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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로키/번역]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 (6/16)

토르로키 / Thorki

"The Crown Prince and the Beast(왕세자와 야수)"

by triedunture


원문: https://archiveofourown.org/works/15267873


  • 작가님께서 번역은 출처를 포함하여 자유롭게 하라고 명시하셨습니다. (https://i.imgur.com/r6PfDqx.jpg)
  • 에시르 토르x요툰 로키 정략결혼 AU입니다. 구전동화 느낌이 살짝 끼얹어진 작품으로 이야기 중간중간에 화자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 로키를 비롯한 모든 요툰 종족은 인터섹스(자웅동체)라는 설정입니다. 엠프렉 언급이 있습니다.
  • 요툰헤임에는 성별의 구분이 없고 누구나 아이를 밸 수 있기 때문에, 어머니/아버지라는 단어 대신 (주로 동물 번식에서) 누가 씨를 뿌렸고 누가 새끼를 배었는지 칭하는 단어인 dam/sire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 단어들은 원문에서 사용한 의미와 가장 비슷한 단어인 '종빈/종모'로 번역합니다.



*    *    *



6장.


엷은 은색 달빛만이 하늘에 걸려 있을 뿐 사방에 드리운 어둠이 로키의 도주를 도왔다. 로키는 손에 부츠를 쥐고 귀중품 꾸러미를 벨트에 단단히 맨 채 맨발로 마구간까지 향했다. 가는 길에 로키는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구간 문 옆에 모자 달린 두꺼운 털망토가 걸려 있었고, 로키는 추운 날씨를 피하기 위해 그것을 챙겼다. 로키는 토르가 타는 법을 알려 주었던 암말을 조용히 채비시켰다. 로키가 어떤 방법으로 도망쳤는지를 발견하면 그 야만인은 격분할 것이 틀림 없다. 하지만 그 때 쯤이면 로키는 이미 멀리 떠나 있을 것이다.

로키는 상인이 드나드는 성문으로 말을 달려 갔다. 전해들은 대로 성문은 이 시간까지 활짝 열려 있었다. 우유 단지와 세탁물 더미와 향기로운 과일을 실은 수레가 안팎으로 드나들고 있었고, 로키는 두터운 털망토를 머리 위로 푹 뒤집어쓴 채 그들 사이로 들키지 않고 빠져나갔다. 로키는 숲이 있는 방향으로 말을 달렸고, 토르가 바로 전날에 자신을 데리고 갔던 길을 따라 갔다.

로키는 한참 동안 말을 달려 빽빽한 산 속 숲 깊숙이까지 들어갔다. 로키와 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오딘슨이 예상했던 대로 겨울의 얼어붙은 기운이 이미 도래하고 있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눈송이가 조금씩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갈수록 더 그 기세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눈발이 로키의 뺨을 때리는 자리가 얼얼해 왔지만, 로키는 계속 말을 달렸다. 한낱 추위 따위가 요툰헤임의 왕세자를 막을 수 없었다. 로키는 바이프로스트까지 도달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있었다. 내일 이 시간이면 로키는 아스가르드에서 멀리 떠나 있을 것이고, 끔찍한 아스가르드의 인간들과, 그 망할 놈의 정치 놀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야수 같은 왕자에게서도.

장갑을 낀 로키의 손이 말고삐를 꽉 움켜 쥐었다. 그 야만인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뭐가? 속이 다 시원했다. 어차피 그 거친 얼굴과 기묘한 두 눈을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거의 기억조차 못 하게 될 것이고, 그리워할 일도 없을 것이다. 오딘슨에게 억류되어 있던 지난 몇 주의 시간은 그저 희미한 기억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오딘슨을 대수롭잖게 생각하는지를 깊이 생각하느라, 로키는 숲을 가로질러 나무 사이사이로 자신을 쫓아오는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암말은 그 소리를 들었고, 추격자들을 피하기 위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로키는 황급히 말을 진정시키려 하다 그제서야 자신이 늑대 한 무리에 둘러 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키가 그랬듯이, 당신도 늑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냥하다가 본 적이 있을 수도 있고, 어느 귀부인의 아트리움에 전시되어 있는 박제를 본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늑대의 모습은 마음 속에서 지워 버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아스가르드의 늑대는 당신이 접했던 것들과는 매우 다른 동물이니까. 아스가르드의 늑대들은 무척 컸다. 무시무시한 존재들이었다. 악몽에나 나올 만한 그런 동물이었다.

로키는 그 거대한 검은 형체들이 숲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요툰헤임의 얼음 지대를 배회하는 흰늑대 크기의 두 배는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두려움으로 목구멍 안쪽이 죄어들기 시작했다. 로키의 시선이 침으로 번들거리는 날카로운 송곳니 쪽을 언뜻 향했다. 늑대 떼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귀에 들려 왔다.

“가만 있어.”

로키는 말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말은 이미 춤추듯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고, 그러더니 공포에 질린 소리로 히힝대며 번쩍 뒷다리로 일어섰다. 로키는 비명을 지르며 안간힘을 다해 고삐에 매달렸다. 하지만 로키는 아직 승마 초보자였고, 겁에 질린 말을 진정시키는 기술은 로키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었다. 늑대들이 달려들어 방금까지 로키의 발목이 있던 곳을 덥석 물고 말의 옆구리에 돌진하는 동안 로키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해 보려 애썼다. 순한 벨은 완전히 겁에 질려 버렸다. 벨이 이번에는 조금 더 난폭하게 앞다리를 번쩍 치켜들어, 로키를 안장 위에서 내던져 버리고 말았다.

로키는 눈 위에 거칠게 고꾸라졌다. 폐에서 숨이 쥐어 짜져 나가는 것 같았다. 로키는 땅을 마구 짓밟고 있는 말발굽에 밟혀 죽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반대쪽으로 기어 도망쳤다. 무의식적으로 로키의 손이 벨트에 매달려 있는 귀중품 꾸러미로 향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은 지금 상황에서 로키를 구해주는 데는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다. 말이 몸을 돌리더니 숲길을 따라 전속력으로 질주해 도망쳤다. 로키는 두려움에 차 부릅뜬 눈으로 벨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벨의 운명이 걱정된다면, 안심해도 좋다. 한 농장의 착한 소녀가 눈 덮인 들판에서 배회하고 있는 벨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벨은 그 아름다운 농장지에서 남은 나날을 보냈다. 벨에 대한 걱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하지만 그 걱정을 다시 로키에게로 돌려 보도록 하자. 다시 로키에게 돌아가서!)

늑대들이 로키를 둘러싸며 길게 울부짖으며 자기 무리들을 더 불렀다. 늑대 떼의 숫자가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두운 형체들이 그림자로부터 녹아 나와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로키는 게처럼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등에 거친 나무 껍질이 부딪혀 왔다. 나무에 올라갈 수 있을까? 로키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로 뻗어 나가는 어두운 나뭇가지들을 살펴 보았다. 손이 닿기에는 너무 높았다. 늑대 무리에서 가장 큰 놈이 로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놈의 주둥이 사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취 나는 숨결이 로키의 얼굴을 어루만질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로키는 눈을 꽉 감았다. 찰나의 순간, 로키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저 모든 것이 빠르게 끝나기 만을 기도했다.

하지만 그 때 무시무시한 외침이 숲을 가르고 메아리 쳐 왔다. 로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로키의 눈 앞에 드러난 형체는 늑대 만큼이나 거대하고 흉포했다. 그 형체가 늑대의 우두머리에게로 곧장 달려들더니 늑대가 무슨 조그만 개라도 되는 것처럼 옆으로 집어 던져 버렸다. 나머지 늑대 무리들이 맹렬하게 울부짖으며 침입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형체가 몸을 돌리는 순간 붉은색이 로키의 시야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 형체는 토르였다. 무장하지 않은, 사나운 모습의 토르. 늑대 떼를 맞서는 토르의 기묘한 두 눈이 열띤 푸른색을 띠고 있었다. 늑대 한 마리가 달려들어 팔을 물자 토르는 다시 한번 거친 고함소리를 내뱉었다. 토르가 겨우 흔들어 떨쳐 낼 때까지 그 놈은 토르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그 동안 다른 늑대들은 토르의 약점을 이미 파악한 것 같았다. 로키는 공포로 얼어붙은 채, 그 동물들이 한 몸처럼 공격을 개시하는 것을 바라 보았다. 늑대들이 토르의 옷을 잡아 찢고 팔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토르가 맞서 싸우기는 했지만, 머지않아 늑대들의 숫자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저 놈들은 오딘슨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것이다. 로키는 알 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긴박한 감정이 로키를 사로잡았다. 로키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가까운 땅 위에 놓여 있는 두꺼운 통나무를 발견했다. 로키는 그걸 손에 집어 든 후 토르의 손목을 물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그 놈은 고통으로 울부짖더니 그림자 속으로 달려 도망쳐 버렸다.

토르는 맨손으로 나머지 늑대와 싸웠다. 한 마리는 목덜미를 붙잡아 떨쳐 내고, 다른 놈은 갈비뼈 쪽을 걷어 찼다. 늑대 떼가 하나 둘 씩 낑낑대고 울부짖으며 후퇴하기 시작했고, 다친 상처를 핥아 치료하기 위해 숲 속 깊은 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로키는 여전히 통나무를 손에 움켜쥔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늑대들이 돌아올 까봐 두려웠다. 한참 동안 어두운 협곡 중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로키와 토르의 거친 숨소리 뿐이었다. 두 사람 주위로 무거운 눈발이 조용히 소용돌이치며 날리고 있었다. 마지막 늑대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보고 난 후, 로키는 토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토르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온 몸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로키를 응시하고 있었다. 묶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풀어져 내려와 있었다. 토르의 한 쪽 손은 옆구리 쪽을 단단히 누르고 있었고, 그 부분에 튜닉이 찢어져 있는 것이 로키의 눈에 들어왔다. 잔혹한 반달 모양의 물린 자국들이 토르의 피부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힘이 빠져나간 로키의 손아귀에서 통나무가 흘러나와, 바닥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토르가 힘겹게 숨을 몰아 내쉬며 로키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더니 입을 열었다.

“괜찮…”

토르가 눈을 깜빡였다. 그의 몸이 크게 휘청했다.

“괜찮아…?”

로키는 그 말에 대답할 시간조차 없었다. 토르의 눈이 감겨 닫혔고 숲의 바닥 위로 그의 몸이 털썩 고꾸라졌다. 토르의 황금색 머리카락과 헤진 붉은 망토가 눈 위로 아무렇게나 흐트러졌다.

“토르!”

로키는 황급히 달려가 토르의 몸 옆에 무릎을 꿇었다. 다리 살갗으로 배어 들어오는 추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눈 바닥이 토르의 피로 부분부분 붉게 얼룩져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로키는 토르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뺨을 두드려 보았다. 하지만 그 푸른 눈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포로로 처음 잡혀와 헬라의 황금 고리 아래 능력을 박탈당했던 순간부터, 로키는 자신의 마법을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토르가 눈 위에다 피를 떨구어 내고 있는 지금, 로키는 다시 주문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로키는 작은 속삭임 하나 만으로 그 토르의 상처를, 로키를 지켜 주기 위해 입은 그 상처를…치료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로키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지고 있는 천으로 피를 멈춰 보려 시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로키는 어깨에서 털망토를 떨쳐낸 후 입고 있던 튜닉을 벗었다.

“여기서 죽게 놔 둬야 할 텐데.”

로키는 튜닉을 길게 찢으며 토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날 따라오지 말았어야지. 날 그냥 가도록 내버려 두었어야지! 이 참아 줄 수가 없는, 정신 나간…!”

로키는 토르의 힘없는 얼굴을 내려다보며 말을 삼켰다. 이 야만인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욕설을 퍼붓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로키는 마른침을 삼킨 후 가지고 있는 허술한 도구로나마 토르의 상처를 감아 주기 시작했다.

‘조그만 자’ 로키는 왜 그렇게 했을까? 토르를 쓰러진 그 자리에 그냥 놔 두고 자유를 찾아 떠나도 되지 않았을까? 로키는 아마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오딘슨이 자신의 적이기는 하지만, 오딘슨은 로키를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위험에 내던졌고, 그를 그냥 그 자리에 죽게 놓아 두는 것은 자신의 명예를 먹칠하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대답은 명확한 대답은 아니었다. 토르의 부서진 몸을 천으로 감아주고 있는 로키의 손이 왜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지 설명해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혹은 로키가 열심히 일에 착수하는 동안 얼굴 위에서 얼어붙어 버리려 하고 있는 눈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로키는 토르의 상처를 돌보아 준 후 토르의 팔을 어깨 위로 두른 채 그의 몸을 성까지 끌고 갔다. 토르의 몸이 워낙 거대하고 거추장스러웠기에, 그 귀환길은 로키의 적잖은 힘에도 불구하고 느린 여정이었다. 하지만 로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밤의 어둠이 두 사람 주위를 감싸오는 동안, 로키는 눈 위에서 토르를 지탱한 채 그 기나긴 거리를 걸어서 돌아갔다.

“그 늑대들이 다시 돌아오면….”

로키가 헐떡이는 목소리로 토르에게 일렀다.

“널 눈더미 위에 놓아 두고 도망쳐 버리고 말 거야.”

그 말은 로키 스스로의 귀에조차 공허하게 들렸다. 늑대들이 그 말을 시험해 보기 위해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이 행운이었다.

성문에서 또다른 행운 한 점이 기다리고 있었다. 헤임달이 그 곳에 선 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울부짖는 눈보라를 내다보고 있었다. 그 준수한 얼굴에 염려가 잔뜩 떠올라 있었다. 늦은 시간, 이미 다른 시종들과 상인들은 자기 일을 끝내고 사라진지 오래였고, 헤임달만이 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왕자님?”

로키의 느릿느릿한 발소리를 들은 헤임달이 어둠을 향해 불렀다.

“거기 왕자님이십니까? 왕세자님을 찾으셨나요?”

“나야.”

로키가 딱딱 맞부딪치는 이 사이로 말했다. 토르의 몸과 털망토가 따뜻하기는 했지만, 없어진 튜닉을 대신해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까지 토르를 지탱해 오느라 어깨가 쑤셔 왔고, 온 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몇 걸음만 더 가면 된다. 몇 걸음만 더. 로키는 한 쪽 무릎이 꺾이는 것을 느끼며 숨을 턱 내뱉었다.

“제발…왕자를 도와 줘. 많이 다쳤어. 그는….”

헤임달이 황급히 다가와 토르의 몸을 대신 떠안는 동안 로키는 거의 쓰러질 뻔 했다. 두 사람은 함께 힘을 합쳐, 눈에 띄지 않게 몰래 토르를 그의 방까지 데리고 갔다. 오딘슨의 사저에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로키가 주위 세간을 둘러 볼 겨를은 없었지만, 오딘슨의 방은 왕족의 그것 치고는 매우 소박했으며 그럼에도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헤임달이 토르를 침대 위에 올려 놓은 후, 왕자의 성하지 못한 몸 위로 손을 쓸어 보았다. 손가락으로 상처를 하나 더, 그리고 또 하나 더 발견해 나가는 헤임달의 얼굴이 수심으로 더더욱 깊이 찌푸려졌다.

“늑대였나요?”

토르의 살갗 위의 물린 자국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헤임달이 로키에게 물었다.

“아주 커다란 놈들이었어.”

로키가 내뱉었다. 로키의 눈이 침대보 위에 꼼짝 없이 늘어져 있는 토르의 몸을 훑었다.

“왕자는 괜찮을까?”

“왕자님은 고집스러우신 분이시지요. 강인하기도 하시고요.”

헤임달이 위안을 전하려는 듯 다정하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십시오. 잘 치유되실 수 있도록 해 드릴테니까요.”

로키는 눈을 깜빡였다. 헤임달이 자기 넋 나간 표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물론, 오딘슨이 죽든 말든 난 상관 없어.”

로키가 재빨리 말했다.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헤임달이 눈썹을 치켜들더니 더 깊게 웃었다.

“그러셨군요.”

이번에도 로키에게는 행운이 따랐다. 다 사람 다 토르의 상처를 돌보느라 바빠져 대화는 거기서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로키가 임시변통으로 만들었던 붕대가 풀려져 나가고, 헤임달이 성의 저장고에서 슬쩍 빼돌려 온 리넨 천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헤임달은 진통 효과가 있는 팅크제와 치유를 빠르게 해 준다는 고약도 가지고 왔다. 토르의 튜닉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는지라, 헤임달은 상처를 좀 더 잘 살피기 위해 옷을 마저 찢어 버렸다. 마법의 도움 없이 상처를 치유해 본 경험이 없었던 로키는 그저 헤임달이 지시하는 대로 순순히 따랐다. 헤임달이 시킨 대로 약을 발라 준 후 로키는 헤임달을 도와 상처를 붕대로 감쌌다.

“이제 왕자님께서 일어나실 때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요.”

모두 마친 후 헤임달이 말했다. 헤임달은 다음 할 말을 찾느라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방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왕세자님?”

“당신만 괜찮다면, 여기서 함께 기다리고 싶군.”

로키가 대답했다. 로키는 헤임달이 토르의 이마 위에 올려놓은 젖은 헝겊으로 핏자국을 닦아 주었다. 이 야만인에게 가까이 붙어 있으라고 위장을 긁어대며 재촉하는 이 기분은 대체 무엇일까? 늑대의 공격으로 인한 충격의 여파임이 틀림없다고, 로키는 생각했다. 그런 시련을 겪고 난 후에 사람들이 서로와 바싹 뭉쳐 있으려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생존 본능일 것이다. 그 뿐이다.

헤임달의 기괴한 창백한 눈이 로키를 빤히 응시했다.

“다시 떠나려 하지 않으실 겁니까?”

로키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 눈보라 중에? 그러지는 못 할 것 같군.”

로키는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눈발이 쉬지 않고 흩날려 창문을 완전히 가려 오고 있었다. 그래, 지금 도주를 시도하는 것은 헛걸음이 될 것이다. 로키는 낙담했다. 이미 로키는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적어도 한동안은 말이다.

“그렇군요. 함께 있을 사람이 있어 기쁩니다.”

밤은 길었다. 헤임달은 마침내 토르의 침대 곁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아 잠에 들었다. 로키 또한 모든 일에 경솔해질 만큼 지쳐 있었는지라, 침대 발치 쪽에 털망토를 베개 삼은 채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로키는 잠을 설쳤고, 무슨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잠에서 깼다. 바깥에서 구슬프게 울부짖는 바람 소리, 오딘슨의 고통 어린 신음 소리, 헤임달이 꿈 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 벽난로 안에서 장작이 쓰러지는 소리.

마침내 로키가 완전히 깨어났을 때, 눈이 내려앉은 창문 사이로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에 로키를 깨운 것은 웃음 소리였다. 머리를 든 로키는 토르가 깨어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토르는 로키를 내려다보며 입을 꾹 다문 채 웃고 있었다. 웃음 덕에 상처가 아픈지 붕대 감긴 옆구리를 움켜쥐면서도, 토르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래?”

로키가 물었다.

“왜 웃는 거야?”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던 날과 옷차림이 비슷하길래.”

토르가 오래 사용하지 않아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토르가 로키의 맨 가슴 쪽으로 손짓을 해 보였다.

“추워 보이는군. 재밌네.”

“안 재밌어.”

로키는 일어나 침대 위에 똑바로 무릎을 꿇고 앉으며 얼굴을 찌푸렸다. 로키는 검은 가죽 바지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치고 있지 않은 자기 몸을 내려다 본 후, 털망토를 집어 어깨에 단단히 둘렀다. 로키는 헤임달이 계속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나지막하게, 하지만 날이 잔뜩 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참고로 네 상처를 묶어 주기 위해 내 튜닉을 희생시켰어. 그러니 이게 무슨 에시르 식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웃어 대지 마. 넌 죽을 수도 있었다고.”

“하지만 안 죽었지.”

토르가 씩 웃었다가, 그 조그만 움직임마저도 다친 근육을 들쑤셔 오는지 몸을 움찔했다. 토르가 웃음을 거두더니 말했다.

“당신도 어제 도망칠 수도 있었을 텐데.”

로키는 입술을 미묘하게 비틀며 토르의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안 도망쳤지.”

로키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둘은 동시에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토르가 목을 가다듬더니, 짐짓 가벼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다음 번에 도망치려는 시도를 할 때는, 너무 눈이 많이 내리거나 너무 위험하지는 않은 도주로를 선택해 주었으면 좋겠군.”

로키는 흥 소리를 냈다. 로키는 오딘슨이 깨어나서는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두려웠고, 감히 말썽을 피웠다고 로키에게 고함을 질러 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 대신, 두 사람은 어젯밤에 무슨 유쾌한 모험이라도 겪은 듯 농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네가 날 좀더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려고?”

“그래 주면 고맙겠군.”

토르의 미소지은 얼굴이 아래로 향했고, 두 눈이 침대보 위를 응시했다.

“당신은 아마 계속 도망치려 시도하겠지. 당신의 자존심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 하지만….”

토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토르의 손이 다시 한 번 붕대가 감긴 옆구리를 감쌌다.

“다음 번 시도를 하기 전에, 적어도 내가 다 치유될 때 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도 될까, 왕세자?”

“로키라고 불러.”

로키의 그 대답에, 두 사람 다 놀라서 잠깐 침묵에 빠져들었다.

토르는 어리둥절해 보였다.

“당신을 그렇게 불러도 된다는….”

“그 쪽이 더 좋다면 말이야.”

로키가 어깨에 두른 털망토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토르가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 쪽이 더 좋아.”

그러고는 토르가 다시 목소리를 내 덧붙였다.

“로키.”

로키는 고개를 끄덕해 보인 후 침대에서 내려와 섰다. 이제 저 멍청이가 깨어나 멀쩡히 말도 하고 있으니, 로키도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것 이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얼른 나아. 하루빨리 다음 번 탈출 시도를 해야 하니 말이야.”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

토르가 대답했다.

다시 고개를 끄덕해 보인 후, 로키는 방문 쪽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하지만 로키가 문고리를 쥐기도 전에, 바깥에서 누가 요란하게 문을 두드렸다.

“토르? 안에 있느냐, 내 아들?”

올파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키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뒤로 돌아섰다. 오딘에게 토르의 붕대와 상처들을 보여서는 안 된다. 당연히 오딘은 질문을 던질 것이고, 로키를 끔찍한 지하 감옥으로 던져 놓지 않을 만한 해명 같은 것은 없었다. 로키의 시선을 마주한 토르의 두 눈 역시 커다랗게 뜨여 있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첫 소리에 즉시 잠에서 깨어난 헤임달이 벌떡 일어서더니, 침대를 지나쳐 황급히 달려갔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왕이시여!”

헤임달이 문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더니 헤임달이 로키를 향해 나지막히 속삭였다.

“침대로 들어가시지요. 어서! 폐하께서 보시지 않도록 이불을 덮으세요.”

로키는 헤임달이 시킨 대로 침대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로키가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토르의 몸이 거칠게 떠밀렸고, 토르는 아픈 소리를 내며 다친 옆구리를 움켜 쥐었다. 로키는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이불을 홱 끌어당겨 덮었다.

“조용히 좀 해.”

로키가 이를 꽉 앙다문 채 일렀다.

“그럼 밀지 말던가.”

토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 때 헤임달이 문을 요란하게 벌컥 열어 제꼈고, 두 사람은 이불 밑에서 얼어 붙었다. 피냄새와 땀냄새가 가득한 그 조그만 고치 안에서, 둘은 가까이 밀착해 누워 있었다. 그러더니 문이 다시 닫혔다. 올파더가 그 짧은 순간 동안 보았을 것은 토르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두 사람 몸의 모호한 윤곽 뿐이었을 것이다. 둘은 꼼짝하지 않고 누운 채, 방 바깥 복도에서 헤임달이 왕에게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폐하, 외람되지만…. 왕자님께서는 지금 폐하를 만나 뵐 수 없는 상태이십니다.”

왕자의 신하가 이렇게 말했다.

“왜지?”

오딘의 따져 묻는 듯한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에 알현실로 날 찾아 오라고 분명히 일렀다. 아침 식사를 할 시간이 거의 지났는데, 내가 직접 그 애를 샅샅이 찾아 다녀야겠느냐?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늦어지는 것이지? 그저 게으름 때문인 것인가?”

“아닙니다, 폐하.”

헤임달이 대답했다.

“왕자님께서 일부러 약속을 어기신 것이 아니라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기쁜 일이 생기는 바람에, 어젯밤 내내 침대에 붙어 계셔야 하셨지요. 앞으로도 며칠 더 그렇게 하셔야 할 것 같고요.”

“기쁜 일이라니…? 대체 무슨 소리인가?”

오딘이 재촉했다.

“왕실의 반려께서 발정기에 드셨습니다. 남편이신 왕자님께서만 제공해 줄 수 있는 도움이 필요한 상태이시지요.”

침대 위 좁은 공간 안에서 로키는 너무 화들짝 한 나머지 다시 한 번 토르의 몸을 떠밀었다. 토르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켰다. 하지만 로키는 그걸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도 격분해 있었다. 분노 어린 로키의 얼굴이 연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터무니 없는 거짓말 같으니라고!”

로키가 이불 아래서 소리 죽인 원성을 터뜨렸다.

토르가 그의 팔을 붙잡아 조용히 시켰다.

헤임달은 계속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이런 일은 요툰인의 일생 중에서도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식력이 극에 달하는 시기이지요. 눈보라와 함께 찾아온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리 거인들이 좋아하는 날씨니까요. 어찌됐든 간에, 왕자비의 발정기가 지나기 전까지 왕자님 또한 방에 머무르며 반려를 돌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히 그 시기가 지날 때까지 일 주, 혹은 이 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저는 물을 가져다 드리러 왔다가 막 떠나려던 참이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음식도 음료도 들지 않으시고 계속 침대에 계셨던 차라, 물이 필요하신 것 같더군요.”

“정말인가?”

올파더의 목소리에는 충격이 어려 있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렇고 말고요. 토끼 한 쌍처럼 일을 치르고 계시지요.”

헤임달이 주먹으로 문을 쿵 쳤다.

“들리시지 않나요?”

“저 나쁜 자식 같으니.”

토르가 작게 투덜거렸다. 그러더니 토르가 가짜 쾌락의 신음 소리를 높게 흘려 보냈다. 너무 저질스러운 소리였는지라 순간 로키는 이 작자가 혹시 상처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빨리. 너도 해.” 

토르가 로키를 향해 속삭였다.

“무슨 동물처럼 괴성을 내지르고 싶은 생각 없거든.” 

로키가 사납게 내뱉었다.

“그게 아니면 뭐라도 해!”

로키는 이불에서 손을 꺼낸 후 머리맡에 있는 거대한 침대 헤드보드를 붙잡았다. 우연하게도 그 헤드보드에는 바이킹 보트가 항구의 독에 출입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었다. 로키는 헤드보드를 돌벽에다 대고 쾅 내리쳤다. 토르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로키는 외설적인 박자로 들리기만을 바라며 다시 몇 번 더 헤드보드를 내리쳤다. 토르의 입술에서도 요란한 신음소리가 더 흘러 나왔다. 토르가 로키에게 간청하는 시선을 쏘아 보냈고, 로키는 져 준다는 듯 마침내 성의 없이 끙끙대는 신음 소리를 섞어 주었다.

오딘의 목소리가 들려 올 때까지 둘은 그 무언극을 계속해 나갔다.

“세상에! 행운이 따른 것이 틀림 없군! 그 조그만 거인도 이제는 정말 아이를 배겠지. 방해하면 안 되겠구만. 다른 시종들에게도 방에 들지 말라고 명해 주도록 하게. 다른 귀족들에게도 이 쪽으로는 오지 말라고 일러 두어야겠군. 두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네가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맡아 처리해 주겠지?”

“물론입니다, 폐하.”

오딘이 웃더니 손뼉을 짝 쳤다.

“자네도 눈이 안 보이는 걸 지금은 감사할 지도 모르겠구만. 아주 어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재치가 넘치시는군요, 폐하.”

무미건조한 대답이 들려왔다.

미치겠군, 빨리 좀 꺼져 버려. 로키는 온 의지력을 다해 올파더 쪽으로 생각을 쏘아 보냈다. 헤드보드를 내려치느라 손이 얼얼해져 오고 있었다. 토르 또한 그 정열적인 요들송을 내지르는 것에 지친 것처럼 보였다.

한참동안 어물쩍거리던 왕이 마침내 말했다.

“그럼 두 사람이 잘 즐기도록 놔 두고 가 보아야겠군. 아들이 들어서기를 기도해 주게나, 헤임달!”

“그러고 말고요, 폐하.”

오딘이 안전한 거리 바깥까지 물러가는 동안, 신음 소리와 머리맡을 내려치는 소리도 얼마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그 소리도 잦아들었고, 헤임달이 끽 소리를 내며 문을 열더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헤임달이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절 비난하시기 전에…”

헤임달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토르를 떠밀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며, 로키는 침대에서 냅다 뛰쳐 나왔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요툰인의 발정기? 그런 건 없다고!”

헤임달이 신중하게 안으로 걸어 들어와 문을 꼭 닫았다.

“예고 없이 꾸며내야 했던 이야기로는 그게 제 최선이었습니다.”

“헤임달 말이 맞아.”

토르가 말했다.

“그 거짓말 덕에 내 평상시 직무를 피할 수 있게 되겠군. 내가 치유될 동안 내 부재도 설명할 수 있을 테고.”

토르가 베개를 등에 대고 일어나 앉으려 애쓰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토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신을 모욕할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오딘께서 사실을 아시는 것보다는, 잠시의 수치심을 견디는 편이 낫겠지요. 오딘께서 아셨으면 무슨 곤란한 일이 닥쳤을 지 모릅니다.”

헤임달이 이렇게 지적하며, 고개를 옆으로 갸웃했다.

“물론, 제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앞으로 몇 주 동안은 두 분 다 이 방에 머무르셔야 하겠지만요.”

로키는 느슨히 흘러내린 검은색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며 끙 소리를 냈다. 로키는 지쳐 있었으며, 혼란스러웠고, 튜닉이 없는 덕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이 야수가 요양을 하는 동안 이 방에 갇혀 있어야 한다니. 사태가 나쁜 것에서 최악에 달해 있었다. 이전만 해도 자기 방에서 약간의 사생활이나마 누릴 수 있었는데!

“그럼 어디서 자면 돼? 저기?”

로키가 벽난로 옆에 있는 수수한 쇼파 쪽으로 손짓을 해 보였다. 그 좁은 쇼파는 하룻밤 휴식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잠깐 머무는 용도로 더 알맞아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가 바닥에서 자도록 하지. 당신이 침대로 와.”

토르가 이렇게 말하더니, 정말로 베개를 짚고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왕자님. 그러시면….”

헤임달이 항의의 소리를 냈다.

“넌 쉬어야 한다고, 이 답 없는 멍청아!”

로키는 토르의 어깨를 움켜쥐고 그의 몸을 다시 침대 위로 내려 앉혔다.

“다시 다쳐 가지고는 내가 잘 간호해 놓은 걸 수포로 돌려 놓지 말고, 거기 꼼짝 않고 있어.”

“지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씀이십니다.”

헤임달이 덧붙이더니, 고심하듯 입을 열었다.

“침대를 같이 쓰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로키가 붉은 눈을 번쩍 빛냈다.

“내 생전에는 그럴 일 없어. 에시르 옆에서 잠을 청하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로키가 딱 잘라 말했다.

헤임달이 혀를 끌끌 찼다.

“원,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닐 텐데요.”

토르가 지친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헤임달, 그러지 말게.”

“제일 사리에 맞는 해결책이 아닙니까.”

왕자의 신하가 자기 주인의 말을 못 들은 체 하며, 로키에게 말했다.

“필요에 의한 것이니, 부적절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침대는 충분히 크고, 두 사람이 함께 쓰셔도…

“로키가 원치 않는다면 그렇게 할 생각 없네!”

오딘슨이 벼락같이 고함을 쳤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거친 목소리였다. 로키와 헤임달 둘 다 깜짝 놀라서 한참 동안 침묵하고 있었다. 토르가 한숨을 내쉬더니 눈을 비볐다.

“미안하네. 소리칠 생각은 없었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피곤한 상태인 것 같군.”

“주무시지요, 왕자님.”

헤임달이 말했다. 헤임달은 아픈 아이를 돌보는 부모처럼 토르의 황금색 머리 뒤에 놓인 베개를 정돈해 주었다.

“왕세자님과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지요. 왕세자님께서 여기 함께 지내시는 동안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리라 믿네, 헤임달.”

토르가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이미 그의 두 눈이 깜빡이며 감겨오고 있었다.

“아, 그리고 로키?”

로키는 약간 주저하며 침대 쪽으로 다가갔다. 저 입술에서 자기 이름이 튀어나오는 것에 적응하는 데는 꽤나 오래 걸릴 것 같았다.

“왜?”

“고마워. 날 집으로 데리고 와 줘서. 내 목숨을 구해 주었군.”

“비긴 걸로 해.”

로키가 조용히 대답했다. 로키는 토르가 지친 잠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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