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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1/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현생이 폭풍같이 밀려와...번역은 천천히 진행될 예정입니다 아마도...ㅠㅠ 혹시 업뎃이 늦는대도 양해 부탁드려요




*    *    *


이제 질문이 네게 내리운다, 내 친구여

시작이 없는 것에는 끝도 없으니

우리는 과연 배울 수 있을까, 세상은 여전히 돌고 있는가,

이 순환은 다시 시작하게 될까?

<Blackmore's Night - The Circle>



1장. '선물'



사람들은 등 뒤에서 그를 ‘천둥 군주’ (혹은 ‘천둥의 신’이라는 마땅한 이름) 대신 ‘천둥 성깔의 군주’라고 불렀다. 그 또한 그 별칭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행복하지 못했다. 사실은 몇 세기 동안이나 그랬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 점을 숨길 만한 인내심도 이유도 없었다.

토르 오딘슨은 저주를 받았다.

그 저주가 그의 불행의 원인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 자체로서는 말이다.

그리고 토르는 조금 기분이 나을 때면 그것을 저주라고 부르지 않았다.

토르는 대회당의 왕좌에 앉아, 예를 표하기 위해 끊임없이 밀려오는 방문객들과 외교관들을 맞았다. 그들 중 아무도 토르가 그들의 왕국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으며, 그럴 의지도 있고, 어느 정도는 그럴 마음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토르 오딘슨은 22번째 삶을 사는 중이었다. 우주는 21번 재탄생했고, 토르는 바로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토르가 자신의 동생 로키를 사랑하고 그와 싸워온 것도 이제 횟수로 21번째였다.

사실 로키가 늘 토르의 동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떨 때는 매력 넘치는 요툰의 왕자로 등장하기도 했던 그는, 상처 어리고 단련된 영혼으로서 언제고 토르를 싸움에 끌어들이거나 혹은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끔은 토르가 기억하는 가장 첫 번째 삶에서 그랬듯이,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나기도 했다. 둘의 반목은 클 때도 작을 때도 있었다. 어떨 때는 두 사람은 나이가 들어 죽었고, 어떨 때는 서로를 살해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두 사람의 접촉이 형제애의 그것으로 남을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둘의 신체가 허락하는 순간부터 몸을 섞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 동안 토르는 그 모든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토르 혼자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삶은…토르는 벌써 몇 세기를 살았지만 아직도 로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우주가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 하나를 결핍하고 있는 듯 했고, 토르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알프헤임에서 온 대규모 사절단이 이제 막 그들의 전언을 마치려 하고 있었다. 토르의 왕좌 발치에는 선물 더미가 남겨졌다. 토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토르 오딘슨은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강한 왕이었다.

그는 이미 최고가 되기 위한 충분한 경험을 겪었다.

매 삶마다 각성의 순간이 바로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짐이었을 것이다. 매 삶의 자세한 내용들, 모든 순간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의 기억이 그렇듯이 그의 기억도 금방 소멸해 버리는 성격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결국에는 그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언제나 기억했다.

왕좌로 향하는 길이 다시 한번 비워졌고, 요툰헤임에서 온 사절단의 도착이 알려졌다. 토르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토르가 샅샅이 수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요툰헤임에는 로키 왕자라는 사람은 없었다. 

아스가르드는 토르의 영민한 통치 하에 있는 다른 모든 왕국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토르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가차 없는 효율성으로 그것을 일구어 냈다. 가끔 그의 여러 삶 속에서 변화하는 인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쌍할 정도로 예측 가능한 상태로 남았고 토르는 그것을 기꺼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 그리고 토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로키의 곁에서 간소하고 느린 삶을 영위할 시간을 몇 십년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라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번 삶에는 로키가 없었고, 토르는 그저 모두의 두려움을 사는 절대 군주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얻었지만 그 중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왕이었다.

거대한 몸집을 한 인물이 등장해 홀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토르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불쾌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요툰헤임은…변덕스러웠다. 로키가 자신의 친부모에게 길러진 삶을 맞을 때마다 토르는 어떤 전개를 예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은 그를 분노하게 만드는 방향이기는 했다.

요툰헤임에는 새로운 통치자가 등극했다. 이번은 토르가 헬블린디를 한낱 왕자가 아닌 왕으로서 만나게 되는 첫 순간이었다. 로키의 친부모인 파르바우티와 라우페이는 이미 죽었다. 헬블린디가 대동한 사절단은 거대했다. 모두의 키를 훌쩍 넘어서는 체격에서도 그랬지만, 숫자 또한 많았다.

“토르 왕이시여.”

헬블린디가 파리를 쫓는 움직임이라 해도 될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드립니다. 초대에 감사하는 바입니다.”

헬블린디가 말을 멈추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 보았다. 토르가 몸을 똑바로 폈다. 그의 본능이 요툰헤임의 이번 방문이 그저 형식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모든 왕국들은 아스가르드의 자애로운 보호 아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헬블린디가 말을 이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조용한 웅성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뛰어난 외교관이 아니더라도, 헬블린디의 그런 선언에 미묘한 비꼼이 숨어들어가 있음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 친선을 확실하게 표하기 위해 아스가르드의 왕에게 어떤 것을 드려야 할지 스스로 고민을 많이 했고, 선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손수 감독했습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방 안에 감도는 긴장감이 이제 손으로 만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토르는 엄중하게 눈썹을 찌푸린 채 헬블린디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선물은 모욕의 표시일 것이다. 토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해야 할 질문은 그 모욕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 될 것이냐였다. 그 모욕 행위가 정말로 도를 넘는다면, 토르는 이 대회당 한가운데에서 외교 행사 중에 공격을 취해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그렇게 하게 된다면 전쟁을 일으켜 이번 순번의 비참한 삶을 끝내 버릴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헬블린디가 손짓을 하자 거대한 서리거인들이 옆으로 물러나 길을 내 주었다. 그 사이에서 드러난 조그만 형상에 토르의 생각은 멈춰 버렸다.


로키.


제대로 쳐다보기도 전에 토르는 그것이 로키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요툰헤임의 왕자였던 것이 맞구나. 토르의 머리속이 팽팽 돌아갔다. 하지만 어떻게—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로키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으며 머리를 숙였다. 토르의 뱃속이 메스꺼워졌다.

“왕의 기쁨을 위한 노예를 바칩니다. 모든 종류의 기술을 훈련한 아이죠.”

헬블린디가 우쭐한 목소리를 감추려 애쓰지도 않은 채 말했다.

헬블린디는 그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손짓을 해 보이자 로키가 부드럽게 무릎을 꿇었다. 그는 완전히 나체였고, 은여우의 털로 만들어진 장신구만을 손목과 발목에 차고 있었다. 혹은…족쇄일지도 몰랐다. 토르는 로키의 주눅든 모습으로부터 눈을 겨우 뗀 후 헬블린디를 응시했다.

아스가르드에는 노예가 없었다. 사실 토르는 몇 세기 전 스바르탈프헤임에서 노예 제도를 몰아내기 위해 힘썼던 적도 있었다. 그 부분에서 모욕을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하고 토르는 생각했다. 로키가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지, 왕자로 태어났다가 배반당하고 말았던 건지는 토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내고 말 터였다.

“고맙네. 당신 동포 중 한 명을 내 사람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해 주다니 기쁠 따름이네.”

토르가 ‘고용’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헬블린디가 미묘하게 비웃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발로 로키를 툭 밀었다. 로키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로키는 여전히 머리를 숙인 채 발로 겨우 중심을 잡았다. 토르의 뱃속이 소용돌이치는 감정으로 꽉 죄어 왔다. 로키가 저런 식의 대우를 받는 데 대한 분노와, 왕국을 향한, 아니, 이 우주 전체를 향한 그 오랫동안의 조바심 끝에 드디어 만난, 사랑하는 그 얼굴을 마침내 제대로 쳐다보고 싶은 욕망…로키가 왕좌 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로키는 왕좌로 향하는 세 번째 계단에 이른 후 다시 무릎을 꿇었다. 물론 토르의 얼굴을 마주하기에 계단은 너무 낮았고, 로키는 계단 한쪽 끝에 바싹 붙어서 자리했다. 로키는 머리를 숙인 채 발뒤꿈치에 엉덩이를 받치고 손을 허벅지에 가지런히 포개 놓고 있었다. 토르는 그 모습을 응시했다.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표정 없는 모습이었다.

서리거인들은 떠났다. 토르는 헬블린디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헬블린디의 무례함에 대해 나중에 상대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곧 바나헤임에서 온 사절단이 도착했고, 토르는 그들을 맞는 동안 인내심 있게 기다리려 애썼다.

로키에게는 그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로키는 무릎을 꿇은 채 아무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바나헤임의 대사가 입을 열어 말하고 있는 중에도 토르의 시선이 계속 그 쪽으로 이끌렸다.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이 방에서 토르 한 명 뿐인 것 같지도 않았다.

토르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요툰헤임의 푸른 피부를 입은 로키의 모습에는 이미 익숙했다. 하지만 로키에게는 다른 변화가 있었다. 우선은 몸이 너무 말랐다. 언제나 살이 잘 붙지는 않았던 로키였지만, 그래도 몸에 근육은 어느 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로키는 팔다리에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이 토르의 위장 속을 휘젓는 느낌이었다.

치욕적이기 따로 없었다. 토르의 손이 주먹 쥐어졌다. 바니르 족이 아직도 뭐라고 떠들고 있다는 사실에는 개의치 않은 채, 토르는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무리 중에서 펜드랄을 눈으로 찾았다. 토르는 로키 쪽으로 머릿짓을 해 보였다.

“그를 덮어 주거라.”

토르는 펜드랄에게 입모양으로 이렇게 말했다. 펜드랄이라면 자신의 명령을 잘 알아들을 것이다. 토르는 다시 대사 쪽으로 몸을 돌려 건조하게 웃어 보였다. 어두운 색의 머리를 한 바니르 족은 다행히 아무런 동요가 없어 보였다.

펜드랄이 로키 쪽으로 걸어와 사무적으로 망토를 풀어 내렸다. 어두운 푸른 색의 망토를 로키의 어깨 위에 걸쳐 주자 로키는 움찔했다. 지금까지 중 처음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로키의 고개가 튀어 올라가 펜드랄을 잠깐 곁눈질한 후에, 토르 쪽을 다시 향했다. 눈을 커다랗게 뜬 그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22번째 삶을 살고 난 후에도 토르는 여전히 자신의 동생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펜드랄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망토는 로키의 어깨에 걸쳐진 채, 최소한이나마의 품위를 지켜 주고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그의 나체는 매우 부적절한 모습임은 틀림 없었다. 토르의 마음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그 생각은 아니었지만, 왕실 사람 모두가 그 사실을 의식했을 것이다. 토르는 이제 로키가 자신의 몸을 덮어준 데 대해 과연 감사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연회가 열릴 예정이었고, 토르는 아스가르드에서 머물게 될 사절들 모두가 연회에 초대되었음을 알렸다. 알프헤임과 바나헤임의 사절단이 남게 될 것이었다. 나머지 왕국의 사람들과는 관계가 그렇게 돈독하지는 못했다. 토르는 대회당이 비워지기를 기다린 후 로키가 무릎을 꿇고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가까이서 와서야, 로키가 펜드랄의 망토 밑에서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토르는 이 모든 것이 촌극에 지나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헬블린디가 토르를 공격하기 위해 로키를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요툰헤임에서 자란 로키가 토르를 암살하러 온 것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한 번은 성공하기도 했다. 토르는 그 기억에 웃음을 지을 뻔 했다. 나머지 두 번은 실패로 돌아갔다. 로키의 암살 계획은 전적으로 속임수와 잠행에 의존해야만 하는데, 토르가 로키의 속셈을 바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토르는 로키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잠시 동안 그의 그늘진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토르는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손을 내밀었다.

“함께 가도록 하지. 먼 길을 여행했을 테니.”

로키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손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토르는 기다렸지만 로키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토르는 손가락을 조금 꼼지락거려 보였다.

“손을 이리 주렴.”

마침내 로키가 시키는 대로 했다. 토르는 로키의 차가운 손을 꽉 쥐며 안도의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지금까지의 불편한 정황에도 불구하고, 토르는 심장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펜드랄과 볼스타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호건은 아마 다른 바니르 족과 이야기하고 있을 테고, 시프는 경비를 총괄하고 있을 것이다.

토르는 로키를 위로 데리고 간 후, 로키가 스스로 망토를 붙잡고 있도록 놓아 주었다.

“아우가를 찾아서, 우리 손님에게 방을 마련해 주도록 일러 주었으면 좋겠군.”

“제가 가지요.”

볼스타그가 대답했다. 그 덩치 큰 사내의 목소리는 대수롭지 않게 들렸지만, 그의 이마에는 우려가 새겨져 있었다. 볼스타그와는 외모가 극과 극으로 달랐지만, 펜드랄의 얼굴에도 비슷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아우가에게 주방에도 말을 일러 두거라 전하겠습니다.”

그렇지. 로키의 몸에 살이 붙게 만드는 데는 볼스타그를 믿고 맡기면 될 것이다. 볼스타그는 언제나 그랬다. 그리고 토르가 확신컨대, 펜드랄은 아마 약간 언짢아 하고 있을 것이다. 구애와 유혹의 행위를 너무나 사랑하는 이 호색한의 사내는 아마도 이런 형식적인 관계를 치욕적이라고 느낄 것이다.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는 펜드랄이네.”

토르가 로키에게 일렀다.

“널 네 방으로 데려다 줄 거야. 펜드랄, 일이 끝나고 나면 날 찾게.”

펜드랄은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로키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고, 그 대신 고개를 더 푹 숙였다. 토르는 심장이 아려 오는 것을 느끼며 그를 몇 초간 더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    *    *


토르는 서성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의 손가락 끝이 입술 위를 톡톡 치고 있었다.

로키가 도착한지 이틀이 지났고, 토르는 그 동안 로키를 보지 못했다. 직무에 매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묘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조마조마함.

그리고 그것 말고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저녁 연회 중에 펜드랄이 토르를 흘끔흘끔 쳐다보았고, 토르는 그와 이야기를 나눠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퍼득 들었다. 헬블린디의 ‘선물’에 대해서 사람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불편한 감정이 퍼져 있었다. 토르의 자문가들은 모두 이번 일이 요툰헤임 왕으로부터의 모욕적인 의사 표시라는 우려를 전했다. 로키를 가장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토르밖에 없는듯 했다. 하지만 그 동안 로키를 그의 방까지 데려다 주었던 것이 펜드랄이었고, 토르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펜드랄이 가까이 오자 토르는 두 사람의 잔에 포도주를 각각 따라 주었다.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말해 보게.”

한 모금씩을 마신 후 토르가 각설하고 자신의 친우에게 물었다. 펜드랄은 처음에 조용했다. 그가 자리에 앉더니 한껏 멋 낸 자켓의 깃을 느슨하게 당겼다.

“헬블린디는 쓰레기 같은 놈이야.”

토르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자네같이 온화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 치고는 매우 상스러운 표현인걸, 내 친구여.”

“아우가의 마음에 찰 만한 방이 준비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지. 그래서 그 요툰인과 나는 옆에 서서 기다렸어. 그의 행동이…조금 소름 끼치더군. 그리고 나서 방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는…. 그냥 단순히 혼란스러워 보였다기에는 너무 부족한 설명인 것 같구만.”

토르가 더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펜드랄이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이 모든 상황이 모욕적이기 짝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자네는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군.”

“뭐라고?”

“자네가 조금 변했어. 시프도 알아챘는걸.”

토르가 의자 안에서 몸을 똑바로 세운 채 그의 친구를 빤히 쳐다 보았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펜드랄의 목소리는 가벼웠고 거의 어조가 없었지만, 무엇인가 대답을 얻어내고 싶다는 의도는 확실해 보였다.

“그를 어떻게 할 계획이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네.”

토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마음 속에서 무엇인가가 또아리 트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방어심이었다. 로키는 자신의 것이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둘은 언제나 서로와 함께하는 운명이었다. 변태적인 행위에, 근친이라는 이유로 비난 받고 호통을 들으며 얼굴에 침이 뱉어진 적도 있었고, 이가 피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다 (한번은 후자가 자신의 친아버지에 의해서였던 적도 있다). 그리고 토르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간에 신경 쓰지 않았다.

펜드랄은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토르는 다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마침내 마음이 가라앉자 토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펜드랄은 그 동안의 셀 수 없는 삶 동안 쭉 자신의 진실된 친구로 남아 있었다.

왕의 기쁨을 위한 노예라니. 어처구니가 없군. 내가 정말로 그를 그런 식으로 착취할 거라 생각한 건가?”

“자네가 그 친구를 쳐다보는 시선을 보기 전까지는, 나도 자네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사람이라 생각하지 못했지.”

토르는 일어나서 몇 걸음을 뗐다. 펜드랄의 말이 자신이 인정하고 싶은 것보다 더 자신을 동요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이 조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세기 동안의 상실감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신을 빤하게 노출시킨 것이 틀림 없었다.

당연히 토르는 갈망하고 있었다. 가끔 숨 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그는 로키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 갈망이 육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토르는 자신의 동생을 곁에 두고 싶었다. 그의 얼굴을 매일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다. 그와 대화하고 웃고 싸우고 싶었다. 그리고 그 욕망이 조금씩 스며 들어오기 시작하자,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마저 그걸 눈치채고 그것을 부정적인 쪽으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네의 도의심은 존경할 만 하군, 펜드랄.”

토르가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헬블린디의 선물에 대해…깊은 흥미를 느꼈네. 그의 존재가 우리 왕국과 요툰헤임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견지를 제공하리라 생각해.”

그 말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다음으로 할 말은 그렇지 않을 것이었기에, 토르는 몸을 돌려 펜드랄의 눈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자네가 암시한 것 같이 그에게 해를 끼치거나 학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이제 물러가 보아도 좋네.”


*    *    *


긴 휴식과 고독을 거치며 생각할 시간을 가진 것이 그의 가장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해결해 주었다. 퍼즐 조각 몇 개가 한데 합쳐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아스가르드는 웅장하고 부유했으며, 사치로 넘쳐났다. 모두를 위한 충분한 부가 있었다. 왕궁의 벽조차 금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아름답고 넓은 방들로 안내 받은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그는 이 방들이 왕의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자신을 이 곳까지 호위해 준 펜드랄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것이거나. 하지만 그 남자는 그 질문에 매우 불쾌한 표정을 해 보였고, 그는 자신의 우둔함을 속으로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 남자에게는 모욕적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왕에게도. 자신이 일을 그렇게나 빨리 망쳐버린 사실이 놀랍지조차 않았다.

하루에 네 번 식사가 왔다. 그는 먹을 수 있을 만큼 양껏 먹었다. 그는 왕에게 처음 소개받았을 때 자신의 몸 위로 망토가 둘러졌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덩치가 커다랗고 빨간 머리를 한 남자가 음식 얘기를 했던 것도. 이제야 명확하게 알 것 같았다. 자신은 그 남자처럼 매력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자신의 마른 몸이 문제라면, 먹으면 될 것이다. 그는 먹는 것을 좋아했다. 단지 자신의 삶 속에서 그럴 만한 기회는 거의 없었다.

쓰라린 감정이 그를 압도해 왔다. 헬블린디 왕이 자신이 성공하리라고, 토르 왕을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토르 왕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왔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사실을 바꿔 놓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마른 몸이든 아니든.

그러고는 그는 그런 은밀한 생각을 품는 것에조차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조차 행운이었다.

적어도 그것이 그들이 자신에게 말해준 이야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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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