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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Arenas Temporis (12/14)

토르로키 / Thorki

"Arenas Temporis(시간의 모래)"

by thorvaenn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427558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e3N884O.png)
  • 총 14편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 토르가 자신의 삶을 계속 반복하며 매 삶마다 로키와 함께 하고 사랑하는 루프를 겪습니다.
  • 워닝: 로키 과거 성적 학대 암시



*    *    *


12장. ‘비밀’



토르가 그 생각을 재고한 것이, 다음 생에서도 상황이 똑같이 나쁠 수도 있다는, 아니, 그것보다 더더욱 나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로키에 대한 기억, 이번 로키에 대한 기억이 그 생각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토르가 지금까지 자신의 동생과 살아왔던 몇 천, 몇 만년의 긴 세월에 비하면 이번 시간은 커다란 도화지 위의 얼룩 한 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기억은 토르의 심장 속에 자리를 잡아 들었다. 아주 따스하고 온화한 장소는 아닐 테지만. 아니, 물론 토르는 로키를 향해 따스한 마음을 품고 있다. 하지만 로키가 겪은 고통이 형상화되는 것과, 로키의 부숴져 버린 순수함과, 보통의 경우 로키에게 추진력을 제공하던 불꽃이 꺼져 없어져 버린 것을 목격하면 할수록, 토르는 자신에게 익숙지 않은 길로 스스로를 인도할 수밖에 없었다.

토르는 도망칠 수 없었다. 이 우주를 파괴해 버릴 수 없었다.

부숴져 버린 것을 고쳐 놓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토르는 조심스럽게 부서진 기둥과 박살 나 있는 석재 주위를 맴돌았다. 얼어 붙은 고르지 않은 땅 위를 딛는 것은 어려웠다. 날카롭고 삐죽삐죽한 얼음 더미나 오래된 바위가 눈더미 밑에 잔뜩 숨어 있었다. 토르는 이 곳에 로키가 홀로 있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의 외부에는 그 어떤 움직임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얼음과 성의 폐허 위에서 발자국을 찾는 것도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이 발자국이 맞다면 말이다. 토르는 땅 위를 침울하게 응시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로키의 발이 남긴 발자국인지, 아니면 단순히 바람이 훑고 지나간 눈더미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실력 한 번 끝내 주는 사냥꾼이로군.

아니, 추적자이지. 토르는 스스로의 말을 정정했다. 자신은 로키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지, 사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토르는 그냥 이 성 전체를 뒤지는 편이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토르는 그 일에 꼼꼼히 착수하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며 성 안쪽으로 접근한 토르는 왕의 알현실을 발견했다. 이제는 거의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왕족이 지내며 손님을 맞는 장소라기보다는 어두운 가축 우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곳에는 지하 공간이 있었다. 발 아래에 얼어붙은 땅을 깎아 만든 미로 같은 복도들이 있다는 것을 토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통로가 어디로 인도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추측은 해 볼 수 있었다. 보물들, 무기들, 철저히 감춰진 비밀들.

자신의 몸집에 맞는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입구를 찾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토르는 마침내 통로를 가리고 있는 커다란 바위 하나를 밀어 치워내고 안으로 슬쩍 들어갔다. 묠니르가 그의 손 안에서 흥얼거리는 힘의 노래를 부르며 길을 밝혔다.


*    *    *


“이게 무슨 뜻이죠?”

로키가 지금 막 엮인 태피스트리 위에 손을 훑어 내리며 물었다. 한 쪽 시야 끝에서 어머니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것이 보였다.

“내 환영들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로키는 흥 하는 소리를 내며 다시 태피스트리에 주의를 돌렸다. 토르에 관련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는 짐작할 수가 없었다. 로키에게 있어서 토르의 존재는 견고하고 요란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 태피스트리 위에 있는 토르의 환영은…거대했다. (그의 어깨가 거대하다는 것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지금 당장은 로키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환영은 거대했고, 또 마구 풀어진 실타래처럼 보였다. 공간을 관통해 나가는 모습일까?

로키의 생각이 그를 소환하기라도 한 듯 토르가 걸어 들어왔다. 로키는 몸을 돌리지도 않은 채 뒤에 있는 것이 토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왕비의 처소에 그런 식으로 행진하듯 들어올 수 있는 것은 한 사람 뿐이다. 토르가 프리가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로키는 고집스럽게 그에게서 등을 돌린 채 이해할 수 없는 태피스트리의 무늬들을 관찰하는 척 했다. 숨을 고르게 몰아쉬는 데 모든 집중을 기울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어쩌면 얼굴을 붉히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을 수도 있었고.

토르가 등 바로 뒤에 나타나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와 섰을 때, 로키는 실패하고 말았다.

“이건 뭐지?”

토르가 물었다. 로키는 순전한 정신력으로 몸이 떨려 오는 것을 겨우 막았다.

토르는 자신의 형제이다. 토르가 감당치 못할 멍청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것이 로키가 형과 함께 미친 짓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자신이 너무나 절박하게 그것을 원하고 있더라고 해도 말이다.

토르가 그를 지나쳐 다가간 후, 로키가 만졌던 곳에 똑같이 손을 얹어 훑어 내려갔다. 로키는 그 손가락이 자신의 몸을 훑어 내려가는 느낌이 얼마나 좋을지 상상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덕분에 로키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놓칠 뻔 했다.

토르가 손을 홱 잡아채더니 로키에게서 몇 걸음 물러섰다. 토르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뜻이죠?”

토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거의 위협하는 듯한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의 어머니이다. 토르가 물론 그럴 리가—

프리가가 침착하게 토르를 바라보았다.

“네 동생도 같은 것을 내게 물었다. 두 사람이서 함께 알아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    *    *


3000년이 흐르고 난 후, 토르는 그에게 말해 주었다.


*    *    *


성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마자 토르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였다. 로키가 도망간 곳은 여기다.

아니면 납치되어 갔든지.

후자의 경우라면 토르는 로키의 몸에 손을 댄 자들의 피로 이 곳의 벽을 장식할 것이다. 결코 공허한 협박은 아니다. 하루가 채 지나기 전 토르가 했던 것도 바로 그 일이었으니.

하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로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설득할 만한 말이 무엇이 있을까? 자신이 아직도 하지 않은 약속들이 과연 남아 있을까?

자신이 그 약속들을 깨 버린 것일까?

어떠한 유인력이, 혹은 직관이, 혹은 이 성들과 요새들 내부의 오래된 지식이, 토르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끌어당겼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주위는 더 따뜻해졌다. 땀 때문에 망토 안감의 털이 불쾌하게 살갗에 달라 붙었고 토르는 망토를 잡아 당기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이제 토르는 지하 깊은 곳에 이르렀다. 그 곳은 더 이상 얼어붙어 있지 않았다. 토르는 졸졸 흘러 내리는 물줄기도 몇 번 맞닥뜨렸다. 토르 주위의 벽을 두르고 있는 검은색 바위들마저 땀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토르는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았다.

여기 무엇인가가 있었다.

로키가 여기 있다.

너무나 조용한 소리가 멀리 어느 곳에서부터 귀에 들려 왔고, 토르는 달리기 시작했다. 좁은 통로 사이를 쏜살같이 달려 지나가던 토르의 몸이 갑자기 커다랗고 휑한 방 안으로 던져졌다. 몸을 관통해오는 충격에 토르는 비틀거렸다. 이 공간이 자신을 어디론가 뱉어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하의 압력이 갑자기 조금 덜어졌고 귀 안에서 팟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 토르는 위를 올려다 보았다. 천장이 너무 높아 희미한 불빛으로는 얼마 정도의 높이인지 보이지조차 않을 정도였다. 자신을 이 곳까지 인도한 좁은 복도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그리고 로키가 있었다. 동굴의 한가운데 바닥 위에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토르는 그에게 달려가 털썩 무릎을 꿇어 앉았다. 안도감이 몸을 덮쳐 오는 바람에 어차피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로키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토르가 아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로키의 몸은 너무나 고요했다. 로키에게서 느껴지는 유일한 움직임은 빠른 숨결과 이따금씩 입술 사이로 스쳐 나오는 고통 어린 신음 뿐이었다.

로키는 한 팔을 눈 위에 단단히 누르고 있었고 다른 쪽 손으로는 귀를 가리고 있었다. 다른 쪽 귀도 가리고 싶어하듯 어깨가 위로 치솟아 있었고 목은 옆으로 쭉 뻗어져 있었다.

“로키?”

토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뒤늦게야 토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 같은 것은 없었다. 토르의 목 뒤 털을 쭈뼛 서게 만드는 존재 같은 것도 없었다.

이 곳에는 두 사람만 있었다.

“다쳤느냐? 누가 네게 해를 가한 것이냐?”

토르는 숨겨져 있는 상처 같은 것은 없는지 찾기 위해 조심스럽게 로키의 몸 위로 손을 쓸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토르는 로키를 똑바로 눕혀 보려 시도했다. 로키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고 아무 저항도 없었다. 하지만 로키는 여전히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고, 토르가 그 팔을 떼 내려 하자 아까와 비슷한 신음 소리가 로키의 입에서 튀어 나와 무언의 항의를 했다.  

토르는 손을 멈췄다. 그리고 토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묠니르를 침묵하도록 시켰다.

토르의 명에 따른 망치가 비추이는 불빛 없이는, 동굴 안이 완전히 캄캄해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은은한 불빛 하나가 남아 있었다. 토르는 그 불빛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찾기 위해 몇 분을 허비했고, 결국에는 로키가 안전하게 치료사들의 보살핌을 받고 난 후로 그 수색을 미루기로 결심했다.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만 묠니르를 다시 밝힌 후, 토르는 로키를 팔 안에 안아 들었다.

그 행동이 로키를 더 괴롭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토르는 감사했다. 눈과 귀를 막고 있는 상태이기만 하면 로키의 몸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길고 지루한 여행을 시작한 후에야 토르는 자신이 얼마나 멍한 상태인지를 알아챘다.

그를 다시 찾았다. 로키를 다시 찾았다. 로키는 다친 상태이지만, 살아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도무지 아귀가 맞지 않았다. 로키가 사라진 것. 로키가 이 방으로 길을 찾아 들어간 것. 이 방은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공간임에는 틀림 없었다. 그 어떤 장소래도 이상하지 않았다. 옛 사원이거나, 보물고, 혹은 은신처….

사람들을 자신의 손아귀 속으로 유인하는 어떠한 힘의 근원지일까? 토르는 그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악의 어린 영혼이 연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 상황 또한 꽤 그럴 듯한 가능성이었다.

로키가 그냥 야생 속으로 도망쳐 버렸다는 것보다는, 훨씬 납득 가는 설명이었다.

로키가 거의 옷을 걸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아까 눈으로 보았을 뿐더러, 이제는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로키는 튜닉과 헐렁한 바지만을 몸 위에 걸친 상태였다. 이것이 계획된 탈출이었다면 로키는 털옷을 걸치고 음식도 지닌 채 떠났을 것이다….

티르가 그에게 겁을 주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말이다. 만일 티르가 그렇게 했다면 로키는 생각할 겨를 없이 두려움에 질려 도망쳤을 것이다.

토르의 머리 속이 그가 지금 빠져나오려 하고 있는 통로들과 비슷한 미로 같은 상태가 되기 시작했다.

로키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린 후 물어볼 것이다. 어쩌면 티르에게 해야 할 질문이 있을 수도 있다.

마침내 바깥으로 빠져나온 후 토르는 신선한 공기를 기분 좋게 들이 마셨다. 공기가 물어 뜯을 것처럼 찼지만 상관 없었다. 추위는 토르로 하여금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시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걱정과 두려움은 잠시 제쳐 놓아 두어도 된다.

먼저 안전한 곳으로 가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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