르가 말했다.

로키가 몇 초 간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그랬던 적도 있었지.” 로키가 말했다.

둘은 잠시 동안 침묵 속에서 걸었다.

“네 아버지가 발두르와 레이디 난나와의 혼인을 주선해 주었단다.”

침묵이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싶을 무렵 로키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더구나. 네가 발두르 대신 왕좌를 물려받게 된다면, 아버지가 네게도 혼인을 주선해 주셔야 할 거다.”

토르는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다. 로키의 말은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왕이 된다는 것에 대해 온갖 면모를 다 떠올려 보았지만, 결혼 생각은 그 중에 없었다.

“혼인이라고요?”

토르가 당혹스럽게 물었다.

“그래. 혈통을 이어 나가야지.”

토르의 망설임을 눈치채지 못하기라도 한 듯, 로키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나도 이미 네게 걸맞는 상대들은 몇 생각해 두었어. 레이디 아모라는 마법사인데, 내가 보기엔 마법사라고 큰 문제는 없을 것 같고. 레이디 시프는 아주 뛰어난 전사야. 널 위해 군대를 이끌어 줄 수도 있을 거야. 다른 이들도 있지만 그 두 명이 가장 유망해 보여.”

토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로키가 이미 자신의 혼인에 대한 전망을 떠올리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미 토르의 미래 신붓감까지 다 골라 놓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로키에게 자신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로키가 자신에게 허락했던 모든 접촉들, 모든 시선들은, 자신이 그저 상상한 것일 뿐이었을까? 그저 순수한 우정의 순간일 뿐이었던 것을, 자신이 멍청한 사랑의 열병에 빠져 확대 해석 해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거기에 제 발언권은 없는 건가요?”

토르가 분개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내가 네게 나쁜 혼인 상대를 골라 줄까봐?”

로키는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는 네 아버지가 후예를 가지기로 했을 때도 그 분께 자문을 제공했고, 그 때의 내 자문이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토르는 입 안쪽 여린 살을 꽉 깨물었다. 입 안에서 피맛이 났다.

그래서, 자신 출생의 원인은 바로 로키였다. 로키가 왕에게 자문을 했고, 요르드와 동침하라고 일렀다. 로키는 이 모든 것을 계획해 왔고 지금도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있었다. 태피스트리 위에 실 하나를 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토르와 자신의 미래를 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토르가 그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토르는 그 어떤 사람과 결혼해서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로키가 그런 일들을 계획하며 토르의 마음과 사랑을 외면하는 것은 잔인하기 그지 없는 짓이었다.

“저는 혼인하고 싶지 않아요.”

토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아직 어리잖니. 아직 시간은 많아.”

로키는 토르의 말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일축해 버렸다.

토르는 로키의 어깨를 움켜쥐고 그를 멈춰 세웠고, 그의 몸을 끌어와 자신을 마주 보게 했다. 로키는 놀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의아하다는 듯 토르를 올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고, 토르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존재를 왜 자신이 이토록 신경 써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왕비의 치유가 필요했던 거죠?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에요?”

토르가 물었다.

로키가 토르의 손아귀로부터 몸을 홱 빼 내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토르도 그를 쫓아 냅다 뛰었다. 토르는 로키의 허리를 붙잡고 그를 풀밭 위로 넘어뜨렸다. 로키는 몇 번 저항해 보다가 마침내 토르 밑에서 항복했다.

숨을 몰아쉬며 토르는 로키를 내려다 보았다. 로키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기만을 바랐다.

“봐, 도착했어.” 로키가 말했다.

토르는 고개를 들었다. 로키의 말대로 둘은 천막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도달해 있었다.

천막 앞에는 경비병도, 시종들도 없었다. 토르는 그 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막 안에 있는 것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임에 틀림 없을 텐데, 아무도 그걸 지키는 이가 없었다.

토르는 발을 딛고 일어난 후 로키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몸을 끌어 올렸다. 토르는 여전히 로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로키가 왜 치유를 필요로 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조금 미룰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은 천막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마주해야 할 시험이 걱정될 따름이었다.

“가자.”

로키가 토르의 손을 잡아 당기며 말했다. 두 사람의 손이 여전히 얽혀 있다는 사실을 토르는 그제야 알아챘다.

토르는 로키를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숨결이 무겁게 느껴졌다. 자신의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고, 귀 안에서 피가 펄떡펄떡 뛰는 것이 들려 왔다. 토르는 공기 중에서 무엇인가 번개처럼 딱 소리를 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곧 목격하게 될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토르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부드럽게 노래하는 소리를 토르는 들을 수 있었다. 마법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것이 토르를 소리내 부르고 있었다.

천막 안은 환했고 바람이 드나들고 있었다. 토르가 예상했던 것만큼이나 불길해 보이지는 않았다. 원형의 시험장을 따라 관중들이 앉을 수 있는 나무로 된 링이 마련되어 있었고, 왕과 왕비가 앉는 높이 솟아오른 귀빈석도 있었다. 후대의 왕이 될 사람을 가리기 위한 자리라기보다는, 운동 경기장 같이 쾌활해 보이는 장소였다.

시험장의 한 가운데 땅이 움푹 파여 있었고, 그 중간에는 커다란 은색 망치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토르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무기였다. 그래, 그 망치는 무기였다. 금속의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룬 문자와 무늬들 위로 마른 피가 비쳐 났다. 이 망치는 절대 집을 짓는 용도로 사용되지도 않을 것이고, 건축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 할 것이다. 이 망치는 전쟁 무기였고 토르는 그것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은 묠니르야. 오로지 가치 있는 자만이 들 수 있는 무기지. 내가 네게서 칠 년 동안 떠나 있었던 이유도 이거야. 네가 소유권을 주장하게 될 것이 바로 이 무기란다.”

토르는 시험장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토르는 로키의 손에서부터 자기 손을 빼낸 후, 묠니르의 차가운 금속 표면에 손을 가져갔다. 망치는 아름다웠고, 토르는 자신이 이것을 들어올릴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토르는 망치를 들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토르는 망치 표면 위의 핏자국 위로 손가락을 쓸어 보았다. 다시 로키 쪽을 돌아보는 토르의 마음 속으로 불안한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칠 년 동안 사라졌던 로키. 치유를 필요로 했던 로키.

“로키, 겨우 이것 하나를 찾기 위해 그 시간 동안 떠나 있어야 했을 리가 없어요.”

“조금 복잡한…문제가 있었어.”

로키가 말했다.

“난쟁이들은 매우 기억력이 좋은 자들이야. 보르가 자기네들 황금을 훔쳐 갔다는 데 아직도 잔뜩 화가 나 있더군. 너무나 훌륭하고 너무나 강력해서, 오로지 가치있는 단 한 사람만이 들 수 있는 무기를 난쟁이들이 만들었다는 소문이 있었지. 오딘이 그 소문을 듣고 내게 그 무기를 찾아오라고 시켰어. 나는 묠니르를 사 들이기 위해 협상을 하려 했지만, 난쟁이들이 그다지 기뻐하지는 않더군.”

“그들이 무슨 짓을 했죠?”

토르가 물었다. 위장 깊숙한 곳에서 두려움이 또아리를 틀기 시작했다.

로키가 입술을 앙다물더니 바늘로 실을 꿰매는 듯한 손짓을 해 보였다. 토르는 속이 메스꺼워졌다.

저 망치 위에 있는 것은 로키의 피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로키가 말을 이었다.

“지하의 어둠 속에 날 가두더군. 생애 처음으로 태양이 그리웠던 순간이었어.”

로키가 고개를 흔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 있을 때 네 생각을 많이 했어. 일 년, 일 년이 지날 때마다 말이지. 하지만 망치를 얻기 전까지는 떠날 수가 없었어. 명령을 받은 게 있었기 때문이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인내심이 있었어. 날 가둔 감옥의 바위와 돌들을 쪼아내 난쟁이들의 보물고까지 향하는 통로를 만들었지. 그리고 거기서 묠니르를 발견했어.”

로키의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망치를 붙잡던 기억과, 그 무기의 힘을 느꼈을 때의 기억이 그의 얼굴 위로 온전히 아로새겨졌다.

“나는 묠니르를 가지고 성으로 돌아왔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어. 그 시간 동안 물도, 음식도 없이 지냈거든. 차갑고 앙심 어린 흙 밑에서, 날 보존해 줄 수 있는 그 어떠한 따스함도, 열기도 없이 땅 아래 갇혀 있었지. 내 입은 여전히 꿰매져 있었어. 왕비가 나를 간호해 주고 바늘땀을 빼내 주었고 치유해 주었지. 충분한 영양도 제공해 주었고 말이야.”

로키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묠니르를 떨어뜨린 장소에 오딘은 시험장을 지었어. 오딘의 병사들 중 누구도 그 무기를 옮길 수가 없었거든. 그 누구도 그만큼 강하지 못했어.”

토르는 분노가 파도처럼 솟아 올라 모든 것을 삼켜 버리려 위협하는 것을 느꼈다.

토르는 묠니르를 집어 들어 로키를 다치게 한 난쟁이들을 쫓을 것이다. 토르는 그 자들을 죽일 것이고, 그 자들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 버릴 것이다. 로키의 몸에 손을 댄 순간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그 후에는 이 곳으로 돌아와 애초에 로키를 그런 곳에 보낸 왕을 처치해 버릴 것이다.

묠니르가 더 큰 소리로 웅웅대며 노래했다. 토르의 상념으로부터 양분을 얻은 것이다. 토르의 손가락 끝에서 번개 불꽃이 번쩍거리며 흘러 나와, 망치의 금속 표면을 따라 훑어 내려갔다.

“토르.”

로키가 속삭였다.

토르는 문득 자기 손을 내려다 보았다. 머리 속에 떠올랐던 생각이 경악스럽기 그지없었다. 자신은 살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보다 자신이 더 나을 바가 없었다. 토르는 난쟁이들을 학살하려고 했고, 노인을 죽이려고 했다.

토르는 몸을 떨며 묠니르에서 손을 뗐다.

“로키, 전 이걸 원하지 않아요.”

토르가 말했다.

“저는 절대…”

“할 수 있어.”

로키가 고집했다.

“난 널 위해 이 일을 했어, 토르. 네가 왕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그리고 내가 널 섬길 수 있기 위해.”

토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왕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어떤 왕이 될지 엿보고 말았다. 묠니르의 노래는 피의 노래였다. 토르가 그 망치를 들어 올린다면, 그것은 전쟁을 위해서일 것이다. 토르는 그 망치를 손에 쥐고 있는 동안에는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 망치가 복수를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 속삭임에 따르게 될 것이다. 토르는 파괴할 것이고, 로키를 위해 그렇게 할 것이다.

토르는 그런 무시무시한 일을 원한 적이 없었다.


*


로키는 토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묠니르를 보러 가면 토르의 결심이 확고해질 줄 알았다. 토르는 묠니르가 자신을 불러내는 것을 느꼈고, 로키도 그 사실을 알았다. 정말로 신비한 일이었다. 그 무기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누가 자기를 들어 올려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로키가 난쟁이들의 보물고에서 그 무기를 찾아냈을 때, 그 무기는 로키를 향해 토르의 이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달콤하게 부르며 노래했다. 그 당시 로키는 반쯤 미쳐 있었다. 의식이 혼미했고, 간절하게 치유를 필요로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묠니르의 손잡이를 붙들었을 때, 그 무기가 토르의 소유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토르만이 이런 힘을 제어할 수 있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오딘, 그 늙은 멍청이는 로키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로키가 세 명의 매력적인 여인과 동침하라는 조언을 했을 때처럼, 오딘은 자신의 입맛에 내키는 조언만을 받아들였고, 그만큼이나 자주 자신의 조언을 일축 시켜 버리고는 했다.

왕과 그가 가장 아껴 마지않는 아들이 공개적으로 창피를 당할 생각을 하니 즐거웠고, 그 즐거움에 죄책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로키가 발두르를 미워하는 것이 발두르의 탓은 아니었다. 발두르는 좋은 남자였다. 그리고 좋은 왕이 될 뻔도 했지만, 그는 오딘이 가장 총애하는 자식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로키는 그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로키는 발두르를 섬기지 않을 것이다. 로키는 오딘이 자신을 위해 계획한 그 어떤 길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로키는 토르가 왕위를 물려 받도록,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정말로 실현될 수 있도록 그 모든 힘을 다할 것이다.

오딘이 그렇게나 자만심에 눈이 멀어 있지만 않았어도, 그들 주위에 온통 널려져 있는 징후를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로키는 그 징후를 읽어냈고, 요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떠한 마술사나 마법을 다룰 가치가 있는 태고의 존재들이라면 그 징후를 읽어내고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로키와 토르는 천막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둘은 나무로 된 원형의 링 쪽으로 옮겨 갔고, 머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도착하기 시작했다. 발두르가 후대의 왕이 될지를 궁금해하며 성에서부터, 혹은 성 주위의 마을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다. 왕과 왕비도 환호를 받으며 도착했고, 귀빈석에 자리를 잡았다.

마침내 발두르 왕자가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발두르는 키가 컸고, 단단한 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눈은 따스한 녹갈색이었다. 눈이 멀 정도로 잘생긴 왕자였다. 발두르의 얼굴에서는 무척 빼어난 무엇인가가 드러나 보이지도 않았으나, 그렇다고 뭔가 불쾌한 점이 보이지도 않았다. 발두르는 건장한 사내였다. 하지만 그는 토르만큼 근육질에 몸이 크지는 않았다. 발두르는 자신 평생을 농장에서 일하지도 않았고, 대지의 자식도 아니었다. 발두르는 필멸자였으며 안타깝게도 그 뿐이었다.

군중들이 그를 향해 환호했다. 레이디 난나는 두 손을 맞붙잡은 채, 약혼자가 나타나는 모습에 조용한 한숨을 내쉬었다. 로키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런 평범한 자를 두고 왜들 이 난리인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발두르는 관객들의 환호에 응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제스처를 해 보이지도 않았다. 발두르는 단호하게 묠니르 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관객들 사이 숨죽인 침묵이 내려 앉았다. 그들 중 로키만이 지루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로키는 나무 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시간이 좀 더 빨리 지나기를 바랐다.

발두르가 망치의 손잡이에 강한 손가락을 둘렀다.  

발두르가 손을 당겼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묠니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발두르가 다시 한 번 시도했다. 손을 당기는 동안 그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망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시험장이 고요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젊은 왕자와 그의 실패의 현장 위로 내려 앉았다. 오딘의 얼굴은 잿빛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로키가 웃음을 터뜨렸다. 천막 안을 가득 채우는 까마귀가 울부짖는 것 같은 웃음 소리였다.

“제가 말씀 드렸지요, 폐하. 제가 말씀 드렸지 않았습니까!”

“그 입을 닥치지 않으면 내가 닥치게 만들어 주마.”

오딘이 으르렁거렸다.

그 위협은 절대 그냥 넘겨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프리가 여왕마저 왕의 옆에서 몸을 떨었다. 하지만 로키는 계속 웃었다. 고개를 젖힌 채, 반항하듯 웃어 보였고, 몸을 경쾌하게 흔들어 댔다.

발두르는 실패했다. 발두르의 형제 두 명도 이미 가치가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비다르는 걸어 다니는 바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 중 단 한 명만이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토르는 묠니르를 움켜쥘 것이다. 토르는 그것을 들어올릴 것이다. 토르는 그것을 하늘 높이 들어올릴 것이고, 왕위에 오를 것이며, 로키는 그 곁을 지킬 것이다. 이것이 로키가 원했던 것이며 계획해 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 몇 년 동안을 난쟁이들의 차디찬 지하 감옥에서 보내야 했지만 말이다.

그는 토르를 섬길 것이다.

로키는 기대 어린 얼굴을 한 채 옆을 돌아 보았다. 토르가 더 이상 자신의 옆에 앉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로키의 웃음이 갑자기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어디에도 토르는 보이지 않았다.

토르는 떠나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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