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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Rulers Make Bad Lovers (6/7)

토르로키 / Thorki

"Rulers Make Bad Lovers(통치자는 좋은 연인이 못 된다)"

by fairychangeling


원문 :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4347620/chapters/33114672


  • 작가님의 허락을 얻어 번역합니다. (https://i.imgur.com/C1qQapE.png)
  • 연하토르x연상로키의 북유럽신화 베이스 AU입니다. 작품의 기본적인 설정은 북유럽신화의 설정을 따릅니다. 토르와 로키는 형제로 자라난 사이가 아니며, 로키는 오딘과 피의 서약으로 이어져 있는 관계이고, 토르는 오딘과 프리가가 아니라 오딘과 요르드 사이에서 난 자식입니다. 
  • 엠프렉 요소가 있습니다.



*    *    *



6장.

‘네 왕국을 팔아 치우는 편을 택하라’


“토르, 안 됩니다!”

발두르가 그를 막으려 했지만, 토르는 발두르보다 훨씬 더 강했다. 토르는 형을 옆으로 밀쳐내 버린 후 아버지의 사저로 통하는 문을 밀어젖혀 열었다.

오딘은 아까 토르가 떠났던 때 모습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오딘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사악했고 그의 두 눈은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왜 그러신 거죠?”

토르가 물었다.

발두르가 뒤에서 문을 박차고 들어와 토르의 어깨를 붙들었다. 발두르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껴야 할 것 같았지만, 토르는 더 이상 그 두 사람 누구에게도 일말의 동정심을 느낄 수 없었다. 오딘의 혈통은 썩어 들어가 있었다. 거짓말쟁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토르는 이제 거짓말을 듣는 것은 지긋지긋했고, 네가 훗날 언젠가는 이해해 줄 것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토르는 지금까지 너무나 나약했으며 쉽게 휘둘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널 한 번도 총애한 적이 없다.”

오딘이 입을 열었다.

“너는 약하고, 쉽게 꼬임에 넘어가지. 너는 그 마술사와 혼인했을 것이고, 그 자가 네 귀에 불결한 말을 속삭이도록 허락했을 것이다. 너는 그 자가 내가 지은 모든 것들을 파괴해 버리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토르가 벽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방이 진동했다.

“당신이 지은 것이 대체 뭔데요?”

토르가 으르렁거렸다.

“당신이 만든 유일한 것은 나, 발두르, 그리고 당신의 다른 자식들 뿐이에요. 그마저도 우리의 가장 좋은 속성들은 어머니들께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요.”

“나는 제국을 지었다!”

오딘이 고함을 쳤다.

“나는 선왕이 평생 해낸 것보다 이 왕국을 훨씬 더 널리 확장했고, 내가 가진 것들을 지켰다. 로키, 그 멍청한 놈이 난쟁이들 손에 붙잡혔을 때 난쟁이들이 그의 목숨을 댓가로 무엇을 요구했는지 아느냐? 그 난쟁이들은 아스가르드를 해체시키려 했다. 그 비열한 자를 놓아 주는 대신 자기네들의 황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했단 말이다.”

“황금이라고요? 고작 황금 때문에 로키를 칠 년 동안 고통받게 만들었다는 말인가요?”

토르가 충격에 휩싸인 목소리로 말했다.

토르는 이 성을 맨손으로 찢어발겨 버리고 싶었다. 이 성을 장식하고 있는 황금을 모조리 녹여 버린 후 로키에게 주며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토르는 다시 한 번 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주먹 밑에서 석조가 부숴져 내렸다. 그래,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토르는 아스가르드를 그 기반부터 부수어 버릴 것이다.

“제게는 그렇게 말씀 안 하시지 않았습니까.”

발두르가 혼란스럽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토르는 손을 멈춘 채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난쟁이들이 우리가 주지 못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황금은 그저 성을 덮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은 돌로 지어진 것입니다. 황금은 그냥 돌려 주었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발두르 역시 자신의 앞에 선 남자를 전혀 모르겠다는 것처럼, 마치 그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응시하고 있었다.

“아스가르드를 위해 한 일이다! 아스가르드의 황금 성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봉화와 같은 것이다. 로키는 한낱 종일 뿐이지. 로키 또한 이해한 일이다. 게다가 그 일 덕에 로키도 겸손의 미덕을 배웠을 테니, 잘 된 일인 게지.”

오딘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회개도, 일말의 후회도 담겨있지 않았다.

오딘은 자신이 한 짓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었다.

토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귀에 들려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로키는 칠 년 동안 감금되어 있었고, 그를 구해줄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은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로키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어떤 것일지 알고 있었을 법도 했지만, 그럼에도 주저하지 않고 그를 사지로 몰아 넣어버린 것이다.

성 밖의 세상이 불타오르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고작 앙심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이신 겁니까? 국민들이 죽게 될 거에요!”

발두르가 고함을 쳤다.

발두르의 공포감이 토르에게도 메아리 쳐 왔다.

“이것은 국민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내 유산이란 말이다.”

“당신은 미쳤어.”

토르가 말했다.

“나는 왕이다. 그리고 로키는 나를 배반했지. 로키는 내게는 주지 않으려던 것을 네게 선사했고, 나는 그에 합당한 대로 그 자에게 벌을 내렸을 뿐이다.”

토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피가 차갑게 식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와 로키가….”

토르는 차마 그 생각을 끝맺을 수조차 없었다.

“로키 그 자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었더라면, 애초에 네가 태어날 일조차 없었을 게다.”

오딘이 내뱉었다.

“앙심과 질투심 때문이었군요.” 발두르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오딘이 자리로부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오딘은 홀에 몸을 의지한 채 비틀거리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토르 쪽으로 내딛었다.

“이제 토르 너도 그 자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오딘이 으르렁거렸다.

“로키는 괴물이고, 왕국의 모든 사람들이 머지않아 그 사실을 알게 될 거다. 사람들은 그 자의 머리를 요구할 것이고, 너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할 것이다. 너는 그들의 왕이기 때문이지.”

“저는 절대 로키를 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토르가 고함을 질렸다.

발두르가 몸을 움찔했지만, 오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로키가 파괴할 때도 말이냐? 살인할 때에도? 로키는 온 세상을 역병처럼 휩쓸고 지나갈 것이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을 삼켜 버릴 것이다. 숨쉬는 것 만큼이나 쉽게 인류를 태워 버릴 테지.”

“싫습니다!”

“묠니르로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네 국민들을 구하고, 네 가치를 증명해 보이거라. 내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아들이 되어 보거라.”

“절대 그러지 않을 겁니다.”

토르가 단호하게 고개를 뒤흔들었다.

로키가 어떤 존재이든, 로키가 무슨 짓을 했든, 토르는 그를 사랑했다. 토르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죽일 수 없었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었고, 그러한 생각을 머리 속에 집어 넣어 준 아버지가 증오스러웠다.

발두르는 둘 중 누구에도 시선을 주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토르는 발두르 또한 증오하고 싶었다. 하지만 발두르도 토르와 마찬가지로 그저 이 계략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오딘은 그들 모두를 서로와 겨루도록 만들었고, 발두르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도구로서 쓰였을 뿐이다. 발두르 또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권력에 매달리기 위해 얼만큼이나 타락할 수 있을지를, 자신을 거부한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할지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한심한 놈.”

오딘이 토르에게서 몸을 돌렸다.

“적어도 너는 이제 절대 로키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그 자에게 배어 준 아이 또한 절대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을 것이고.”

“아이라니요?”

발두르가 충격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로키가 아이를 가졌다고요?” 토르 역시 되풀이해 물었다.

귀에 들리는 말을 차마 믿을 수가 없었다. 토르는 대회당에 들어서던 로키의 모습이 얼마나 환하게 빛나고 있었는지를 기억해 냈다. 그 때만 해도 로키가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에, 토르가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로키가 다른 이유로 행복해하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자기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으로 인해….

“그 사실을 알고도 당신은 날더러 그런 짓을 하도록…”

“내가 가지지 못 한 것을 네가 가지도록 해 줄 이유가 뭐가 있지?”

오딘이 침착하게 말했다.

토르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앞으로 뛰쳐나가 아버지를 붙들었다.

토르는 오딘의 입 위에 손바닥을 단단히 죄었다. 그의 입을 다물리고 싶었다.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모든 잔인한 말들을 그대로 다시 그의 입 속에 쑤셔 넣어 주고 싶었다. 오딘이 몸부림을 쳤지만 토르는 손아귀를 놓지 않았다. 그 늙은이가 마침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토르는 손을 더더욱 단단히 죄었다. 오딘의 축 늘어진 손에서 홀이 빠져나와 바닥 위로 떨어졌다. 토르는 그제서야 손을 놓아 주었다.

토르는 오딘의 몸을 다시 의자 위에 내려놓은 후 조용히 그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

발두르가 희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발두르가 토르의 곁에 와 섰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죽었습니다.” 토르가 말했다.

자신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데 대해 공포심이든, 어떠한 감정이든 느껴야만 할 것 같았지만, 토르는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발두르가 무슨 짓을 할지 두렵지조차 않았다. 완전히 무감각한 느낌이었다.

발두르가 자신의 목을 친 후 왕관을 대신 차지하려 든다고 할지라도, 토르는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아버지는 토르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시켜 버렸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발두르가 토르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당신이 우리의 왕이 되었군요.”

발두르가 아까 전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때와 똑같이 손을 내밀어 보였다.

토르는 그 손을 맞잡았다.


*


오딘의 장례식과 토르의 대관식은 같은 날에 이루어졌다.

발두르는 흠잡을 데 없이 거짓말을 했다. 오딘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으며, 그가 다치는 것을 막으려 토르가 그를 붙들어 주려 했으나, 이미 그들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발두르는 비탄에 잠겨 있었고 그 누구도 발두르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토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르의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그의 어깨는 무거웠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비통의 모습으로 보았고, 토르가 아버지를 애도하고 있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 누구도 로키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토르의 머리 위에 왕관이 씌워졌다. 토르는 몸을 떨었다. 그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토르는 이 사람들의 통치자도, 지도자도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토르는 그들의 왕이었다.

종이 울려 퍼졌다. 산산조각으로 부숴진 왕국을 가로질러 그 소리가 퍼져 나갔다. 연회도, 춤도, 색색깔의 화려한 의복도 없었다. 대관식에 참석한 귀족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축하하는 대신 그들은 옛 왕을 땅에 묻었다.

성 바깥에서는 로키의 불이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더 이상 태울 것이 남아 있지 않았을 때조차 불길은 계속되었다.

요르드는 검게 시들어 버리고 그을린 자국이 남은 대지를 눈에 담을 때마다 몸을 움찔했다. 이제야 토르는 왜 어머니와 로키가 결코 친근한 사이가 될 수 없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분쟁은 오딘이나 오딘의 장난질보다도 훨씬 더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그것이었다. 요르드가 지은 모든 것을 로키는 파괴했다.


*


끝나지 않는 불길이 이어진 지 나흘 째, 토르는 자문회를 소집했다.

어머니와 발두르, 그리고 전 왕비 프리가가 그의 자문이었다. 그 셋이 토르가 알고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이들이었다.

“이 불길이 언제 끝날 것 같습니까?”

토르가 바깥에서 날뛰는 불꽃을 향해 손을 가리켜 보았다.

“멈출 수조차 있는 것일지 모르겠군.” 요르드가 대답했다.

“로키가 제게 화가 난 것일까요? 그래서 이러는 건가요?”

토르가 질문을 던졌다.

토르는 이 파괴 행위를 이해해 보고 싶었다. 로키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 하는 짓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아무리 잔혹한 행위라 할지라도, 토르는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혼돈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이러한 혼돈을 일으킨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상태이다.” 요르드가 말했다.

프리가도 그 말에 동의했다.

“로키는 거의 백 년 동안 속박되어 있었고, 그의 능력 또한 억눌려져 있었지. 그 시간 동안 로키는 다른 일들에 집중했고, 자신의 마법에 집중했어. 로키도 그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지 모를 게다.”

“그래서, 로키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왕국이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소리인가요?”

발두르가 물었다.

발두르는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의 팔은 붕대에 감긴 채 팔걸이에 걸려 있었다. 토르는 그에게 해를 끼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발두르가 오딘의 방에 들어서려는 자신을 저지하려 했을 때 토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토르는 자신이 앞으로 다시는 제정신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토르는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죽였고, 그에 대해 아직까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로키의 목숨을 거두어야 합니다.”

요르드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로키가 태고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사의 존재는 아니지요. 저 불꽃도 그와 함께 죽음을 맞을 겁니다.”

프리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안 돼요.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에요.”

요르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대지가 고통받고 있어요. 토르의 국민들도 고통받고 있지요. 부탁입니다. 이 일은 끝을 맺어야만 해요.”

“며칠만 기다려 보는 것이 어떨까요.”

프리가가 제안했다.

“며칠만 더 기다려 봐요. 그 때면 로키도 다시 제정신이 들지도 몰라요.”

요르드와 프리가가 결정을 내려 달라는 듯, 토르 쪽을 바라보았다. 프리가의 얼굴에는 애원이, 요르드에게는 단호한 결의가 떠올라 있었다.

“일단은 기다리도록 하지요.”

토르가 대답했다.

“로키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게 될런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하지요. 그러지 못한다면…”

“그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발두르가 물었다.

발두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질문을 했다면 토르는 그 자에게 주먹을 내질러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형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토르도 알고 있었다. 발두르는 그의 성질을 돋우기 위해 그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토르가 나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물어 온 것이다.

토르의 머리 위에 왕관은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그 왕관은 아무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훔쳐 온 황금에 지나지 않았다. 원하기만 한다면 그 왕관을 반으로 깨부순 후 부숴진 조각들을 내다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통치자로서의 무게마저 깨부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토르는 자신의 국민과 자신의 영지에 관심을 쏟아야 했다. 그들을 보호해야 했다. 어머니의 대지가 고통받고 있었고, 그것이 토르의 우선 순위가 되어야만 했다. 토르는 어머니를 보호해야 했다.

토르는 로키를 보호하기를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너는 로키에게 접근할 수 있다.”

요르드가 입을 열었다. 요르드가 토르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도록 했다. 요르드의 얼굴 위에 불길이 남긴 흉터를 보기가 괴롭기 그지없었지만, 토르는 그것을 감내했다.

“토르, 너는 번개이며 천둥이다. 너는 안전할 게다. 너는 묠니르를 가지고 있고, 그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묠니르로 로키를 죽일 수 있을까요?”

발두르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자신의 아들의 말에 프리가가 작게 비명 소리를 냈다.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토르는 생각했다.

“묠니르는 마법이 깃든 무기이지. 묠니르는 실패하지 않는다. 토르가 죽음을 의도한 채 묠니르를 들어올린다면, 그가 일격을 가하는 어떤 존재이든지 죽음을 맞게 될 거야.”

요르드가 조용히 대답했다.

“아버지가 우리더러 갖추기를 바란 가치가 바로 그런 것이었나요?”

발두르의 목소리가 분노로 차 올랐다.

“발두르, 네 아버지는 제국을 통치했다.. 그는 자신의 업적을 그대로 이어받게 될 자식을 원했지.”

프리가가 위로하듯 말했다.

토르는 몸을 떨었다. 자신이 오딘의 면모를 이어 받았다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하기 싫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오딘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살해했다. 그는 난쟁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을 꿈꿨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기심으로 로키의 불이 이 땅을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토르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토르가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아버지가 물려준 전쟁과 피의 유산 밖에 없었다.

“아이는 어떡하고요?”

발두르가 물었다.

“정말로 당신의 아이까지 죽게 만들 수 있나요?”

발두르의 폭로로 인해 방 안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토르는 어머니 쪽을 슬쩍 돌아 보았다. 어머니의 표정이 돌처럼 단단히 굳어져 있었다.

“로키와 동침했구나.” 어머니가 비난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토르는 부정하지 않았다.

“로키와 동침해서, 그에게 아이를 배어 주었구나!”

요르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거기에는 사나운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토르, 이 멍청하고, 바보 같은 아이 같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로키는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로키는 사랑이라는 것은 모르는 존재이다. 그런데 너는 그 자와 아이를 만들어 내고 말았구나! 로키는 그 아이를 독으로 물들였을 거다. 그 자가 손을 대는 모든 것을 독으로 물들여 버리듯이 말이다!”

요르드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토르는 그 모습을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에게서 널 지켜주려고 지금까지 애써 왔다!”

요르드가 외쳤다.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토르는 심장이 산산조각으로 부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어머니를 배신했고, 자신의 왕국을 배신했다. 이기심에 가득 차 로키만을 쫓은 덕에, 그는 자신에게 소중했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자신을 절대로 용서해 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로키를 무너뜨리고 이 끔찍하고 악독한 일에 끝을 낸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로키의 무덤에 로키를 향한 감정을 함께 묻어 버린다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토르가 어머니의 손길로부터 몸을 떼어 내며 말했다.

“저는 이 나라의 왕이고, 왕으로서의 의무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은 토르 자신의 귀에조차 공허하게 들렸다. 그 말에 얼마나 확신을 심으려 애써 보든 마찬가지였다.


*


토르는 비를 부르려 시도했다.

토르는 예전에도 몇 번이고 하늘을 열어 비가 쏟아지도록 만든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가 찾아오지 않았다. 성벽을 둘러싼 불길로부터 올라온 검댕과 연기로 인해 하늘은 탁했다. 하지만 그 어두운 하늘 뒤로 구름은 몰려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르는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토르의 감정과 함께 천둥과 번개는 찾아왔다가 다시 떠나갔다.

어머니의 말이 그의 머리속에서 메아리쳤다. “너는 번개이며 천둥이다. 너는 안전할 게다.”

하지만 토르는 무감각했다. 마음 속에 공허만이 들이 찬 이상 토르는 폭풍을 불러올 수 없었다.


*


엿새 째 되는 날 프리가가 토르를 찾아왔다. 토르는 성의 흉벽에 올라선 채, 더이상 파괴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땅 위로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불꽃과 폐허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토르, 요르드와 발두르가 네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자문을 준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로키를 변호하기 위해 왔단다.”

토르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불길은 사그라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토르는 그 불길의 원인이 된 로키가 증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로키는 널 사랑해. 그가 널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프리가가 말했다.

토르는 쓰디쓴 웃음을 터뜨렸다. 로키는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이제는 명백해 보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경고하려 했다. 그를 비통으로부터 지켜 주려 했다. 하지만 토르는 자신의 생각에 너무도 확신에 차 있었다. 토르는 로키에 관한 일에서는 그 누구의 경고도 귀기울여 듣지 않았고, 지금 그 대가를 톡톡이 치르고 있었다.

“왕비님께서 사랑에 대해 뭘 알죠?”

토르가 물었다.

“로키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왕비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로키가 당신을 제 아버지께 팔아 넘겼죠. 포상품으로 주고 받는 말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로키와 그의 계략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지금 아무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시선 한 구석에서 프리가가 몸을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토르의 말은 잔인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임에는 틀림 없었다. 로키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자기 자신만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러운 계략가인지, 프리가가 더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나을 것이다.

“로키가 널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프리가가 단호하게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토르는 고개를 흔들었다.

로키가 자신을 사랑했다면 멈췄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로키는 언제나 영리했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을 조종하고는 했다. 로키가 정말로 무슨 존재인지 똑바로 직시하기에 토르는 너무나 깊게 사랑에 빠져 있었다. 토르는 로키의 왜곡과 로키의 거짓말을 모두 받아 들였고, 로키가 도망치기라도 할까 봐 그의 과거와 그의 몸에 깃든 마술에 대해 절대 캐물어 보지 않았다.

이제 토르는 로키와 두 사람이 나누었던 모든 것에 대해 자신의 심장을 굳혀 버렸다.

벌써 엿새가 지났고, 아직도 불길은 날뛰고 있었다. 그리고 토르는 이 왕국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로 맹세했다.

“로키는 그저 아버지의 창부가 되지 않고 싶어했을 뿐이에요. 로키는 평온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했을 뿐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 절 이용했지요.”

로키에게 있어 토르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토르는 그저 유용한 존재였을 뿐이다. 로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들 중 누구든 이용하려 들었을 것이고, 그 중 토르만이 로키의 유혹에 꼬여 넘어갈 만큼 멍청했을 뿐이었다.

어깨에 부드러운 손길이 와 닿아, 토르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그렇게 믿니?”

프리가가 조용히 물었다.

토르는 잠깐 망설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믿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아이는?”

프리가가 다시 물었다.

“그 아이 또한 그저 계략이나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고 정말로 믿니?”

토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토르는 불타오르는 땅과, 자신 왕국의 잿더미를 응시했다. 마침내 프리가는 그를 고통 중에 홀로 남겨둔 채 떠났다.


*


사람들이 황금 성문 앞으로 무리 지어 몰려 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곡식이 파괴되었고 집은 폐허가 되었다. 음식이 모조리 고갈되는 바람에, 토르는 어머니를 겨우 설득해 영원한 여름철만이 흐르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 식량을 가지고 오도록 부탁했다. 국민들이 굶어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토르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 보았고, 학자들과 마술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관들과 예언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로키의 불은 멈출 수 없었다. 로키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로키를 끝내는 것이었다.

토르는 매일 묠니르를 찾아 갔다. 토르가 들를 때마다 묠니르의 노래는 더 강해져 갔다. 그 망치는 이미 한 번 로키의 피를 맛본 적이 있었고 그것을 더더욱 갈구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말들이 묠니르의 노래와 한데 뒤섞여 화음을 이루었다. 로키가 얼마나 끔찍한 괴물인지 알게 된 지금, 사람들은 로키의 머리를 가져와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토르는 더 위대한 왕이 될 수 있다. 더 영예로운 왕이 될 수 있다. 토르는 자신의 영토를 유린하는 악을 무찌를 수 있다. 손에 들린 묠니르만 있으면 그것은 쉬운 임무가 될 것이다.

왕이 된 지 9일째 되는 날, 토르는 결정을 내렸다.

토르는 말에 올라탔고 묠니르를 집어 들었다.

그는 로키를 찾아 파멸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불꽃 한가운데로 말을 달려 갔다.


*


로키는 맑고 푸르른 호수 옆에 앉아 있었다. 로키는 그 동안 물 가장자리에서 지냈다. 그 곳이 불길에 타 들어가지 않을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호수 가장자리의 나무들은 이미 불에 붙어 있었다. 로키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로키가 발을 디디는 그 어디든 불길이 번져 나갈 뿐이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런 모습으로 있은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다. 로키는 자신을 어떻게 제어해야 하는지 한 번도 제대로 알았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 상황은 훨씬 더 심각했다. 로키는 필멸자들의 수중에서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종 생활을 했고, 자신의 속박에 안심한 채로 그 긴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로키가 계획한 대로만 이루어졌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왕위와 함께 피로 맺어진 권리 또한 토르에게 전해졌을 것이고 로키는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토르는 절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로키의 능력을 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르는 거인들을 노예 삼지도, 영토를 정복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토르는 자신 선조들이 남긴 상흔을 치유해 주려 했을 것이다.

로키는 토르를 위해 아이를 낳아 주었을 것이고, 토르가 그를 떠나간 후에도 그 아이가 그 피의 권리를 물려 받았을 것이다.

이제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제 더 이상 그 속박은 없다. 그리고 로키는 이제 용서받기에는 너무나 큰 파멸을 초래해 버렸다.

말발굽 소리가 들려와, 로키는 고개를 돌렸다. 그것이 토르일 것임을 로키는 이미 알고 있었다.

토르만이 자신의 불길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토르는 폭풍으로 만들어진 존재였다.

토르는 로키가 이 땅을 파괴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도 고결한 존재였다. 토르는 가능한 만큼 최대한 시간을 허해 주었고, 로키는 그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로키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받아 들였고, 토르의 서사시에 자신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지를 이미 수용했다.

로키의 누이, 죽음의 여신이 그를 찾아 오딘의 하직 소식을 알렸다. 죽음의 여신은 로키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려 주었으며, 자신의 자리 곁에 로키와 로키의 아들을 위한 자리 또한 마련해 놓으리라고 약속했다.

토르가 그를 향해 말을 달려 왔다. 토르의 허리띠에는 묠니르가 매달려 있었고, 그의 머리에는 아스가르드의 왕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의 말이 겁난 것처럼 그을린 땅을 발굽으로 긁었지만, 도망치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들 주위에 불에 삼켜지지 않은 곳은 호수밖에 없었다.

“네가 올 줄 알았어.”

로키가 말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오딘은 로키를 괴물로, 토르가 자신의 왕위를 보전하기 위해 살해해야만 하는 괴물로 만들었다. 시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일이었다.

로키는 토르가 말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는 도망가지 않았다. 로키가 도망가는 곳 그 어디든 토르는 그를 찾아낼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마침내 내가 무슨 존재인지 알았구나. 왜 네 어머니가 내게서 널 지키려 했는지도 알았을 테고. 내가 그저 마술사보다는 더한 존재라는 사실도, 내가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알았지.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되었구나.”

로키가 팔을 벌려 자신의 모든 비밀을 드러내 보였다. 단 하나만을 제외한 모든 비밀을. 로키는 두 사람의 아이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토르에게 그런 비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었다.

“로키….”

토르가 그를 향해 망설이며 다가왔다.

토르는 로키가 공격을 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로키에게는 더 이상 맞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난 너와 싸울 생각 없어, 토르. 내가 끔찍한 일들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네가 날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로키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호수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주위를 휩싸고 있는 불길에도 불구하고, 이 곳은 너무나 고요했다. 로키는 배 위에 두 손을 대고 누르며, 눈을 감은 채, 자신이 계획했던 미래와 자신이 가졌던 꿈을 떠나 보냈다. 로키는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토르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로키는 물 가장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토르의 일격을 기다렸다.

“어서 해.”

로키가 말했다.

“불길을 꺼 주렴.”

토르가 묠니르를 손에 들어올리는 순간 공기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깔끔한 죽음이 될 것이다. 딱 한 번의 일격이면 충분했다.

로키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묠니르의 소리가 휘파람처럼 공기를 가르는 것이 귀에 들려 왔고, 타격을 기다리는 로키의 몸이 팽팽하게 얼어 붙었다.

하지만 그 대신 묠니르는 그의 몸을 지나쳐 날아갔다. 토르는 호수 쪽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묠니르를 던졌다. 물이 후두둑 튀어 올라 묠니르를 삼켰다. 망치가 가라앉는 동안 잔물결이 고요한 호수 표면을 타고 번져 나갔다.

그리고 나서, 침묵만이 흘렀다.

토르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토르의 팔이 로키를 감싸 안아 왔다.

“사랑해요.”

토르가 속삭였다.

“제발 이러지 마!” 

로키는 절망적으로 숨을 턱 내뱉었다.

로키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각오를 하고 있었다. 죽음의 여신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녀를 따스하게 껴안아 줄 생각이었다.

로키는 토르가 자비를 보여 주기를, 자신을 이 곳에서 죽여 주기를 바랐다. 아무 목격자도 없는 이 곳에서 말이다. 죄인으로서 거리를 행진해야 하는 것이나, 공개 처형을 맞아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끔찍했다. 로키는 국민들이 자신의 죽음에 환호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토르가 자신을 아스가르드로 데리고 간다면, 로키는 그 사람들의 얼굴을, 로키의 피를 보기 위해 갈구하는 그들의 얼굴을 목격해야만 할 것이다.

“당신이 무슨 존재이든지 상관 없어요.”

토르가 말했다.

“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요, 로키.”

“나는 멈출 수 없어, 토르. 난 멈출 수 없어.”

로키는 토르의 팔 안에서 몸을 덜덜 떨었다. 로키는 토르가 이 모든 일을 절대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직시하기를 기다렸다. 로키는 제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로키는 혼란이었고 로키의 몸 속에 깃든 불길은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질서 그 자체였다.

“알아요, 저도 알아요.”

토르가 속삭였다. 토르가 로키의 머리 위로 입을 맞추었다. 눈물이 흘러 내려와 어두운 머리카락 위로 섞여 들었다.

로키는 흙 위를 움켜쥔 손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로키는 눈을 들어 호수 위로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폭풍우의 냄새는 그가 너무도 애타게 바랐던 그것이었다. 그것은 토르의 냄새였다.

비가 계속 쏟아져 내렸다. 그 비 속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번개도 없었고, 천둥도 없었다. 그저 땅을 규칙적으로 두드리는 빗줄기 뿐이었다.

“봐요.”

토르가 말했다.

토르가 로키의 고개를 젖혀 올려 호수 쪽을, 그리고 불타오르고 있던 나무들 쪽을 보게 했다.

빗줄기가 그 불길을 잠재우고 있었다.

“로키, 우리는 어떤 온전한 것의 두 반쪽이에요.”

토르가 말했다.

“제 비, 그리고 당신의 불길. 당신이 파괴한 곳을 제가 진정시키죠. 그리고 그 위로 새로운 생명이 깃들 거에요.”

로키가 눈물을 떨구어 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총애했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토르도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다시 한 번 진지해졌다.

토르가 로키의 배 위에 손 하나를 올려 놓았다.

“이 아이마저 희생시키려 했던 거에요?” 토르가 물었다.

로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알고 있구나.” 로키가 맥없이 말했다.

“아버지가 다 말해 주었죠. 제가 당신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까지 저주를 내렸다는 사실을 안 말해주고는 못 배기더군요.”

“내 목숨을 간청하기 위해 우리 아이를 이용할 생각은 없었어.”

로키가 말했다.

“그랬다 해도 너는 이 아이까지 죽여야 했을 걸. 내 일부가 깃들어 있는 아이니, 언제고 또다른 조그만 불길이 될 지도 몰라.”

“당신은 정말 오만하기 짝이 없는 멍청이에요.”

토르가 애정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토르는 로키의 얼굴 위에 늘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걷어낸 후 다시 한번 입을 맞추어 왔다.

로키는 그 입맞춤에 몸의 긴장을 풀어 내렸다. 로키는 지난 9일 동안 토르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매 번 잠이 들 때마다, 로키는 희망을 품은 채 잠에서 깨곤 했다. 자신이 아직 볼스타그의 여관 안의 침대에서 토르에게 안겨 있으며, 이 모든 것이 그저 끔찍한 악몽일 뿐이었다는 희망을. 하지만 다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불길 뿐이었고, 로키는 자신이 파괴한 모든 집들, 자신이 길거리로 내몰아 버린 모든 가정들과 함께, 자신을 향한 토르의 사랑 역시 파괴되어 버릴 것이란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파괴되지 않았다. 토르가 여기 와 있었고, 그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토르는 묠니르를 호수에 던져 버렸다.

로키는 입술을 떼고 토르의 몸을 밀어낸 후, 망치가 가라앉아 버린 호수 쪽을 쳐다보았다.

“내가 저걸 찾기 위해 칠 년의 세월을 고생했는데, 그냥 호수에다 던져 버렸어?”

토르가 요란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덕에 토르의 말이 놀라 땅바닥을 발굽으로 차기 시작했다.

“묠니르는 피에 굶주려 있어요. 내게 노래를 불러 왔죠. 당신의 머리를 어깨로부터 쪼개어 내 버리라고 내게 속삭이더군요.”

로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의 망치에 의한 신속한 처형, 그것 역시 로키가 각오하고 있던 일이었다.

묠니르는 전쟁의 무기였고, 오딘은 그 무기의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아들을 원했다. 로키는 오딘에게 그 아들을 찾아다 주었다.

로키도, 그리고 오딘도, 토르가 묠니르보다 더 강인한 존재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 어떡할 거야?”

로키가 물었다.

“나는 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고, 너도 날 자유롭게 풀어줄 수 없잖니.”

“당신을 풀어 줄 생각은 없어요.”

토르가 자신의 말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는 듯, 손을 더욱더 단단히 부여 잡았다.

“당신에게 새로운 속박을 부여해 줄 생각이에요.”

로키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토르는 그에게 자비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키는 여전히 이 왕국의 적이었다. 자신이 한 짓에 대해 대가가 따라야 할 것이다.

“감옥? 아니면 날 난쟁이들에게로 돌려 보낼 생각이니?”

“저는 당신과 혼인할 거에요, 로키.”

토르가 말했다.

“당신을 제 피에 속박할 거에요. 저는 당신이 사는 날만큼 살게 되겠죠. 제 필멸의 삶을 포기하고 당신과 영원히 머무를 거에요.”

로키가 떨리는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하지만 네 왕위는….”

로키가 말했다.

토르가 그런 짓을 하고도 왕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토르는 아스가르드를 거의 파멸 직전까지 몰아넣은 괴물과 혼인할 수 없었다. 그런 존재를 자신의 왕비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저는 한 번도 왕이 되기를 바랐던 적이 없어요.”

토르가 대답했다.

“제가 바란 건 당신 뿐이에요, 로키. 저는 농장에서 당신을 일 년에 한 번씩 보며 사는 삶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을 거에요. 당신을 볼 수만 있다면, 당신이 제게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죠.”

“언제든…” 로키가 숨죽여 말했다. “언제나 돌아 왔을 거야. 앞으로도 언제나 돌아올 거야.”

“좋아요.”

토르가 말했다. 그가 허리띠로 손을 뻗어 사냥칼을 빼내 들었다.

로키의 몸이 한번 더 얼어붙었지만, 토르는 그 칼을 자신의 손에 가져다 댔을 뿐이었다. 토르는 손바닥을 깊게 베었고 칼을 로키에게 건넸다.

“피의 마법.”

토르가 말했다.

“이것을 우리의 혼인 서약으로 삼도록 해요.”

로키는 칼을 잡았다. 손 안에서 칼이 무겁게 느껴졌다. 로키는 손바닥을 따라 칼날을 그었고, 상처에서 피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숨을 헉 들이켰다. 로키는 흙 위에 칼을 내려 놓았다.

토르가 자신의 손을 로키의 손에 맞댔다. 두 사람의 피가 섞여 들었다.

“당신은 제 거에요, 로키. 그리고 저는 당신 거에요.”

토르가 중얼거렸다.

“나는 네 것이고, 너는 나의 것이야.” 로키가 자신의 손을 토르의 손에 얽으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둘의 피가 한 데 섞이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 사이에서 마법의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모두 마법이 깃들어 있는 존재였다. 서로를 속박하기 위한 주문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둘의 입에서 나온 말과, 둘의 심장의 힘으로부터,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스며 내렸다.

토르가 다시 그에게 입맞춤을 했고, 결합을 완성시켰다. 로키는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다시는 절대로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당신을 집으로 데리고 갈게요.”

토르가 말했다.

로키는 자신이 토르를 어디든 따라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토르의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


토르는 로키를 팔에 안은 채 성으로 말을 타 돌아갔다.

토르는 자신의 국민들 사이를 가로질러 지나갔다. 사람들은 왕을 향해 환호했고 왕의 품에 안긴 남자를 향해 야유를 보냈다. 로키는 사람들의 말에 자신이 상처 받음을 보이고 싶지 않아 얼굴을 가렸다.

토르는 그를 결박하지 않았다. 로키는 토르를 믿었다. 자신이 함정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로키는 사람들이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안도할 수만 있다면 수갑과 사슬을 기꺼이 찼을 것이다. 물론 로키의 마법은 사슬로 억제할 수 없는 그것이었으며 로키는 언제고 자신의 결박을 녹여 버릴 수 있을 테니, 별반 소용 없는 조치이기는 했다.

무장한 경비가 그들을 대회당으로 호위해 갔다.

프리가가 왕좌에 앉아 있었다. 토르가 왕위를 비운 동안, 프리가가 그의 축복을 받아 왕위의 임무를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키는 프리가가 자신을 경멸할 것이라고, 자신이 초래한 불길과 파멸에 대해 비난의 소리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신 프리가는 왕좌에서 일어서 로키 쪽으로 걸어 왔다. 프리가는 로키를 껴안았다.

“평안히 지냈나요? 아이는 어때요?”

프리가가 물었다.

프리가가 이미 아이에 대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로키는 놀라지 않았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 중 로키가 가장 먼저 아이에 대해 털어놓았을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프리가였을 것이다. 로키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토르에게 고백하기 앞서 아이가 강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 기회는 이제 사라져 버렸다. 프리가도, 그리고 토르도, 아이의 존재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들어 버리고 말았다.

로키가 그렇게 오만하지만 않았어도, 자신의 승리를 그렇게나 확신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둘 다 건강하답니다, 왕비님.”

로키가 대답했다.

프리가가 그를 향해 따스하게 웃어 보였다. 머리가 어찔할 정도로 상냥한 미소였다.

프리가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토르에게 시선을 돌렸고, 환영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대는 어떠한가, 토르?”

“저는 퇴위하려 합니다.”

토르가 말했다.

프리가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프리가가 토르의 선언에 놀랐다는 기색을 보였다면 그것 뿐이었다.

“로키가 속박에서 풀린 것은 제 잘못입니다. 저는 왕이 되기를 원한 적이 없고, 제 행동 또한 제가 왕위에 오를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통치를 위한 왕의 의무를 실제로 마주했을 때 저는 그에 응하지 못했지요. 국민들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왕위에 오르지?”

프리가가 물었다.

“발두르.”

토르가 대답했다.

“발두르는 선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왕위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해 오기도 했지요. 발두르는 훌륭한 왕이 될 겁니다.”

프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가의 미소가 더 환해졌고, 로키는 그에 대해 뭐라 말을 첨언할 수 없었다. 어찌됐든 발두르는 프리가의 아들이었고, 프리가가 아들이 왕위를 물려받기를 원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딘의 유해한 영향력만 없었더라도 로키도 발두르가 훌륭한 통치자가 되리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토르 그대는 어디로 갈 계획인가?” 프리가가 물었다.

“어머니의 농장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토르가 대답했다.

“묠니르는?”

“호수 밑바닥에 잠들어 있습니다. 왕비님이나 발두르가 저를 필요로 하실 일이 있다면, 묠니르를 들고 우리 영토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서는, 그 저주받은 무기는 조금 더 안전한 곳에 놓아 두고자 합니다.”

프리가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가는 토르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로키 쪽을 응시했다.

로키는 갑자기 자신이 차라리 사슬에 매여 있었으면 했다. 토르와 프리가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은 자신에게 허락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를 허락해 주었다. 로키는 토르의 말 뒤에 묶인 채 끌려 돌아 왔어야만 했다. 토르의 팔 안에, 그가 위험으로부터 구조해 낸 처녀처럼 안겨 온 것이 아니라.

대가가 있어야만 할 것이다. 로키는 처벌 없이 도망칠 수 없었다.

“그리고 로키는?”

프리가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물었다.

“제가 로키를 데려 갈 겁니다.” 토르가 대답했다.

프리가가 잠시 동안 그를 뜯어 보았다. 그러더니 그녀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토르 그대의 감시 하에 유배살이를 하게 되는 것이겠군. 국민들도 그 처벌을 받아들일 것이네.”

프리가가 말했다.

토르는 손을 내려 로키의 손을 꽉 붙잡았다.

“로키와 제가 함께 속죄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더 적당한 처벌은 떠오르지 않더군요.”

토르가 말했다.

로키는 요르드의 농장 뒤 언덕에서 토르와 함께 몸을 누인 채, 그 곳에서 평생 이러고 있었으면 하고 꿈꾸었던 때를 떠올렸다. 로키는 왕 없이 살 수 있게 될 날을, 해묵은 속박 주문이 어깨에 무겁게 드리워지지 않게 될 날을 꿈꾸었다. 바깥 세상이 계속해서 철을 바꾸는 동안, 토르와 함께 영원한 여름철 속에 머무르게 될 날을 꿈꾸었다.

그리고 로키에게는 너무나 분에 넘치게도, 토르가 이제 로키의 그 꿈을 실현시켜 주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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