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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2/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2장. ‘만남’



바보 같은 줄 알면서도, 토르는 방을 떠나기 전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두 번이나 확인했다. 로키가 자신에게 주어진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고, 토르는 더 이상 로키에게서 떨어져 지낼 수 없었다. 상황은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토르는 로키가 자신의 왕실에서 자유 시민으로서 일할 것이며, 봉급도 제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노예를 두는 것을 금했으면서 자신은 노예를 둔다는 오명을 쓰기는 싫었다. 토르는 또한 이번만큼은 헬블린디의 모욕적인 행사를 묵살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르는 헬블린디가 새로 등극한 젊은 왕이기 때문에, 자기 왕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충신들의 마음을 만족시켜 주고, 대항 세력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발톱을 내 보일 필요가 있었으리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아스가르드에 대한 위협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이 전혀 신경 쓸 문제는 없을 것이라 일렀다.

늦은 오후였고, 토르는 기나긴 대회당의 홀로부터 로키의 사실이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계단 한 층을 내려가 또다른 홀에 다다르자 양 옆으로 조그만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방문객들을 위한 방이었다. 사람의 자취가 많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도시의 풍경이 한 눈에 보이는 아주 아름다운 방들이었다.

토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방문을 두드렸다.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의 로키. 나의 아름다운 동생이 이번 삶에서는 어떤 문제에 맞닥뜨린 것일까? 요툰헤임 왕의 교활한 스파이일까? 토르는 하루빨리 밀고 당기는 게임을 하고 싶어 좀이 쑤셨다. 그것이 건전한 취미는 아닐지도 몰랐다. 하지만 로키가 독이 든 술잔을 자신에게 건넨다면, 토르는 웃음을 터뜨리며 그것을 마셔 버릴 것이다. 혹은 로키가 유혹을 무기로 한 첩자로 접근해서 토르의 갈비뼈 사이에 칼을 찔러 넣으려 시도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토르는 그 싸움을 즐길 것이고, 로키의 가느다란 손목을 자신의 손 안에 쥔 채 무기를 떨어뜨리게 만들 것이고, 그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열기를 부추긴 다음—

조심스러운 침묵 후에 문이 살짝 열렸고, 토르는 그 사이로 로키의 얼떨떨한 새빨간 눈을 볼 수 있었다.

“좋은 오후로군.”

토르가 한 박자 후에 말했다.

“들어가도 되겠느냐?”

로키가 문에서 황급히 몸을 떼더니, 문이 열리도록 놔둔 후 미끄러져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토르는 얼른 안으로 달려들어가 그를 붙잡았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아니, 제발 그러지 마렴…일어나.”

로키의 정체가 단순히 어린 노예가 아니라 다른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토르의 마음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로키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끔찍했다. 겁에 질려 있고, 무릎을 꿇은 채 주눅들어 있는 로키.

“일어나렴.”

토르가 되풀이했다. 토르는 로키의 마른 팔뚝을 붙잡아 그를 일으켜 세웠다. 로키가 다시 두 발을 디디고 서며 토르를 흘끗 쳐다보았다. 마침내 두 사람의 눈이 가까이에서 만났다. 그 짧은 순간의 접촉만으로도 토르는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가까운 거리 덕에 로키의 냄새가 토르의 코 안을 가득 채워 왔고, 그 냄새는 토르가 너무도 잘 알고 사랑하는 그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본 채 서 있었다. 로키가 자신 때문에 무척이나 놀란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몇 세기 동안의 외로움 후 마침내 로키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사소한 점을 녹여 없애 버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삶 중에서 이 정도로 고통을 감내해야 한 적은 없었다. 자신의 많은 삶에서, 토르가 말을 할 수 있기도 전, 걸을 수 있기도 전부터 (혹은 변을 가릴 수 있기도 전부터) 로키는 그냥 그 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두 사람은 어리고 성적인 호기심이 넘치는 나이에 처음 만나고는 했다. 둘의 연애 행각은 앞으로 있을 몇 백 년의 긴 시간 동안 토르의 가슴 속을 열기와 유쾌함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토르는 벌써 자신 인생의 절반에 이르렀다. 보통은 나이 먹는 것이 그를 두렵게 하지는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홀로 지내야 했던 그 세월의 무게가 너무 컸다.

그리고 로키는…로키는 토르의 눈에 너무 어려 보였다. 아니면 너무 말랐든지. 그리고 너무 그답지 않게 겁 먹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잠시 동안, 토르는 그 어떤 것에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토르는 로키를 홱 잡아당겨 그의 입술에 거칠게 키스했다.

로키가 잠시 놀란 채 몸을 빳빳이 굳혔다가, 토르의 입술 아래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로키의 입술이 느슨하게 열려 그를 환영한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리고 달콤한 찰나의 순간 동안, 토르는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으면 하고 바랐다. 마지막 삶에서 죽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이 든 채로, 전장으로부터 시든 모습을 한 채, 로키에게 씩 웃음을 지어 보이며—

토르의 품 안에서 로키가 떨고 있었다. 입술은 열려 있었지만 미동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번 삶의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토르 위로 무너져 내렸다. 토르는 황급히 몸을 뗐다.

그의 갈비뼈 사이에 꽂혀 있는 칼 같은 것은 없었다. 독이 든 술잔을 마시도록 종용하는 웃음도 없었다.

선물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제가 손수 감독했으니, 다른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선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달갑지 않은 헬블린디의 말이 떠올랐고, 자신이 펜드랄에게 했던 약속도 머리 속에서 울려 퍼졌다.

“나는…”

토르가 여전히 로키의 팔을 쥔 채 숨을 몰아 쉬었다. 로키는 공포에 질린 것처럼 보였지만, 곧이어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제 왕이시여. 부디 들어오도록 하십시오. 저기에 침대가 있으니…”

“아니야, 아니야.”

토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마침내 로키를 놓아준 후 그가 두려움에 몸을 움츠리는 모습을 지켜 보며, 자신이 얼마나 저열한 행위를 했는지가 또렷하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토르는 그제서야 이것이 로키가 처음 자신에게 말을 꺼낸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키의 목소리는…약했다. 떨리고 있었다.

토르는 이번 상황이 지금까지 있었던 것 중 그 어떤 것과도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번 삶에서 자신과 로키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그 어떤 가능성이라도 박탈당하기 전에, 빠르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토르는 할 말을 찾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어색하게 기침을 해 보였다.

“혹시 와인이 있나?”

로키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잽싸게 유리병과 술잔들이 놓여 있는 사이드 테이블로 다가갔다. 유리병은 한 번도 비워진 적이 없어 보였다. 시종들이 쓸 수 있는 간단한 마법에 의해 속에 든 와인은 늘 시원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로키가 떨리는 손으로 술잔 하나에 와인을 채우기 시작했다.

“너도 나와 함께 마셨으면 하는데.”

로키가 끝낸 것처럼 보이자 토르는 덧붙였다. 로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시킨 대로 다른 잔을 따랐다.

그 모습에 토르의 혀 밑에서 와인이 시디 시게 느껴졌다. 토르는 응접실에 늘어 서 있는 의자들 중 하나에 무겁게 내려 앉았다. 로키는 그 앞에 서 있다가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 후, 토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로키가 그를 올려다 보았다. 토르는 입에 머금고 있던 것을 뱉어낼 뻔 했다. 토르는 얼른 가까운 테이블에 술잔을 내려 놓았다.

“일어나. 제발, 일어나 줘.”

토르가 로키를 재촉하며, 다시 한 번 몸을 숙여 로키를 붙잡아 일으켰다.

“여기 앉아. 의자에 앉아.”

로키는 그렇게 했다. 토르는 숨을 무겁게 몰아 쉬며 로키를 바라보았다. 로키는 이제 옷을 입고 있었지만, 검은색 소재로 된 얇은 바지 하나 뿐이었다.

“부디,” 토르가 강조했다. “내 앞에서 무릎을 꿇지 마렴. 그럴 필요 없어.”

로키가 조심스럽게 자기 반대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토르는 다시 술잔에 손을 뻗었다. 토르는 술을 거의 한 입에 다 삼켜 버렸다.

“그 동안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 아스가르드에서 노예제는 용납되지 않아. 너는 노예가 아니고, 여기에는 그런 지위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너는 내 왕실의 식구로서 이 곳에서 고용되어 일하게 될 거야.”

그 부분은 어렵지 않았다. 로키는 자신의 술잔에 시선을 던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의 말이 그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방금 네게…네게 그렇게 위협적인 행동을 한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사과하고 싶구나.”

토르가 자신감 없이 말했다.

로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게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인걸요. 폐하에게 고용되어…”

“아니,” 토르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는 절대 아니야.”

아까 전의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그 말은 자신의 귀에도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로키의 어깨가 여전히 긴장해 있는 것에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대체 너는 무슨 일을 겪은 것이냐? 토르는 간절하게 묻고 싶었다.

“몇 살이지?”

토르는 대신 그렇게 물었다.

로키는 시선을 돌린 후 섬세하게 한 쪽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토르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버릇이었다. 토르의 숨이 턱 걸렸다.

“두 세기 정도입니다. 제 왕이시여. 정확한 숫자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 역시 너무나 잘못된 일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나이여야만 했다.

또 뭐가 다르지? 어떤 점이 바뀌었지?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이 바뀌어 버린 것이면 어떡하지? 토르가 지금 당장 자신의 목을 베어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도, 다음 삶에서 다시 로키를 찾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아니면 로키를 만나기 위해 몇 천 년을 기다려야 하면 어떡하지?

“네 부모는 어떤가? 그들은 어떻게 되셨지?”

로키의 눈이 속눈썹 밑에서 토르를 재빨리 응시했다. 이전 삶들에서 로키가 유혹의 뜻으로 그렇게 하는 것을 토르는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그 때의 행위와 전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저는 제 부모님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몇 년 동안 산 속에서 나이 많은 여자 거인이 저를 길러 주었습니다. 제가 스스로의 몸을 돌볼 수 있기 전까지요. 그리고…”

업둥이라. 로키의 운명으로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왕족의 피를 지니고 있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토르가 재촉했다.

“그가…절 발견하셨습니다. 훈련시켜 주셨고요.”

로키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로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날카로운 고통과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다. 로키의 곁에서 고작 몇 분을 보낸 후 펜드랄이 헬블린디에게 욕설을 던졌던 것이 기억났다. 토르도 비슷한 충동을 느꼈다. 토르가 원하는 것이 욕설이 아니라, 폭력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것 말고는 토르는 대체 뭘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는 로키를 만질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은 그럴 수 없었다. 그의 허락 없이는. 말과 위안은 공허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하지만 토르는 계속 시도하면 달라질 수 있기 만을 바랐다…

“이 방에서 나간 적은 없느냐?”

생각이 머리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말이 부주의하게 튀어 나왔고, 로키가 놀라 몸을 화들짝 떨었다.

“네? 아니오, 물론 아닙니다. 저는 절대…”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토르가 그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너는 여기 갇힌 몸이 아니야. 이리 오렴. 가까운 정원을 보여 줄 테니.”

토르가 몸을 일으키자 토르도 똑같이 했다. 로키는 여전히 놀란 상태였다. 토르가 그를 곁눈질했다.

“사람들이 네게 옷을 주었지?”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튜닉 하나라도 걸치지 않겠느냐.”

로키의 맨살이 자신의 것만큼이나 익숙하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토르는 로키가 요툰헤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스가르드에서도 노예로 부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빠르게 떨쳐 버릴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했다. 로키는 조금 더 제대로 된 복장을 하고 있어야 했다.

“물론이지요. 죄송합니다, 제 왕이시여.”

필요 없는 사과의 말을 남긴 채, 로키는 재빨리 응접실에 접한 침실로 달려갔다가 예쁘게 수놓아진 어두운 붉은 색 튜닉을 가지고 돌아왔다. 로키는 꽉 죈 바지 위로 그 옷을 걸쳐 입었다. 토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아름다웠다.

그들 두 사람이 함께 겪고 있는 이 순환 고리 중 하나에서, 토르는 로키에게 가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는 했다. 로키는 언제나 그의 말을 믿어 주었다. 한 번은 두 사람이 아주 나이를 먹었을 때였다. 뼈가 아파 오고 감각이 떨어져 가는 나이였다. 두 사람은 간소한 오두막에 살았고, 불 옆에 앉아서 시들어 버린 손에 술잔을 쥐고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그 순간을 즐겼다. 토르는 말을 하고 또 했다. 토르는 두 사람이 그 이전의 삶에서 함께 겪었던 일에 대해서 로키에게 모두 말해 주었다.

처음에 로키는 그를 늙은 바보라고 불렀다. 하지만 곧 로키는 조용해졌고, 귀를 기울여 들었다.

이야기를 반도 끝내기 전에 로키가 눈을 감았고, 토르도 곧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토르는 다시 눈을 떴고, 눈 앞에는 동그란 머리 위에 검은색 머리카락이 조금씩 돋아나기 시작한, 행복하게 꺄르륵거리는 아기가 있었다.

하지만 로키는 자신을 절대 바보라고 부르지 못할 것이다. 이 로키는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왕이 두려운 존재일 뿐만이 아니라,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며 공포에 떨기만 할 것이다.

두 사람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토르는 뭔가 할 말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원하면 언제든지 성 안이나 도시를 거닐어도 된다.”

토르가 말했다.

“필요하면 경비나 시종들이 언제든 방향을 가르쳐 줄 거야.”

큰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둘은 조용히 걸었다. 이 정원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꾼 것들 중 하나는 아니었다. 그저 성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의무적으로 가꿔 놓는 공공적인 정원 중 하나일 뿐이었다. 프리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심장이 아파 왔다. 로키가 프리가를 만나지 못할 것이며 그녀에게 사랑받을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쓰라렸다.

프리가는 늘 로키를 달래 주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토르는 혼자 뿐이었다.

로키가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 보는 동안, 토르는 로키를 너무 빤히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로키의 고개는 여전히 숙여져 있었다. 그 상태가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토르는 슬픈 마음으로 그 점을 마음 속에 새겨 놓았다. 하지만 자갈길에 이르렀을 때, 로키는 시선을 들었다. 그의 표정에는 놀람이 담겨 있었다.

“아름다워요.”

로키가 처음으로 질문 없이 먼저 꺼낸 말은, 휙 하고 한 숨결에 지나갔다.

토르는 환하게 웃었다.

로키가 자신이 방 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너무 신경 쓰였는지라, 토르는 했던 말을 또 반복 하는 줄 알면서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줄 수밖에 없었다.

“원하면 언제든지 여기 와도 돼. 네 방과 가까우니까. 여기 말고도 성 안에는 다른 정원이 많으니, 기꺼이 보여 주도록 하지.”

마지막으로 한번 재빠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난 후, 로키의 시선이 다시 발 쪽에 가서 붙박였다. 로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왕께서 원하시는 대로.”

그 놈의 왕은 로키가 자신에게 좆까고 무릎이나 꿇으라고 말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지금 이런 모습만 아니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물론 토르는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쑤셔 오는 머리 속을 잠시 휙 스치고 지나가는 터무니없고 울화 치민 생각일 뿐이다. 그런 덕에 토르는 전날 밤을 설쳤더랬다.

두 사람은 불편한 침묵 속에 거닐었다. 가끔씩 로키는 손을 뻗어 만개한 꽃을 만지고는 했다. 하지만 입을 열지는 않았고, 그의 어깨는 안쓰럽게 앞으로 구부러져 있었다.

토르는 자신이 이기적으로 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로키는 이 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이 친구라도 되는 것마냥 토르 옆에서 산책이나 거닐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오랜 친구이기는 하지. 토르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로키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 자신이 정상적인…상황에 있었을 때도 (토르의 삶을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토르는 그렇게 하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 삶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안타깝지만 이제 해야 할 직무가 있어서 말인데…”

둘 사이의 긴장감을 더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토르는 예의 바르게 말을 꺼냈다.

“여기 조금 더 있고 싶어, 아니면 방으로 다시 데려다 주도록 할까?”

두 번째 질문은 예의상 더한 것이었고 토르는 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가지가 이리저리 꼬인 오래된 떡갈나무 앞에 멈춰 섰다. 로키는 입고 있는 예쁜 붉은빛 튜닉의 소매를 손으로 쥐어 뜯었다.

“저는…제 왕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로키의 그 말이 토르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로키에게 그런 식으로 대답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 주려 숨을 들이마시기도 전에, 하늘 위에서 천둥 소리가 귀가 멀 정도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로키가 새된 비명 소리를 지르며 갑작스럽게 몸을 바닥에 웅크려 무릎을 꿇었다.

토르는 채 한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에만 세 번째로 로키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생각 덕에 성 위의 밝고 햇빛이 내려 쬐는 하늘 위로 구름들이 밀려 오기 시작했다.

“제발, 일어나서 질문에 대답해 주렴.”

토르가 겨우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그는 로키에게 화난 것이 아니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제어력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 없이 살아야 했던 그 기나긴 나날들. 수색과 필사적인 심정으로 보냈던 세월들. 그 모든 것이 무엇 때문이었단 말인가? 토르가 그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로키는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로키가 이 세상에 도달했을 때, 토르는 그를 제 때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결과물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로키가 마침내 일어났다.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토르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가 울고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생각에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자신은 천둥을 불러 왔고 로키를 놀라게 만들었다. 자신이 의도했든지 아니었든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렴.”

토르가 부드럽게 말하며 로키의 등에 손을 얹고 인도했다.

“더 걷기에는 날씨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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