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토르로키/번역]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 (4/16)

토르로키 / Thorki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왕세자와 야수)"

by triedunture


원문: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5267873


  • 작가님께서 번역은 출처를 포함하여 자유롭게 하라고 명시하셨습니다. (https://i.imgur.com/r6PfDqx.jpg)
  • 에시르 토르x요툰 로키 정략결혼 AU입니다. 구전동화 느낌이 살짝 끼얹어진 작품으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화자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 로키를 비롯한 모든 요툰 종족은 인터섹스(자웅동체)라는 설정입니다. 엠프렉 언급이 있습니다.
  • 요툰헤임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고 누구나 아이를 밸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아버지라는 단어 대신 (주로 동물 번식에서) 누가 씨를 뿌렸고 누가 새끼를 배었는지 칭하는 단어인 dam/sire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단어들은 원문에서 사용한 의미와 가장 비슷한 단어인 '종빈/종모'로 번역합니다.



*    *    *



4장.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말로는 쉽게 들릴지 몰라도, 실제로 살아 나가기는 힘든 시간이다. 당신도 얼마 동안이든 방에 갇혀 지내야 한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게 가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이다. 환경이 얼마나 안락하든 간에, 감금은 감금이다. 이런 일을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었던 로키는, 자신이 얼마나 간절히 살아 숨쉬는 동료의 존재를 그리는지를 깨닫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토르가 매일 밤 방으로 오기는 했지만, 로키는 토르가 나타날 무렵이면 꼭 침대 위에 누워 있으려 노력했고, 그의 존재를 피하기 위해 잠자는 척을 했다. 오딘슨은 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로키는 헤임달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으며, 헤임달과의 대화도 그저 간결한 담소에 지나지 않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왕세자님.”

“날이 좋군요, 왕세자님.”

“잘 주무셨는지요, 왕세자님?”

머리를 돌아버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지만, 로키는 매 번 예의 바르게 대답해 주려 노력했다. 헤임달은 꽤나 기묘한 삶을 살아온 흥미로운 사람처럼 보였기에, 로키는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헤임달은 자신의 직무 때문에 로키의 사저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아침 식사를 대령하고, 불쏘시개로 잿더미를 쑤시고, 커튼을 열어 아침 햇살을 들어오게 하는 것이 다였고, 그 일이 끝나고 나면 헤임달은 다음 의무를 다하러 떠나 버렸다. 아마 그 야수 같은 왕자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일 터였다.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갔다. 방 안에는 시간을 때울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에 (생각을 동료로 삼는 것은 지금 당장은 피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로키는 조그만 창문을 통해 아래의 성 안뜰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로키가 집어 던졌던 곰가죽 깔개와 베개는 언제인지 이미 치워져 있었다. 헤임달이나 시종 중 한 명이 가져갔을 것이라고, 로키는 추측했다. 하지만 그 후에 그 깔개와 베개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았다. 누군가 로키의 사저로 다시 가져다 놓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물건들은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오딘슨이 매일밤 맨 돌바닥 위에서 잠을 청하는 걸로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 작자는 문명의 편안함을 즐기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로키 생각으로는 오딘슨은 외양간 바닥에서도 곤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로키는 성 안뜰에서 어린아이 몇 명이 조랑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구경했다. 아이들은 통통한 팔로 자기가 올라탄 조랑말을 조종하느라 열심히 애쓰고 있었다. 아직 말 타는 것에는 익숙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소리 높여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충고를 건네기도 했다. 조랑말의 줄을 잡고 지금 막 안뜰로 들어온 아이 한 명이, 안장 위로 올라타려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로키는 그 아이가 몇 번이고 땅바닥으로 다시 미끄러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쌍한 어린애 같으니. 그 애의 다리는 너무 짧았다.

한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메아리 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는 알아 들을 수가 없었지만, 로키는 오딘슨이 시야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로키의 푸른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럼 그렇지, 저 지긋지긋한 왕자는 로키가 유일하게 즐기고 있는 유흥거리마저 망쳐 놓을 속셈이었다. 오딘슨의 모습을 보자마자 로키는 그냥 창문 앞에 마련한 자리를 포기하고 다시 부드러운 침대로 돌아가 낮잠이나 자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키가 떠날 수 있기도 전, 오딘슨이 그 어린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몸을 굽혀 뭔가를 이야기해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봐서는 격려하는 말을 해 주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러고는 그 아이가 양 팔을 쭉 뻗자, 토르는 아이의 허리를 번쩍 붙잡아 들어올리더니 아이의 몸을 조랑말 안장 위에 올려 놓아 주었다. 오딘슨의 손아귀 안에 그 어린아이는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마침내 안장 위에 올라탄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토르를 반짝이는 선망의 눈길로 올려다 보았다. 오딘슨이 그 장난꾸러기의 황금색 머리카락을 헝클어 주더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선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고개를 들어 로키의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모습을 들키지 않기에는 로키가 너무 늦게 물러났는지도 모른다. 로키는 커튼의 그림자 뒤에 몸을 숨긴 채 침을 꿀꺽 삼켰다. 에시르 왕자가 자기도 훗날에 아이들을 가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났지만, 그래도 저 야만인이 어린아이들을 애지중지 대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토르가 언젠가는 그렇게 바라 마지않는 자식들을 번식시킬 수 있게 될지, 로키는 궁금해졌다. 그의 계획이 성공하느냐 마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이 끔찍한 혼인에서 벗어날 방법만 찾을 수 있다면, 오딘슨은 짚색 머리카락의 창백한 아기 괴물들을 몇 명이고 마음껏 키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 안뜰에서 말 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군요.”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와, 로키는 놀라 펄쩍 뛸 뻔했다.

“그렇게 소리도 안 내고 움직이면 어떡하나, 헤임달! 놀라서 심장이 멎을 뻔 했어.”

“죄송합니다, 왕세자님.”

헤임달이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별로 죄송해 보이지는 않았다. 헤임달은 조용히 딸깍 소리를 내며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어린아이들이 말 타는 연습을 하는 걸 보고 계셨던 건가요?”

“그것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어서.”

로키는 이렇게 불평한 후, 텅 빈 벽난로 옆에 있는 의자에 몸을 굽혀 앉았다. 로키는 헤임달이 점심 식사를 담은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는 것을 지켜 보았다.

“오늘 식사는 뭐지?”

“순무 뿌리를 곁들인 양고기입니다.”

헤임달이 대답했다.

로키는 불만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또 고기로군. 조그만 생선 한 조각만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찐 물냉이 한 그릇이라도 좋았다. 에시르산 식품만 아니면 뭐든 다 좋을 것이다. 어쨌든 로키는 헤임달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궁중 요리사들이 로키를 송아지처럼 살찌우려 만드는 것이 헤임달의 탓은 아니었으니까. 로키는 포크를 들고 고기를 자디잘게 자르기 시작했다.

“지루하시다면 성 안을 산책하시는 것도 기분 전환에는 좋을 것 같군요.”

헤임달이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물건들을 정돈하며 말했다.

“왕자님께서 기꺼이 안내해 주실 겁니다.”

“제안은 고맙지만, 감옥 안에서 말라 죽는 쪽을 택하도록 하지.”

로키가 이렇게 대답했다. 로키는 창문 쪽을 바라 보았다. 성 안뜰로부터 여전히 어린아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 쳐 울리고 있었다. 오딘슨의 시끌벅적한 웃음 소리도 거기에 합류했다. 그 유쾌한 소리에 로키의 기분이 더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헤임달이 세면 대야를 제자리로 당겨 놓으며,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말 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어떠실까요, 왕세자님?

“뭐라고?”

로키의 고개가 헤임달 쪽으로 휙 돌아갔다.

“내가? 말을 탄다고?”

“안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을 겁니다. 색다른 경험이겠지만, 즐기게 되실 수도 있고요.”

헤임달이 느릿느릿 말했다.

로키의 생각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말을 타면 확실히 시간을 보내기에는 좋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탈출하는 데에도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성과 아스가르드로부터 두 발로 걸어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말에 올라탄다면 도망칠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질 지도 몰랐다.

“말 타는 법을 내게 가르쳐줄 수 있어?”

로키가 헤임달에게 물었다.

헤임달이 웃음을 터뜨렸다.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시절에는 저도 뛰어난 기수였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러기에는 불리한 상태인 것 같군요.”

헤임달이 창문 쪽으로 고갯짓을 해 보였다.

“교사가 필요하시다면, 가까운 곳에 아주 실력 있는 사람이 있지요.”

성 안뜰에서부터 토르의 멍청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린 아이들이 한참 동안 요란하게 웃는 소리도 들렸다.

로키는 뭔가 시큼한 음식을 입에 넣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오딘슨은 내게 가르쳐 줄 게 없어.”

왕자의 신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토르 왕자님은 키가 제 무릎까지 오던 시절부터 말을 타셨습니다. 저도 제가 아는 것 대부분을 왕자님께 가르쳐 드렸지요. 말 타는 법을 배우고 싶으시다면 토르 왕자님 말고 더 나은 선생은 없을 겁니다. 실은 유일한 선택지이기도 하지요. 왕세자님을 모시고 다니게 할 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로키의 마음 속에서 두 생각이 맞서 싸웠다. 한 쪽은 고집스럽게 오딘슨과의 싸늘한 침묵을 깨기를 싫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존심을 잠깐만 굽힐 수 있다면, 이 지옥 구덩이에서 빠져나갈 확률을 높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격렬한 싸움이었지만, 결국 후자가 우위를 점하고 말았다.

로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왕자에게 내게 말 타는 법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물어 봐 주게. 내일이 괜찮을런지도 함께 물어보고.”

로키의 그 말에 헤임달은 자기만의 고요한 방식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헤임달의 미소가 깊어졌다.

“바로 여쭈어 보도록 하지요. 긍정적인 답변을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아마도 승마복이 필요하겠지. 괜찮다면 검은색 옷으로 가져다 주었으면 좋겠군.”

로키는 이렇게 일렀다. 밤중에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옷들을 더 모아 놓으면 놓을수록 좋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왕세자님.”

헤임달이 대답하고는, 왕자에게 로키의 전언을 옮기러 떠났다.

모든 일이 아주 빠르게 준비되었다. 오후에 헤임달이 저녁 식사를 가지고 와서는 토르가 기꺼이 내일 아침 일찍이 승마술을 가르쳐 주겠노라 했다고 전했다. 로키는 진중한 태도로 그 소식과 번듯한 새 가죽 승마복을 받아들였다.

그날 밤 로키가 외롭게 침대에 누워있을 때, 오딘슨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딘슨은 뭔가를 말을 꺼내기라도 할 것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는지 조용히 벽난로 쪽으로 가 바닥의 자기 자리로 가서 잠을 청했다. 로키는 숨을 누그러뜨린 후 편안히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로키가 일어났을 무렵 토르는 이미 방을 떠나 있었다. 로키는 언제나처럼 혼자 아침식사를 한 후 검은색 가죽 승마복으로 갈아입었다. 헤임달은 평소답지 않게 기분이 좋아 보였고, 로키가 옷 끈을 조여 매는 동안 방 안을 쏘다니며 할 일을 했다.

“왕자님께서는 어제 잠을 설치셨다고 하더군요. 오늘 왕세자님께 말들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신이 나셔서 말이지요.”

헤임달이 로키에게 말했다.

“왕자님은 동이 트기도 전 저보다 더 일찍 일어나셔서, 오늘 사용할 말들을 준비하러 가셨습니다. 말 타기에는 아주 좋은 날씨가 될 것 같군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

로키는 거짓말을 했다.

“마구간으로 가는 길까지 안내해 주겠나?”

헤임달은 로키를 데리고 마구간으로 갔다. 마구간은 나무로 조각된 나지막한 건물이었다. 헤임달은 희망찬 미소를 띤 채 로키를 그 곳에 남겨두고 떠났고, 로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마구간 안으로 들어갔다. 동물과 건초 냄새가 코 속을 채워 왔다. 이 수업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 될 것임은 틀림 없었기에, 로키는 이것이 자신의 탈출을 돕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애써 상기해야만 했다. 자유를 향한 보잘것없는 희망을 위해, 이 냄새를 견뎌야 했으며 오딘슨의 옆에 동행하는 것을 인내해야 했다. 로키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러던 로키의 시야에 말들이 들어왔고, 로키의 얼굴은 창백한 파란색을 띠었다.

한 번도 말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이 키가 3미터 정도 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말에 대해 들은 설명이라고는 ‘고기를 도축하기 위해 기르는 조그만 가축’이라는 것 뿐이면 말이다. 당신이 머리속으로 떠올린 말의 이미지는 닭 정도일 수도 있다. 그렇게 믿지 않을 만한 다른 이유가 없다면 말이다. 아이들이 타고 노는 조랑말들 또한 높은 창문에서 내려다보면 다루기 쉬운 동물처럼 보일 것이다.

로키의 훈련용 말은 조랑말이 아니었다. 얼굴 아래쪽에 흰색 점이 있는 거대한 밤색 암말이 서 있었다. 말에는 이미 굴레가 씌워져 있었고 등에는 품위 있는 모양의 가죽 안장이 얹혀 있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 덕에 말의 커다란 콧구멍에서 김이 내뿜어져 나왔고, 말발굽이 단단히 다져진 흙 위를 탁탁 쳤다. 요툰헤임의 남쪽 평야에 위치한 증기 호수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피를 얼음으로 바꿔 놓을 것만 같은 새된 소리가 말에게서 튀어 나왔다. 로키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이런 동물 위에 올라탄다는 생각이 갑자기 터무니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로키는 겁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당신도 그의 두려움을 이해해 주어야 할 것이다. 로키는 약간 덩치 큰 닭 정도의 동물을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로키는 도망쳐야 한다는 깊숙한 본능과 맞서 싸우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괜찮아.”

토르가 그늘진 마구간 한 켠에서 나타나며 말했다. 토르가 암말의 고삐를 손으로 붙잡았다.

“벨은 이 마구간에서 가장 온순한 말이야. 어린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친구지. 축제날이면 아이들이 곡마장에서 이 친구를 타고 다닌다고.”

“내가 타게 될 말이 나이 들대로 들어서 뼈만 남은 말이란 뜻이야?”

핼쓱해져 있는 모습을 들킨 것이 창피해, 로키가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러면 그 대신 스톰브레이커를 타려고?”

토르가 마구간 다른 켠을 가리켰다. 그 곳에 있는 얼룩덜룩한 무늬의 회색 종마 한 마리가, 안장을 얹어 주려는 마구간지기에게 발길질을 하며 이빨을 딱딱 부딪혀 보이고 있었다.

“스톰브레이커는 아주 신경질적인 친구지. 그런 점은 당신과도 비슷하니, 어쩌면 잘 어울릴 지도 모르겠군.”

로키의 반박을 기다려 주는 대신, 토르는 마구간지기에게 꾸벅 고개를 끄덕해 보인 후 두 말을 이끌고 마구간 바깥 마당으로 나가 버렸다.

로키는 토르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눈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이곳에 오기로 한 것이 벌써부터 후회되고 있었다.

“빨리 이 수업인지 뭔지 끝내 버리자고.”

오딘슨이 그 말에 조롱하듯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그 자리에서 두 손을 한데 겹쳐 앞쪽으로 내밀었다. 잠시 후에야 로키는 자신이 그 손을 딛고 안장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로키는 그렇게 했고, 암말의 널찍한 등 위로 힘겹게 몸을 끌어올려 앉았다. 로키가 바랐던 것처럼 우아한 모습은 아니었다. 말에 올라타고 나자, 토르가 발을 등자에 어떻게 꿰어 넣어야 하는지 알려준 후 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안장에 앉아 있는 것은 춤을 추는 것과 비슷해. 몸가짐을 꼿꼿이 유지하고 있어야만 하지. 너무 뻣뻣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구부정해도 안 돼.”

토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로키를 올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춤은 출 줄 알아? 그건 물어본 적 없는 것 같군.”

“당연히 출 줄 알지.”

로키가 내뱉었다.

“나는 요툰스타드의 대궁중에서 자랐다고. 걷기도 전부터 춤 추는 방법부터 배웠어.”

“그렇다면 말 타는 법도 수월하게 배우겠군.”

토르가 앞쪽으로 다가가 말의 머리를 붙들었다.

“고삐를 잡을 수 있겠나, 왕세자? 조금만 더 느슨히 잡아 봐. 여기, 내가 보여 주도록 하지.”

토르가 손을 뻗어 로키의 손가락을 붙잡았지만, 로키는 재빨리 토르의 손을 쳐 내 버렸다.

갑작스럽게 고삐가 잡아 당겨지는 바람에 벨이 코를 힝힝거렸다.

“나한테 손 대지 마, 오딘슨.”

로키가 붉은색 두 눈을 경고하듯 빛내며 일렀다.

토르가 말을 조용히 시킨 후 어깨를 으쓱했다.

“알아 들었어.”

토르는 로키가 손가락을 어디 놓아야 하는지, 발을 어디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눈은 어디를 향해야 하고 숨은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로키는 설명을 주의 깊게 경청하려 애썼지만, 이 커다란 동물 위에 우뚝 올라 앉은 채 그 동물이 숨을 내쉴 때마다 옆구리가 들썩들썩대는 것을 느끼고 있자니,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익힐 수 없을 것 같아.”

토르가 말을 앞으로 몰고 나가는 여러 방법들을 설명해 주려 할 무렵, 로키가 불쑥 말했다.

“그냥 출발해 보자고. 타면서 배워 볼 테니까.”

로키의 그 요청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 고민하듯 앞쪽을 한참동안 응시하고 있던 토르가 말했다.

“내키는 대로 해.”

토르는 스톰브레이커의 갈기 다발을 움켜잡더니 안장 위로 몸을 던져 부드럽게 올라탔다. 스톰브레이커가 노한 듯 히힝거리는 소리를 내며 토르의 몸 밑에서 뱀처럼 몸을 비틀어 댔다. 하지만 에시르 왕자는 앉은 자리를 지킨 채 고삐를 능숙하게 다뤄 말을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로키는 그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딘슨이 한 치만 잘못 움직임을 놀려도 말에서 튕겨 나와 날카로운 말발굽에 짓밟힐 것만 같았다.

“왜 그런 위험한 말을 타는 거지? 훨씬 덜 노력을 들여도 되는 다른 말도 있을 텐데 말이야.”

로키가 물었다.

토르가 스톰브레이커를 마구간 마당 밖으로 몰고 나가며 로키 쪽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스톰브레이커는 여전히 성질이 곤두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차분해 보였다.

“이 친구는 내 노력이 헛되지 않게 만들어 주거든. 성미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스톰브레이커보다 더 빠르고 영리한 말도 없어.”

토르가 로키 쪽으로 장난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것도 당신과 비슷한 점인 것 같군.”

로키는 토르가 자신을 무엇에 비교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로키는 우렁찬 소리가 나는 암말의 옆구리에 조심스럽게 발목을 두드려 보았다. 말이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벨은 너무나 온순하고 자기가 맡은 임무를 잘 알고 있었는지라, 로키가 딱히 더 해야 할 일은 없었다. 토르와 로키는 성 부지를 따라 말을 타고 거닐기 시작했다. 성을 둘러싸고 있는 마을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이른 아침의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다. 두 사람은 대황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말을 탔다.

아스가르드의 숲은 날 때부터 아름다운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꼭대기가 만년설로 뒤덮인 웅장한 산이 숲을 감싸고 있었으며, 산골짜기에는 소나무와 떡갈나무와 버드나무가 낙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수정처럼 맑은 물줄기가 흘러내렸고 이끼로 덮인 은신처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늦가을의 공기 냄새가 코를 찔러 왔고, 불타는 노을 같은 색을 띤 단풍잎들이 떨어져 내렸다. 로키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든 나무그늘 하나하나가, 그 아래서 잠이 들면 요정들이 마법 왕국으로 데리고 가 줄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당신이 요정의 존재를 믿는다면 말이다.

말을 타고 거니는 중 둘은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토르가 이따금씩 입을 열어 말 타는 기술이라든지 이 경치와 저 풍경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지만, 로키는 그저 냉담한 응답만을 줄 뿐이었다. 그 때마다 오딘슨은 잠깐 침묵에 빠져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또 한번 대화를 시도했다.

“어때?”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개울가에 이를 무렵 토르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춤 뿐만이 아니라, 말 타는 데도 천성적으로 소질이 있는 것 같은걸.”

스톰브레이커가 개울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벨도 별다른 부추김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아첨이 너무 과한 것 같다는 생각 안 들어?”

로키가 중얼거렸다. 로키는 앞뒤로 움직이고 흔들리는 안장 위에서 몸을 꼿꼿이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예의 바르게도 토르는 그 말에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하군. 우리가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날 이후로 남아있던 악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으면 했을 뿐이었어. 당신이 나와 함께 말을 타기로 한 걸로 미루어 보아, 당신도 나와 같은 감정일 줄 알았는데….”

로키가 그를 쏘아 보았다.

“잘못 생각했군.”

로키가 말했다.

“그런 감정 같은 건 없었어. 그냥 지루했을 뿐이야.”

토르의 얼굴에 구름 낀 분노가 잠시 떠올랐지만, 곧 희미한 미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토르가 머리를 가볍게 흔들자, 긴 머리카락이 산들바람에 퍼덕거렸다.

“잘 알아들었어, 왕세자. 우리 첫 시작이 조금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야. 그 중 일부는 내 잘못이야.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일부라고?”

로키가 쏘아 붙였다.

“지금 장난해? 우리 둘 중 죄수인 쪽이 누군데?”

토르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 둘 다 죄수의 처지라 할 수 있겠지. 당신은 문자 그대로 그러하고, 나는 내 누이의 술책 덕에 내 자신 집의 죄수가 되었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에겐 훨씬 더 공통점이 많아. 내 생각은 그래.”

로키가 콧방귀를 꼈다.

“그래, 당신과 내 처지가 비슷하고 말고. 정말로 당신의 하찮은 가족 싸움 따위를 내 비참한 상황와 비교하는 거야? 나는 모든 걸 잃었지만, 네겐 전리품이 주어졌잖아.”

그 말에 오딘슨의 얼굴이 붉게 달아 올랐다. 선의의 가면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난 당신을 내게 데려와 달라고 요청한 적 없어.”

오딘슨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오딘슨의 몸이 말 두 마리 사이의 간격을 좁히며 로키 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균형이 흐트러진 덕에 스톰브레이커가 불만스럽게 머리를 퍼덕였다.

“난 이걸 원한 적 없어. 매일이고 성의 가신들이 우르르 몰려와 네가 침대 위에서 어떻게 저항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요청해. 내 아버지는 나를 왕좌로 불러다가 내가 몇 번이고 널 강제로 가졌는지, 몇 번을 더 해야 네가 내 아이를 가져 배가 부풀어오르게 될지 물어봐. 그런 끔찍한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어주고 웃음을 보여야 하는 게 어떤 기분인 줄 알아? 널 유린한 강간범인 척 하며, 그런 쓰디쓴 말을 뽐내듯 늘어놓아야 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오딘슨이 다시 침묵에 빠져들었다. 입술을 안으로 꾹 만 채, 오딘슨은 몸을 돌렸다.

로키는 그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야수에게 일말의 연민조차 허락할 생각은 없었지만, 오딘슨의 이러한 격양된 감정이 계략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오딘슨은 진정으로 넌더리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야만인 역을 하기가 그렇게 괴롭다면 나와 역할을 바꾸지 그래.”

로키가 말했다.

“나는 내 적에게 잡혀온 포로이고, 너는 그저 네 종족의 역겨운 풍습을 견뎌야 할 입장일 뿐인걸.”

“내 국민에 대해 한 마디도 더 하지 마.”

오딘슨이 으르렁거렸다.

“내 누이가 생각하는 조악한 방식의 평화는, 내 국민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아, 그러시겠지! 널 포함한 네 왕국의 모든 다른 사람들은 무고하시다는 거지.”

로키가 사납게 받아쳤다.

“몇 세기 전 요툰헤임을 침공해 내 친족들을 살해하고 우리 종족을 피난처로 도피하도록 만들었던 것이, 네 누이 한 사람의 소행이었나 보군! 아참, 그 때 헬라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의 짓일까?”

로키는 골똘히 생각하는 모양을 흉내 내며 손가락으로 뺨을 긁었다.

“어쩌면 그 대학살의 현장은 그냥 꿈이었나 보군.”

토르가 스톰브레이커를 멈춰 세웠다. 로키의 말도 자신의 천성대로 그를 따라 멈췄다. 부조화스럽게 만개한 꽃과 아름다운 새들로 둘러싸인 숲길 한가운데서, 두 사람의 언쟁이 이어져 나갔다.

오딘슨의 입이 멍청한 황소처럼 멍하니 벌어져 열렸다.

“전쟁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런 옛날 옛적의 일을 내 탓으로 돌리려는 거야?”

로키의 피가 끓어올랐다.

“내 문간에서 그 전쟁이 벌여졌고, 그 전쟁 덕에 내가 지금 포로로 잡혀와 있는데 그게 옛날 옛적의 일이라고?”

“하지만….”

토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황금색의 땋은 머리가 옆으로 흩날렸다.

“왕세자, 우리 두 종족 간의 전쟁은 아스가르드의 잘못이 아니야. 당신도 그 사실 정도는 알겠지. 서리 거인이 우리와의 조약을 무시하고 미드가르드의 필멸자들을 잔인하게 침공한 것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쟁을 벌였을 뿐이야.”

“뭐라고!”

로키가 충격 어린 웃음을 뱉어냈다. 오딘슨이 그 웃음에 합류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로키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세상에, 매우 재밌는 정보인 걸! 정말로 우리 종족이 인간을 사냥하러 미드가르드에 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대체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하겠어?”

“나는 모르지!”

토르의 얼굴이 수염 밑에서 다시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잔혹성 때문에? 탐욕? 내 아버지 말로는….

“네 아버지는 자기 대군을 끌고 와 내 고향을 정당한 이유 없이 침략했어! 내 형제자매들을 살해했다고!”

“죽음은 양 진영 모두에게 닥쳤지. 전쟁이란 그런 것일 수밖에 없어.”

“아니, 오딘슨.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어. 침략이었지.”

로키는 바닥 쪽으로 삿대질을 하며 자신의 말을 강조해 보였다.

“머리를 좀 써 봐, 이 게으른 짐승아! 미드가르드를 보호하려는 것이 당신 종족의 목적이었다면, 왜 수비군을 그 곳에 배치하지 않았던 거지? 에시르 족은 우리 영토를 훔쳐 자신네들 소유로 삼으려 했어. 네 진영이 전사 몇 명을 잃었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도시를 통째로 잃었어. 가족들을 잃었고, 아이들을 잃었다고!”

심장으로부터 넘쳐 흘러 나온 불타오르는 분노가, 로키의 붉은색 눈을 눈물로 젖혀오기 시작했다.

“훈련 받지 않은, 무방비한 아이들을 말이야. 아스가르드의 사람이 아니라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건가?”

숲길 위로 투명한 침묵이 드리웠다. 토르가 입술을 벌린 채, 커다랗게 떠진 눈을 깜빡이지도 않으며 로키를 빤히 응시했다. 로키는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후 다시 숨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여서는 안 된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분명히 이러한 약점을 착취하려 할 것이다.

마침내 오딘슨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말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지금까지 있었던 중 최악의 악행이라 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군.”

“사실이야.”

로키의 붉은색 눈이 그 거짓 푸른색 눈을 마주했다.

“요툰헤임에 가서 길에 있는 아무나 붙잡고 한번 물어 봐. 다 똑 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걸.”

토르가 눈썹을 치켜들며 길 너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안타깝지만 요툰헤임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야.”

로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말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 없어. 어차피 네 아버지가 지금까지 쭉 숨겨왔던 역사를 네게 증명해 보일 길도 없으니. 원한다면 스스로 파헤쳐 봐.”

로키는 벨의 옆구리를 발꿈치로 툭툭 쳐,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다시 침묵한 채 말을 탔고, 이른 오후가 되었을 무렵 다시 성으로 돌아왔다. 헤임달이 성문 쪽에서 침착하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말 타는 것은 즐거우셨는지요?”

헤임달이 손을 뻗어 로키가 말에서 내려오는 것을 도우며 물었다.

토르나 말 두 마리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로키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욕을 하겠네.”

대답 대신 로키는 이렇게 말했다.

“이 더러운 기분을 씻어내야만 할 것 같아.”

“아, 그러시군요.”

헤임달이 머리를 꾸벅 숙이더니 로키가 자신의 방까지 향하는 길을 따랐다.

“준비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왕세자님.”

그날 밤, 뜨거운 물에 깨끗이 몸을 씻은 후 로키는 고운 리넨 가운으로 몸을 감싸고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로키는 무릎에 두 팔을 두른 채 헤임달이 붙여 준 벽난로 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 성취해 낸 것은 대체 무엇일까? 자신 포획자의 무지함에 격분하느라 바빠, 말 타는 기술을 배우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말의 등에 안장을 얹는 법을 배우지도 못했고, 도움 없이 말 위에 올라타는 법도 배우지 못했다. 어느 길로 가야 자유를 얻을 수 있는지도 당연히 살펴 보지 못했다. 그 대신 로키는 멍청하게도 하루를 꼬박 오딘슨에게 장광설을 늘어 놓고 자신의 분노로 스스로를 고문하며 보내 버렸다. 그 멍청이가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 듣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로키가 한 차례 더 눈물을 쏟아낼까 고민하고 있던 중,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토르가 복도의 노란색 횃불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아까 입었던 가죽 승마복 대신 토르는 부드러운 바지와 붉은색 튜닉을 입고 있었다. 로키는 가운 깃으로 목덜미를 감싸 목의 황금 고리를 숨겼다.

“원하는 게 뭐야?”

로키가 입을 열었다. 그 모든 증오심을 다시 한번 말로 뱉어 내기에 로키는 너무 지친 상태였다.

“네 밤재주를 펼쳐 보이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아니야?”

오딘슨이 딸깍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았다. 오딘슨이 문에 몸을 기대더니, 가슴 위로 팔짱을 꼈다.

“헤임달과 이야기를 나누었어.”

오딘슨이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말했다.

로키는 오딘슨이 말을 잇기를 기다렸지만, 더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로키가 재촉했다.

“그래서 뭐?”

토르가 로키의 눈을 마주했다. 그의 두 눈에 떠올라 있는 고통의 표정에, 로키는 의아함을 느꼈다.

“헤임달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군.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말이야. 모든 것을 목격했다고 했어.”

오딘슨이 말했다.

로키는 침대 위에 조금 더 똑바로 앉았다. 오늘 하루가 정말로 아무 성과 없이 지난 것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헤임달이…?”

“당신 말이 맞았어.”

토르가 눈을 깜빡이며 어두운 구석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당신이 말한 이야기 그대로였고, 그것보다 더 끔찍하더군. 내 아버지는 그동안 세월의 흐름과 거짓말로 그 모든 진실을 숨겨 왔어. 드러내기 수치스러운 진실을 파묻어 버렸고, 얼버무려 버렸지. 아스가르드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그 모든 일들은….

토르는 그 생각이 메스껍기라도 하듯 한 손으로 입을 감쌌다. 그의 하얀 피부가 잿빛 색깔을 띠고 있었다.

“위로의 말을 해 주기라도 바래?”

로키가 다시 한번 날을 세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야수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다.

“불쌍한 에시르 같으니. 이제서야 자기 왕국에 온통 흩뿌려진 피의 흔적을 보게 되다니.”

토르가 손을 내렸다.

“위로는 필요 없어.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깜빡이는 불에 그의 푸른색 두 눈이 빛났다.

“그 죄를 씻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러니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려 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맹세하지. 내 능력이 다시 돌아오고 내 누이가 패배하고 난 후, 요툰헤임에게 배상을 할 거야. 아스가르드의 행위를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선언하고, 다시는 우리 국민의 칼이 무고한 이들의 목에 겨눠지는 일이 없도록 약속할 거야. 내 모든 힘을 다해 이 일을 바로잡을 거야.”

토르가 말을 멈추더니 침을 삼켰다.

“내 말이 당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으리란 사실은 알아.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아직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군.”

로키는 오딘슨의 그 연설을, 오딘슨이 가진 모든 다른 결함들과 함께 저울질해 보았다. 로키의 머리가 빠르게 계산을 해 나갔다. 저 야만인의 말이 진실된 것이라 해도, 아무 것도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두 사람 모두가 거짓 역할극을 한다 해도 문제 없을 것이다.

“하루 더 말 타는 수업을 해 주는 건 어때.”

로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토르가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로키를 쳐다보았다.

“또 나와 함께 말을 타겠다고?”

로키는 얇은 가운을 걸친 어깨 한쪽을 으쓱해 보였다.

“기분 전환에는 좋은 것 같더군. 동행의 존재가 불쾌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당신도 이제 좀 상식 있는 동물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 같아서.”

로키가 턱을 오만하고 냉담하게 치켜 들었다.

“제대로 말을 타는 법을 가르쳐 줘. 네 자신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나긴 여정의 첫 발걸음이 될지도 모르지.”

오딘슨이 세 걸음만에 성큼성큼 로키의 침대까지 다가왔다. 로키는 그 자가 침대 위로 올라오기라도 할까봐 잠깐 걱정했지만, 오딘슨은 침대 발치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제 앞의 신자라도 된 것처럼, 오딘슨이 한 쪽 무릎을 굽혀 로키 앞에 꿇어 앉았다.

“왕세자, 내일 당신을 수행할 영예를 내게 허락해 준다면, 우리 나라가 제공해 줄 수 있는 최고의 것들을 당신에게 보여 주도록 하지.”

“여전히 아첨이 과하군.”

로키가 중얼거렸다.

“일어나. 그렇게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니 초조해진단 말이야.”

토르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힌 채 몸을 일으켰다.

“난 그저….

“알았어, 알았다고. 내일이라는 거지. 좋아.”

로키가 허공에 대고 손을 내저었다.

오딘슨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딘슨의 시선이 벽난로 앞 자기 자리 쪽으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당신 방을 침입하지 않도록 하지.”

오딘슨이 말했다.

“아버지께서 물어 보시면, 이미 충분히 네 몸 속에 씨를 심어 주었고, 이제 내 아이가 네 몸 속에서 자라는 동안 쉬게 놔 둬야 한다고 말씀 드리겠어.”

오딘슨은 여전히 그 속임수가 언짢은 듯 얼굴을 찌푸렸다.

로키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로키의 숙부가 언제나 해 주던 말이 무엇이었더라? 네 협력자를 늘 가까이 두고, 네 적들은 그것보다 더 가까이 두라. 이 야수가 또다른 속임수를 꾸미고 있는 거라면, 로키는 이 자를 계속 주시해야만 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로키가 오딘슨에게 일렀다.

“내가 아이를 뱄다고 말해 놓고는 마구간지기들 앞에서 내게 말을 태워 주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 사람들이 수근 댈 거라고. 당분간은 여기 머물러 있어. 우리 거짓말을 온전히 유지해아지.”

로키는 거위털을 채운 베개 하나를 돌바닥 위로 휙 던졌다.

“여기. 네 텅 빈 머리를 위한 거야.”

토르가 베개를 집어 들더니 가슴 쪽으로 끌어 안았다. 털이 수북한 그의 얼굴 위로 읽을 수 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고맙군, 왕세자. 진심이야. 내게는 분이 넘치는 일이군.”

“알면 다행이네. 이제 그만 잠이나 자.”

로키는 먼저 솔선수범해 이불 안으로 다리를 집어넣고는 옆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푹 자고, 좋은 밤 되길.”

토르가 딱딱한 바닥 위에 몸을 눕히며 말했다.

로키는 푹 잤고, 깊은 꿈을 꾸었다. 로키는 서거한 아스가르드 왕비의 꿈을 꾸었다. 요툰헤임의 차가운 바람을 받아 왕비의 비단결 같은 의복이 불룩하게 휘날렸다. 왕비의 속눈썹에는 눈꽃이 내려앉아 있었다.

“당신은 누구지?”

왕비가 울부짖는 바람 너머로 물었다.

“왜 나를 계속 찾는 것인가?”

“저도 그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싶군요, 마법의 여인이여.”

로키가 대답했다.


*    *    *





nal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2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토르로키/번역]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 (3/16)
#17
[토르로키/번역]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 (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