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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 (8/16)

토르로키 / Thorki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왕세자와 야수)"

by triedunture


원문: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5267873


  • 작가님께서 번역은 출처를 포함하여 자유롭게 하라고 명시하셨습니다. (https://i.imgur.com/r6PfDqx.jpg)
  • 에시르 토르x요툰 로키 정략결혼 AU입니다. 구전동화 느낌이 살짝 끼얹어진 작품으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화자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 로키를 비롯한 모든 요툰 종족은 인터섹스(자웅동체)라는 설정입니다. 엠프렉 언급이 있습니다.
  • 요툰헤임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고 누구나 아이를 밸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아버지라는 단어 대신 (주로 동물 번식에서) 누가 씨를 뿌렸고 누가 새끼를 배었는지 칭하는 단어인 dam/sire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단어들은 원문에서 사용한 의미와 가장 비슷한 단어인 '종빈/종모'로 번역합니다.



*    *    *



8장.


로키는 팔을 눈 위에 덮은 채 푹신한 침대에 드러누우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밤이었지만 졸리지는 않았다. 토르의 방에 강제로 갇혀 있는 덕에, 그리고 토르가 치유되어야 하는 덕에, 하루 종일 자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는지라 진짜 잠에 들어야 할 시간에는 잠이 오지 않았다.

점점 끔찍하게 따분해져 가고 있었다. 담소를 나누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가령, 로키는 토르가 헬라를 누이로 두고 자라났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는 이제 지겹도록 들었다. 토르가 처음으로 눈이 검게 멍들었다는 날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 떠오르자 로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축제에서 놀이를 하던 중 헬라가 (표면적으로는 사고로) 토르의 얼굴을 후려쳐 얻었다는 멍이었다. 그리고 토르 또한 로키가 몇 세기 동안 자기 형제들을 상대로 쳤던 장난 이야기는 이제 그만 듣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고 토르가 시간을 때운답시고 한 번만 더 그 놈의 수수께끼를 들려 주려 하면, 로키는 비명을 지르고 말 것이 틀림 없었다.

침대 스프링이 끼익대는 소리가 토르의 움직임을 알렸다. 최근 들어 힘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저 야만인은 침대 밖으로 조금씩 더 자주 나오고는 했다. 로키는 그 움직임을 무시하려 했지만, 벽난로 속 숯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가려 오는 그림자가 느껴졌다. 로키는 눈을 덮고 있던 팔을 치운 후 자기 몸 위에 존재감을 드리우고 서 있는 야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로키가 참을성 없이 물었다.

토르는 여전히 셔츠를 걸치지 않고 있었고, 가슴과 몸통은 온통 붕대로 덮여 있었다. 한 쪽 어깨에 걸쳐져 있는 붉은 망토만이 겨우 몸을 가려 주고 있었다. 토르의 입가에 조그만 미소가 떠 있었다.

“당신을 조금 덜 지루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일이 생각났어.”

토르가 말했다.

“함께 가지.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로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따분함 때문에 머리 속은 무거웠고 팔다리가 피로했다.

“이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네 아버지께서도 우리가 앞으로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더 침대 신세를 질 거라 생각하실 거라고.”

“아버지는 모르실 거야. 늦은 시간이잖아.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우리 뿐일 걸.”

토르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제발?”

한 순간이라도 더 이 숨막히는 방 안에 처박혀 있기 싫었기 때문에, 로키는 결국 수긍했다. 로키는 토르가 내민 손을 붙잡고 따라갔다. 토르는 성을 가로질러 로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버려진 홀을 따라 로키를 이끌고 갔다. 횃불의 불빛에 돌벽이 번쩍거렸고, 어깨 위로 늘어뜨려진 토르의 노란색 머리도 빛을 반사했다. 토르가 횃불 꽂이에서 횃불을 집어 들더니, 조명이 없고 먼지가 두텁게 쌓여 있는 복도로 길을 인도했다.

“여기가 어디야?”

앞에 드리워져 있는 거미줄을 걷어내며 로키가 물었다.

“성 서쪽 건물이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이후로는 거의 쓰인 적이 없는 공간이지.”

토르가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로키는 왜인지 묻지 않았다. 로키가 눈을 돌리는 곳마다 그 위대한 여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얀색 천으로 덮여 있는 미술품들, 벽에 뚜렷이 대비되어 보이는 유령 같은 액자 틀, 먼지 아래 희미해져 가고 있는 거대한 벽화와 모자이크 작품들, 기둥 위에 새겨진 정교한 금 세공, 바니르 식 대문들. 이 장소는 한 때 프리가의 영역임이 틀림 없었다. 토르는 자신을 왜 여기 데려온 걸까?

“도착했어.”

토르가 말했다. 쇠가 덧대어진 거대한 오크나무 이중문 앞에 선 채, 토르는 로키의 손을 놓아 주고 앞 쪽으로 손짓을 해 보였다.

“어서. 문 열어 봐.”

로키는 그 야만인의 환한 미소를 불신하는 듯 잠시간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무시무시한 게 튀어 나와서 나한테 달려 드는 거야?”

토르가 사람 좋게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뻗어 자기가 직접 문을 열었다. 토르가 몸을 가까이 기울여 오자 토르의 체취가 로키에게로 밀려 들어왔다. 문이 거칠게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먼저 들어가지, 왕세자.”

토르가 허리를 꾸벅 숙여 보이며 로키를 안으로 인도했다.

로키는 자신을 반겨 오는 풍경에 눈을 커다랗게 치켜 떴다. 토르가 들고있는 횃불이 춤을 추며 방 안에 있는 것들을 적당한 빛으로 비추어 주고 있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우뚝 솟아 방 안으로 온통 뻗어 나가는 책장들, 황금색 글자가 각각 눈부시게 아로새겨진 갖가지 크기와 색깔의 책, 책, 책들…

로키의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서재야?”

로키가 숨을 들이키며 물었다.

“어머니의 서재였어.”

토르가 조용히 대답했다.

“내 생각엔 이제 당신 것이 되어야 할 것 같군.”

로키는 멍한 기분으로 서재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주위를 열심히 둘러 보았다. 요툰스타드의 왕실 도서관조차 무색할 만한 장소였다. 몇 백 개, 아니 몇 천 개의 책들이 이 휑뎅그렁한 동굴 같은 방에 보관되어 있었다. 한 세기를 꼬박 책만 읽으며 보내도 여전히 읽을 게 잔뜩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로키는 가장 가까이 있는 책을 잡아 빼 책등에 새겨진 제목을 읽어 보았다. 난쟁이 금속 공예의 역사! 반대편에 있는 책장에는…노래와 시집들! 로키는 탐욕스럽게 이 책 저 책,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그러 모으기 시작했고, 책 한 무더기를 팔 안에 위태롭게 안아 들었다.

눈물을 쏟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로키는 지금까지 한 번도 기쁨에 넘쳐 울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삶 내내 너무도 제한적으로만 누려 왔던 감정이 마음 속에서 넘쳐나는 것을 느끼는 것은, 꽤 묘한 기분이었다. 그 감정이 터져 나오도록 주선한 것이 오딘슨이라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팔 안에 쌓인 책 더미를 위태위태하게 붙든 채 로키는 몸을 돌려 토르를 마주했다. 토르는 여전히 횃불을 치켜든 채 문간에 서 있었다. 그 야수 같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더 일찍 이야기해 주려 했는데.”

토르가 말했다.

“하지만 그동안 책이 망가지지는 않았을 지, 애초에 책이 남아 있기는 할지 확신이 안 서더군. 그래서 헤임달을 보내 이 곳을 확인해 보라고 시켰어. 헤임달이 자신이 판단한 바로는 약간 먼지가 쌓여 있는 것 외에는 멀쩡하다고 알려 주더군. 아, 먼지는 미안하게 됐어. 헤임달이 청소를 해 줄 시간은 없었거든.”

“괜찮아.”

로키가 불쑥 대답했다.

“먼지 조금 있는 것 정도야, 여기 있는 것에 비하면….”

로키의 눈이 게걸스럽게 서고를 따라 훑었다. 울지 않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느라 몸이 부르르 떨려 왔지만, 로키는 스스로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토르가 방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이 틀림 없어 보이는 횃불 꽂이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당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둘러 보도록 해.”

토르가 불을 밝히며 이렇게 일렀다. 불길을 나누기 위해 손에 들고 있는 횃불을 들어올려도, 이제 토르는 몸을 움찔하지 않았다. 이제 정말로 거의 다 치유된 것이 틀림 없었다. 불을 모두 밝히고 나자 서재 내부에 원기가 돌기 시작했다.

“볼 게 많을 거야. 어머니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고 수집하신 책도 아주 방대하지.”

“에시르들은 책을 보관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로키가 말했다. 믿기지 않는 기분이 여전히 황홀감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에시르가 아니셨지.”

어머니의 기억을 떠올리는 토르의 미소가 더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으셨어.”

토르는 빈 횃불 꽂이에 들고 있던 횃불을 꽂았다. 그의 손가락이 그 위에 잠시 머물렀다. 거의 속삭임 같은 목소리로, 토르가 속삭였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정말로.”

로키는 하마터면 자신이 어제 꾼 꿈과, 왕비의 유령이 자신에게 해 줬던 말을 죄다 이야기해 줄 뻔 했다. 돌바닥 위에 쏟아져 버린 와인처럼, 모든 비밀을 다 털어놓아 버릴 뻔 했다. 하지만 로키는 잠자코 있었다. 알맞은 시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런 주장을 내 놓기 전에 먼저 소환술을 시도해 보아야 했다. 어쩌면 깨어 있는 세상에서 프리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프리가를 감옥에서 구출해내 줄 수 있을 단서를, 이 서재 안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팔에 안고 있는 책 더미가 점점 무거워져 가고 있었기에, 로키는 턱으로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만 손 좀 빌려줄 수 있어?”

토르가 얼른 달려오더니 로키의 짐을 조금 덜어 주었다.

“책을 그렇게 팔 안에다 쌓아 놓을 필요는 없다는 건 알고 있지?”

책을 들어올리며 토르가 끙 소리를 냈다.

“원하면 언제든 여기 와도 돼. 책을 가져가도 되고. 이제 이 서재는 당신 거야, 로키.”

토르가 온화하게 웃어 보였다.

정교한 가죽 책등을 쓸어 내리던 로키의 손가락이 멈췄다. 로키가 눈을 크게 뜬 채 토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말?”

로키는 자기 표정을 숨기기 위해 다시 책장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얼굴이 너무 달아올라 있을까 봐 걱정스러웠다.

“알았어. 그러면 자제력을 좀 키우도록 노력해 보지.”

토르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러지 않아도 돼. 자제력은 다 내려 놔.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라는 뜻이었어.”

토르는 자기가 맡은 책 더미를 들고, 방 한쪽 구석에 먼지 쌓인 커다란 쿠션들이 우아하게 쌓여 있는 장소로 갔다.

“이 곳이 조명이 좋아. 어머니께서는 이 곳에서 책을 즐겨 읽으셨지.”

토르는 조그맣고 낮은 테이블 위에 책을 내려 놓은 후 쿠션에서 먼지를 털어 내기 시작했다.

로키는 토르의 모습을 잠시간 바라보고 있다가, 들고 있는 책 더미 가장 위에 놓여 있는 책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돌려 제목을 읽었다. 거인의 얼어붙은 땅으로부터 온 특보. 로키의 숨이 탁 막혔다. 향수병이 환한 열기를 띠며 그를 압도해 왔다.

“네 지금 회복 단계에서는 조금 늦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로키가 몸을 똑바로 세우며 말했다.

“지금 책을 읽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원한다면 말이야.”

토르의 기묘한 푸른 눈이 빛을 발했다.

“물론이지. 나는….

토르가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준다면 정말 좋겠군.”

둘은 살짝 퀴퀴한 냄새가 나는 쿠션 위에 자리를 잡았다. 로키는 구석에 등을 딱 맞추어 기대 앉았고, 토르가 그 옆에 앉았다. 거리가 가까워서 두 사람의 팔이 서로 스쳐 왔다. 접촉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더 떨어져 앉을 수도 있었지만, 로키는 책을 읽는 게 더 중요할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더군다나 방 안이 조금 싸늘했는지라 토르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나쁘지는 않았다.

로키는 다리 위에 특보 책을 펼쳐 열었다. 책이 강렬한 황금빛과 서리 같은 푸른색으로 빛나는 것을 발견하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표지 삽화에는 떠오르는 햇빛 아래 빛을 발하는 요툰헤임의 모습과, 위풍당당하게 선 채 해를 마주하고 있는 상체를 벗은 요툰 전사가 그려져 있었다. 로키는 손가락으로 그 삽화의 모양을 따라 훑어 보았다.

“아름다워.”

로키가 중얼거렸다.

토르가 로키의 어깨 너머로 책을 들여다 보았다. 로키의 귀에 닿아 오는 그의 숨결이 따스했다. 토르가 약간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종족의 사람이 쓴 책이로군.”

토르는 책 위에 쓰여 있는 에시르 이름을 가리켰다. 난의 아들, 프리드료프.

“다른 책을 읽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어. 이 책은…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모욕을 담고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로키는 토르의 손을 쳐 냈다.

“싫어. 이걸로 읽을 거야.”

로키의 호기심은 늘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고는 했다. 이 책이 토르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글쎄다, 꿀케이크에 얹혀 있는 설탕 장식이라고나 해야 할까. 로키는 책을 넘긴 후 목을 살짝 가다듬고 나서, 크게 소리내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새해의 두 번째 날이다. 이 얼음 세계에서 시간이라는 것은 지나가는 줄도 모르게 흘러간다. 프레이 호는 반짝거리는 별과, 유령처럼 신비롭게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녹색 빛에 비취어 희미한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다. 밝은 밤하늘에 대비되어 프레이 호의 삭구가 어두침침한 모습을 띠고 있고, 이 왕국의 장엄한 모습 앞에서도 의연해 보인다. 이런 땅에 서 있자니, 초자연적인 힘이 이 땅 위에 드리운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우리가 언젠가는 잔인한 전투에서 마주해야 할 북극의 요툰인들(서리 거인들)이, 언제고 산마루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두렵지 않다. 우리는 나무딸기술을 마시며 보르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한다.”

“보르는 내 할아버지였지.”

토르가 중얼거렸다.

“고대에 아스가르드를 다스리던 분이셨어.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시절에.”

“그래서 이 프리드료프라는 자가 겨울 한중간에 요툰헤임으로 여행할 수 있었던 거로군. 그 때는 전쟁 중이 아니었으니까.”

로키가 말했다. 로키는 토르 쪽을 쳐다보았다. 토르의 얼굴은 횃불의 불빛 아래 분홍색을 띠고 있었고, 머리카락이 윤기 나는 황금색으로 빛났다.

“계속 할까?”

토르가 벽에 머리를 기댄 후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그래.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인 걸. 당신의 고향은 아주 멋진 곳 같이 들려.”

자부심이 로키의 등줄기를 따라 흘러 지나갔다.

“멋진 곳이고 말고. 이 사람이 요툰헤임의 아침 햇살을 묘사한 방식이…. 내가 얼마나 그 풍경을 그리워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나도 언젠가 한 번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군.”

토르가 말했다. 로키의 얼굴을 향한 그의 시선이 진심 어린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로키의 입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토르의 농담은 가끔씩 너무도 이상했다.

“그래, 어쩌면 언젠가 들판 돼지들이 하늘을 날아 다닐지도 모르지! 헛소리 다 했으면 이제 계속 읽어 보도록 할까?”

로키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리는 바람에, 토르의 눈썹이 실망감으로 찌푸려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저자가 얼음 지대를 여행하는 이야기를 로키는 소리 내어 읽었다. 어느 시점에 프레이 호가 해안 가까이의 진탕에 처박혀 버렸고, 겨울 폭풍이 다가 오고 있었기에 선원들은 바다에 잠겨 버리지 않을까 절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여기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만이 적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믿을 수가 없을 만큼 매우 기묘한 방식으로, 우리는 구조를 받았다. 폭풍 너머의 얼어붙은 황무지로부터 요툰 한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나무 만큼이나 키가 컸고 털이 덥수룩한 늑대 가죽을 걸치고 있었으며, 하얀 서리로 뒤덮여 있었다. 요툰인들이 손짓과 신호를 보내 가며 갑판 위에서 경계하고 있던 나를 불렀다. 요툰인들은 우리를 곤경에서 구해 주고 싶을 뿐이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다가오고 있는 눈폭풍에 대한 두려움이 이 낯선 이들에 대한 불신을 이겨 버리고 말았고, 나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선박의 밧줄을 던져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요툰인들은 힘을 한 데 뭉쳐 프레이 호를 그 감옥에서 구출해 주었고, 숨겨진 조그만 만에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안을 따라 프레이 호를 끌고 갔다. 우리는 그 곳에서 요툰인들과 함께 휘몰아치는 바람과 눈보라를 피했다. 우리는 그 요툰인들의 이름을 배웠다. 음악소리 같이 우아한 이름이었다. 르빈디, 륄미드, 르퓔림. 마침내 눈폭풍이 지나갔을 때, 우리는 가지고 온 캐러웨이 증류주를 요툰인들과 나누었다. 내가 어린 시절 처음 그걸 맛보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요툰인들도 처음에는 내켜 하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그 음료에 맛을 들였다. 따뜻한 날씨 아래 다른 선원들은 모두 갑판 밑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고 있었지만, 나와 르빈디는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우리가 지내던 아늑한 동굴 입구에 앉은 채, 우리 두 사람은 우아한 요툰의 달빛이 밤하늘 위에다 달무리를 만드는 풍경을 지켜 보았다. 나는 우리 사람들이 처음 이 나라에 도착했을 때 요툰인들과 전투를 벌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르빈디에게 털어 놓았다. 내가 그들 종족을 전사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말하자, 르빈디가 다시 내 잔을 채워 주며,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친구라 여길 수 있겠다고 대답해 주었다.”

로키가 읽은 마지막 문장이 점차 고요해져 속삭임으로 끝을 맺었다. 로키는 잠깐 말을 멈췄다. 로키 곁에서 토르의 몸이 묵직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그의 시선이 로키에게 무겁게 내리 앉아 있었다.

“이야기가 더 있나?”

토르가 마침내 무거운 침묵을 뚫고 입을 열었다.

“부디, 계속 읽어 줘.”

로키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다시 가다듬은 후, 계속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둘은 몇 시간 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로키의 목소리가 프리드료프와 르빈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누벼 나갔고, 토르는 로키의 곁에 단단히 밀착한 채 골똘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모험 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위험한 해협의 탐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전투. 수정 과실들이 열리는 나무가 자라는 명성 높은 플룬트 숲을 본 것. 사냥을 하던 중에 르빈디가 빌지스나입의 뿔에 들이 받혔던 것 (토르는 여기서 헉 소리를 냈다). 프리드료프가 재빨리 치유 약초를 발라 주어 르빈디의 목숨을 구해 준 것.

그 거대한 서리 거인을 혼자서 프레이 호까지 데리고 갈 수가 없었던 프리드료프는, 그 곳 황무지 속에서 르빈디와 함께 머무르며 그의 상처를 돌보아 주었다.

“…르빈디가 제발 날 여기 놓아 두고 가라고 간청했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가 둘 다 이 숲을 떠나거나, 아니면 둘 다 여기서 죽을 때까지, 나는 여기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쓰는 내 손이 추위로 감각을 잃어 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르빈디의 목숨이 무사하지 못하다면 내 자신의 목숨도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르빈디처럼 용감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장은 거기서 끝을 맺었다. 로키는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페이지를 넘기면 그 완벽한 주문이 깨져 버릴까 봐 두려웠다.

“정말로 놀라운 일이군. 에시르와 요툰이 서로를 동료로 삼아 함께 여정길에 오르다니.”

토르가 말했다.

“그래.”

로키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아주 놀라워.”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각각 생각에 잠긴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혹시….”

“두 사람이….”

둘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

“미안하군. 이야기해 봐.”

토르가 말했다.

“아니, 아니야.”

자기 머리 속에 떠올랐던 멍청한 생각이 입 밖에 나오기 전에 끊긴 것에 안도하며, 로키가 말했다. (터무니없기는 했지만, 로키는 혹시라도 이 에시르 선장과 거인 르빈디가 연인이 아닐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물론 생각만으로도 너무 괴상한 일임이 틀림 없었다.)

“당신 먼저 이야기 해. 무슨 말 하려고 했어?”

“그저…이 이야기가 약간 로맨틱하게 들린다고 생각한 게 나 뿐인지 궁금했어.”

토르가 기침을 하며, 헤어져 가고 있는 붉은 망토깃을 손으로 비틀었다.

“프리드료프가 자기 동료에 대해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보면…애정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군. 혹은…사랑일지도?”

로키는 자신 또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듯, 그 말을 일축해 버렸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마. 그 시절에는 모두들 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어. 미사여구를 섞어 감정적으로 글을 썼지. 끔찍하지 않아?”

로키가 부드러운 탁 소리를 내며 책을 닫았다.

“게다가 이 바보 두 사람은 그다지 어울리는 짝은 아니었을 거야. 두 사람 신체 차이를 생각해 보면, 비극으로 끝났을 게 틀림 없어.”

“하지만 만에 하나 몸 크기의 문제가 없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로키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으로 신체 차이를 없애 준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또다른 상황에서라도….”

토르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로키는 골똘히 생각을 해 보았다.

“뭐, 가능한 일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엄청난 추문이 될 게 틀림 없을 테니. 상상조차 안 되는군.”

로키는 손가락 끝으로 표지 위에 양각으로 새긴 제목을 훑어 보았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너무 늦은 시간인 동시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먼지 쌓인 창문 가장자리로 황금색 첫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밤을 꼬박 새워 이야기를 읽었던 것이다.

“방으로 돌아 가야겠어.”

로키가 말했다.

“해가 뜨고 있어.”

로키가 앉아 있던 쿠션 위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을 때, 토르의 손이 그의 팔에 와 닿았다. 팔을 쥔 것은 아니고 그저 가벼운 접촉이었지만, 로키의 움직임을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왜?”

로키가 물었다.

땅에 붙박여 있는 시선을 들지 않은 채, 토르가 이른 새벽녘의 목소리로 말했다.

“프리드료프와 르빈디의 이야기…. 이런 우정이 우리의 시대에도 가능할 거라 생각해?”

“요툰과 에시르 사이에?”

로키가 성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이 가득 찬 방 안에서 머릿수를 세다가,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을 깜빡해 본 적이 있는가? 로키가 저지른 실수도 그것과 비슷했다. 토르의 질문이 그저 순수한 가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로키는 자기 형제나 숙부가 자기 주적 종족과 감히 악수를 나누는 장면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친밀한 유대감을 형성하기는 커녕 말이다. 로키가 상상한 것도 딱 거기까지였다.

“안 되지, 오딘슨. 우리 선조들의 시대에는 가능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은? 그 참사와 깨트려진 신뢰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요툰인은 그 일을 결코 지난 일로 넘겨 버릴 수 없을 걸.”

토르의 손이 다시 떨어졌다.

“그래.”

토르가 고개를 돌렸다. 햇빛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려 그랬을 것이라, 로키는 생각했다.

“그래, 당신 말이 맞아. 그렇겠지.”

토르가 코 밑에 손날을 가져다 대더니 훌쩍 하는 소리를 냈다.

로키가 걱정을 띤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감기 걸린 건 아니지?”

“뭐? 아니야.”

토르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알지. 다친 것에 더해 감기나 열병에 걸려서 죽어 버리기라도 하면, 네 최후에 대해 네 아버지께 설명할 길이 없거든.”

로키가 엄하게 일렀다.

토르가 마침내 고개를 돌리더니, 장난꾸러기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로키를 바라 보았다. 눈이 살짝 빨갰다. 아마 밤을 샌 덕분일 것이다.

“당신이 발정기를 겪는 중에 날 복상사 시켜 버렸다고 말씀 드리면 되지.”

토르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소리 안 할 거야!”

로키가 소리를 지르며 토르의 노란 머리 위로 두꺼운 책을 치켜 들었다. 토르가 방어의 태세를 취하듯 두 손을 번쩍 올려 보였다.

“넌더리나는 야만인. 못된 야수 같으니. 얼른 일어나. 시종들이 와서 부산스럽게 굴기 전에 얼른 방으로 돌아 가야지.”

팔 안쪽에 책을 끼워 넣으며 로키는 토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토르가 그 손을 붙잡았다. 여전히 토르의 얼굴 위에는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로키의 눈에 그 미소가 뭔가 묘해 보였다. 피곤해서 그럴 것이다. 아니면 어머니에 대한 가슴 아픈 기억 때문이든지. 토르는 더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이 보였다. 두 사람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토르는 그것이 고통스럽기라도 한 듯 이를 꽉 악다물었다.

“나중에 나머지 이야기를 읽어 줄 수 있어?”

토르가 중얼거렸다.

“아마도. 네가 착하게 굴면.”

로키가 대답했다. 떠나는 길에 로키는 바닥에서 책 몇 권을 더 집어 들었다. 토르의 방에서 감금되어 있어야 하는 앞으로의 며칠 동안 동료 삼아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로키는 흥분감에 빠져들어 혼자 속으로 행복하게 흥얼거리고 있느라, 토르가 자신을 쳐다보는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열망으로 차오른 채, 희망이라고는 모조리 박탈된 그 표정을.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로키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에 피가 끓어오른다면, 부디 이해해 주도록 노력해 보라.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왕세자가 알아차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자신이 그런 감정의 대상이 되리라 생각해 본 적조차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랑 받지 못하고 지낸 것은 여러가지 차원에서 그 잔혹성을 드러내는데, 이것 또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 왕자의 사저로 돌아갔고, 다시 한 번 방 안에 감금되었다. 토르는 말 한마디 없이 바로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벽 같이 거대한 토르의 뒷모습이 깨어 있는 세상과 등을 지고 있었다. 로키는 그런 토르를 무시한 채, 자기 책 더미를 창문턱 위에 보기 좋은 모양으로 정리하며 들뜬 몇 분을 보냈다. 책이 꽂힌 모습에 흡족한 기분을 느낄 때가 되어서야 로키는 자기 간이 침대로 돌아갔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로키는 조용한 속삭임 소리에 깨어났다. 헤임달이 그 유령 같은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와 있었고, 오딘슨과 숨 죽인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로키는 눈을 감은 채 고르게 숨을 쉬며, 귀를 쫑긋 기울여 말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왕자님, 시기가 정말로 가까워 왔습니다.”

헤임달이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들여 지속하신다면, 분명히 왕자님의 능력이 돌아오실 게 틀림없을 겁니다.”

“아니,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네.”

토르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 계획은 여기서 끝이야. 다른 방법을 찾아 보도록 하지.”

“다른 방법이라뇨…! 왕자 저하. 다른 방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로키는 그 자리에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헬라를 무찌르는 그 계획 말인가? 어떤 방식에서인지 로키가 엮여 있는 그 계획? 그 계획이 이제 없는 일이 될 것이란 소리처럼 들렸다.

“다른 선택지가 분명히 있을 거야. 로키를 이 일에 더 이상 관여 시키고 싶지 않아.”

로키의 위장 깊숙한 곳에서 돌덩이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배제시킬 거라고? 오딘슨의 계획에 로키가 아무 소용 없게 된다면, 로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는 거지? 이제 자신에게는 정말로 아무 동료도 없게 되는 것일까? 이제야 왜 토르가 그 서재를 선물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 쪽 구석으로 쫓겨 났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로키의 머리속이 소용돌이를 쳤다. 로키는 이 모든 계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옆에 버려진 채, 실패한 평화 조약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토르의 환심을 살 수만 있다면….

하지만 대체 로키가 이 에시르 왕자에게 다른 누구도 줄 수 없는 것 무엇을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로키는 자신이 그 야만인에게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지를 고심하느라, 두 사람의 나머지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냥 소리 죽인 소음으로 귀에 와 닿기는 했지만 머리 속에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헤임달이 불만스럽게 혀를 쯧 찼다.

“우리가 처음 계획을 구상했을 때는 그런 죄책감 같은 것은 없으셨지 않습니까, 왕자님. 그 때로부터 바뀐 것이 뭐가 있다고요?”

너무 깊이 생각에 잠긴 나머지 로키는 그 말 뒤에 따르는 무거운 침묵을 눈치채지 못했다. 로키가 만일 눈을 떴더라면, 토르가 황금색 머리카락을 얼굴 위로 드리운 채 수치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

헤임달이 잠시 후 숨을 들이마셨다.

“설마, 토르. 설마요.”

“그러려는 의도는 없었어.”

토르의 목소리가 비통으로 갈라졌다.

“내가 그럴 자격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얼마나 희망 없는 일인지도 알고 있어.”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로키가 이해했을까? 그 뜻을 알아챘을까? 물론 아니다. 로키는 자기 계획을 생각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로키의 생각은 계속 한 곳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프리가 왕비가 부탁했던 대로, 그녀의 유령을 깨어 있는 세상으로 불러 와야 했다. 왕자의 어머니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내 놓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토르의 호의를 사 자기 위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우리 왕자님.”

헤임달이 침대 가장자리에 앉자 매트리스가 끼익대는 소리를 냈다. 로키가 닫힌 눈꺼풀 뒤에서 그 장면을 떠올려 볼 여유가 있었더라면, 왕자의 신하가 왕자의 어깨 위에 위로하는 손길을 올려놓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이 조금 더 복잡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아주 포기해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왕세자님께서도….”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소용 없는 일이야.”

토르가 중얼거렸다.

“설사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내 양심이 그러기를 허하지 않아. 이 저주를 풀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겠네. 나 혼자서 말이야.”

로키는 더 이상 듣고 있지 않았다. 로키는 마음 속으로 소환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목록들을 작성하고 있었다. 마력 없이도 적절한 재료만 갖춰진다면, 요령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소환술이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약초들과, 중요한 결정체 조각과, 그리고 적절한 시기만 보장되면…. 보름날이어야 할까, 혹은 그믐달? 별자리표를 확인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정말로 확실하신 겁니까? 두 분이 이야기 나누시는 것을 듣고 있다 보면, 성공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는데 말이지요….”

헤임달이 고집했다.

토르의 목소리는 꽉 죄어든 속삭임이 되어 나왔고, 로키가 제대로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을 것이다.

“자네가 잘못 봤어. 난 왕세자에게 그 어떤 존재도 아니야. 그래야 마땅하겠지만.”

그 어떤 말도 로키의 마음을 감싸고 있는 안개를 궤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머지않아, 오딘슨도 로키를 반드시 필요한 동료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로키는 생각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저 야수를 슬쩍 찔러 주기만 하면 될 것이다. 로키는 마침내 자신에게도 계획이 생겼고, 그 계획에 착수할 의지력 또한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잠에 천천히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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